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위성이 내년 5조4000억엔(약 60조1349억원) 규모의 ‘슈퍼’ 예산을 편성했다. 이는 올해 본예산보다 1.63%(867억엔) 늘어난 것으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2015년도 이래 역대 최대 규모가 된다. 스가 요시히데 내각은 ‘아베 정권 계승’을 기치로 내건 만큼 방위성의 요구를 대체로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 자위대 소속 항공기의 훈련 비행 모습.

방위성은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예산 증액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 등을 언급했지만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기지화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주변에서의 도발행위가 실질적인 이유로 읽힌다. 지난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일이 불발된 이후 중일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대만통’으로 알려진 기시 노부오 방위상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배경이다.

◇ ‘아베 계승’ 스가…방위비 증액 기조 이어간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1일 방위성이 재무성에 제출하는 2021년 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 예산요구서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일본의 방위비는 아베 신조 전 총리 재집권 후인 2013년도부터 8년 연속 증가해왔다. 내년도를 포함하면 9년 연속 증가다.

방위성은 주변국의 군사력 확장과 우주 및 사이버 공간에서의 공격 가능성을 언급하며 대응 기술 개발과 인재 육성을 위해 예산을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전자전(戰) 전문부대 신설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전자전 부대는 전파나 적외선 등을 사용해 적의 통신장비나 레이더 사용을 교란시키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부대다.

차세대 전투기 엔진 개발 사업비도 내년도 예산에 포함했다. 방위성은 2035년 일선 기지 배치를 목표로 F2 후속기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르면 오는 10월 미쓰비시중공업과 관련 계약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지스 어쇼어’ 대안 사업비는 금액을 제시하지 않는 ‘사항 요구’ 형태로 예산에 넣었다. 이지스 어쇼어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방어 체계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미사일 발사 후 추진 장치인 부스터가 주택가 등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해당 체계의 배치 계획을 취소했다.

방위성은 이와 관련, 이지스함이나 미사일방어(MD) 전용함을 새로 건조하는 방안과 지상 이지스 레이더 등을 탑재한 미사일방어(MD) 전용 호위함을 배치해 해상에서 요격 미사일을 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기시, 오키나와·규슈에 中 겨냥 특수부대 신설…대만 놓고도 신경전 벌일까

방위성의 새 예산안에서 주목할 부분은 전자전 부대 확장이다. 전자전 부대의 새 거점으로 지목된 지역들이 일본이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열도 일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날 방위성이 오키나와에 있는 기존 부대 내에 전자전 부대를 신설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방위성은 규슈 구마모토현에 있는 육상자위대 겐군주둔지에도 80명 규모의 전자전 부대를 발족할 예정이다.

기시 방위상이 대(對)중 강경 노선을 택할 것이란 관측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기시 방위상은 센카쿠열도 문제에서 매입 등의 타협책에 반대해왔다.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는 대만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수년간 일본 자민당을 대표해 차이잉원 총통 등 대만 지도부와 접촉해왔으며, 지난 7월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이 서거했을 당시에도 일본 대표단의 일원으로 대만을 방문했다.

스가 신임 총리가 전임자인 아베의 국방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밝힌 만큼 향후 중국과 일본 간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와 관련,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14일 "중국은 중일 관계의 대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것이지만 국가 핵심이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못박은 바 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 역시 기시 방위상 취임 직후인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중일) 양국 국방 당국이 대화 교류를 강화하고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함께 수호하길 희망한다"면서도 "일본 측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해 대만과 어떤 형식의 공식적 왕래도 하지 말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