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이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 태국에서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대 2만여명이 주말 내내 수도 방콕에서 집회를 열었다.

CNN에 따르면 지난 19일 방콕 시내 왕궁 바로 옆 사남루엉 광장에서 2014년 군부 쿠데타 이후 최대 규모인 1만8000명(당국 추산) 이상이 참가한 시위가 열렸다.

이어 20일에는 시위대가 광장 바닥에 '이 나라는 국민의 것이지, 그들이 우리를 속여온 것처럼 군주의 것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동판을 설치했다.

왕실국가인 태국에서 그간 군주제 개혁은 입에 올려선 안되는 금기였다. 태국 헌법에는 '군주는 존경받아야 하고 (권위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고, 왕실 모독죄를 저지를 경우 외국인이더라도 최장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7월부터 태국에서는 10~20대 학생을 주축으로 한 학생단체 '탐마삿과 시위 연합전선'을 중심으로 군주제와 정치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세다.

19일 태국 방콕의 반정부 시위대가 세손가락 기호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동판 설치를 주도하면서 "현(現)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이 즉위한 뒤인 2017년 4월 갑자기 사라진 '민주화 혁명 기념판'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념판은 입헌군주제 도입의 계기가 된 1932년 무혈 혁명을 기념해 1936년 설치됐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대신 국왕에 대한 충성 메시지를 담은 금속판이 설치됐다.

주최 측이 새로 설치한 동판에는 이번 시위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 모습이 같이 새겨졌다. 검지와 중지, 약지를 펼쳐 하늘 위로 향하는 세 손가락 경례는 헐리우드 유명 영화 '헝거게임'에 나오는 민중 저항 제스처를 빌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시위대는 동판 설치 후 개혁 요구안을 전달하겠다며 왕실 자문기관인 추밀원으로 행진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시위 행진을 막으면서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혁 요구안을 왕실에 전달하겠다는 경찰 측 제안을 시위 지도부가 받아들이면서 상황이 일단락됐다. 요구안에는 왕정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 폐지, 새 헌법 제정, 왕실 폐지, 군정 축출, 국왕 경호원 해산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는 다음달 14일 시민혁명 기념일에 다시 대규모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까지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왕실 비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그러나 학생들이 주도하는 풀뿌리 민주화 운동은 점점 더 대담하게 왕의 권력과 부를 제한해야 한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