이석기 석방 촉구 집회는 허용, 정부 비판 집회는 불허
참여연대·이재명 지사도 "차량 집회 금지 안돼"

"지금껏 수많은 '드라이브 스루' 행사를 했는데 왜 개천절 집회를 돌연 막겠다는 것이냐."

정부가 다음달 3일 개천절에 차량 집회를 금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직장인 남모(26)씨는 이렇게 말했다. 남씨는 "차에 탄 채로 치르는 집회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염될 가능성도 없지 않느냐"며 "심지어 개천절은 공휴일이라 출근길 교통 혼잡에 대한 우려도 없는데 집회 금지를 막는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개천절 차량 집회를 예고한 보수단체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시내 거리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고 정부의 '반미친중' 정책을 규탄하는 카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정부가 개천절에 차량 집회를 금지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야권과 시민단체 등은 정부가 그간 코로나 방역을 위해 차량을 이용한 행사를 적극 장려했던 점과 달리 정부 비판적인 성격을 띠는 개천절 집회는 막으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 감염 우려가 크고 교통 정체 등이 예상돼 차량 집회를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7일 "불법집회 참여자는 현장에서 즉시 검거하고, 운전면허 정지 등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김창룡 경찰청장도 "개천절 불법 집회에 법이 허용하는 모든 권한을 활용해 최대한의 경찰력과 장비로 완벽히 차단할 방침"이라며 "차량 집회 운전자에 대해 현행범 체포, 벌금 부과 등의 처벌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정부가 코로나 방역을 목적으로 '드라이브~'로 이름 지어진 각종 차량 이용 행사들을 장려해 왔던 점과 상반된다며,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청와대는 코로나가 한창 확산됐던 지난 3월 차량을 이용해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드라이브 스루 검진'이 국제 표준이 되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드라이브스루 검진은 차량에 탑승한 채로 검사를 받아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전파 위험을 줄이는 검진 방식이다.

앞서 열렸던 일부 지역 아파트 재건축 조합과 남양주 시의회 등의 '드라이브 인 회의'도 별 문제 없이 진행됐다. 28일에는 홍남기 부총리가 "코리아세일페스타에서 소상공인 상품을 드라이브 스루 형태로 판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 7월 25일 서울 서초구 헌릉로에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8·15 특별사면을 요구하는 차량 행렬이 이 전 의원의 얼굴 조형물이 걸려 있는 육교 밑을 지나고 있다.

앞서 정부가 진보성향 단체의 차량 집회는 허용한 바 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대표 석방을 촉구하는 차량 집회를 허가했다. 당시 집회에서 주최측 추산 2500여대의 차량이 서울 서초구 염곡IC에서 세곡동사거리까지 약 5km 구간을 이동했다. 경찰은 "차량 시위를 사전에 신고했고 전체 차선을 점거하지 않아 일반교통방해 등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개천절 집회를 예고한 새로운한국을위한국민운동(새한국) 측은 차량 집회에 200대 정도의 차량이 참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경찰이 "처벌하기 어렵다"고 했던 이석기 석방 촉구 집회 규모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정부의 차량 집회 금지 방침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일정 정도 사람간 물리적 거리가 확보되고 접촉이 없는 차량 집회라면 원천봉쇄할 일이 아니다"라며 "경찰이 할 일은 (집회 원천봉쇄가 아닌) 차량 집회가 신고한 대로 방역지침을 잘 지켜 진행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이를 위반하는 일탈행위가 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당 인사인 이재명 경기지사도 지난 25일 차량 집회를 막겠다는 정부의 결정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집회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감염성을 최소화하거나 위험성이 없는 방법이라면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막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개천절 집회를 예고한 새한국 측은 경찰의 집회 금지 통보에 대해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