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의 지역화폐 관련 연구 자료에 대해 연일 강도높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 지사는 조세연이 이달 15일 발간한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보고서에 몹시 화가 난듯 하다. 그는 조세연에 ‘얼빠졌다’ ‘적폐’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이 지사는 보고서가 나온지 5일이나 지난 20일에도 "지역화폐가 고용증대 효과나 국가소비총량증대 효과는 없을 수 있지만, 주된 목표인 유통재벌에서 중소자영업자로 소비이전 효과는 분명하다"며 연일 조세연 보고서를 비판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 지사를 두고 "정책 연구소에서 하는 지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국가 지도자급의 수용력이 있는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대다수 연구자와 교수 등 경제 전문가들은 이 지사의 태도에 ‘이성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방자치단체의 최고경영자이자 유력한 대권 후보가 근거도 없이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발표를 폄훼"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작 논란의 당사자인 조세연은 조용하다. 김유찬 조세연 원장은 "대응할 생각 없다. 연구기관은 연구로 말하는 것이다"라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일견 김 원장의 태도가 원색적인 정치 공세를 일일이 신경쓰지 않는 초연한 학자의 모습으로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조용한 대응이 이어지는 동안 ‘조세연 보고서 때리기’는 이어지고 있다. 이 지사 뿐 아니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은수미 성남시장 등 여권 주요 인사들이 폭격에 동참했다.

조세연 내부에서는 연구 실무진이 이 지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지적이 나오자, 김 원장은 "실무진에서 언론 공개용은 아니고 국무조정실 보고용으로 설명 자료를 만들었다"고 해명했다.

학자들은 "김 원장이 소속 연구원들을 지켜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경준 의원은 "국책연구원장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불필요한 외압으로부터 연구자들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이 조세연 연구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투명성’과 ‘공론화’일 것이다. 이한상 교수는 "맞는 부분, 오해, 반론 그리고 연구의 한계와 앞으로 더 다루어져야 하는 부분을 국민에 충실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의 기획 의도, 자료 수집 과정, 연구 주요 결과를 공개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 판단하도록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면 이 지사와 정치인들의 공세는 자연스럽게 힘을 잃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김 원장의 침묵의 정치적 배경을 의심한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친정부 성향인 김 원장이 여권 주요 인사들의 말에 강력 반박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것"이라고 했다. 세종시 국책연구원 단지에서는 "조세연은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로 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직장이었는데, 김 원장의 지나친 친정부 성향이 많은 젊은 학자들의 이탈을 초래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침묵이 금’이라는 금언이 있지만, 현 시점에서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 김유찬 원장의 침묵이 젊은 연구원들에게는 ‘재갈 물리기’로 느껴질 수 있다. 김 원장이 조세연 연구원들을 불필요한 외압에서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