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을 위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제 외침이 왜 메아리로만 들리나요."

지난 17일 조두순 피해자의 아버지는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에게 이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그는 "11년 전 정부는 조두순을 영구히 격리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켜줄 것을 지금도 믿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조두순의 ‘영구격리’를 원하는 피해자 아버지의 바람은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게 법조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2017년 경북 북부교도소 보안과에서 조두순이 CCTV 화면으로 보이고 있다.

12년 전 8세 여자아이를 성폭행하고 신체를 훼손한 조두순의 만기 출소가 86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이 성 범죄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법안들을 내놓는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새로 발의된 법안들은 정작 당사자인 조두순에게는 적용되기 어렵다. ‘형벌 불소급’이라는 헌법상의 원칙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범죄는 범행 당시의 법률에 의해서만 처벌받고, 처벌 받은 후에 새로 제정된 법률에 의해서는 거듭 처벌을 받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두순의 출소를 앞두고 피해 가족과 지역 주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개정된 법이 시행돼도 조두순의 발을 묶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 출소 앞두고 ‘조두순 방지법’ 발의 봇물… 상세주소 공개만 적용 가능할듯

김병욱 의원은 조두순과 같은 아동 성폭력범이 출소 후에도 사회에 격리돼 보호수용 시설의 관리·감독을 받게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의 고영인 의원은 이른바 ‘조두순 감시법’을 발의했다. 아동 성범죄 전과자를 자신의 주거지역에서 200m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거나 피해자의 주거지와 학교 주변 500m 안으로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가중 처벌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동·청소년을 상습 성폭행하거나 추행했을 경우 법정형의 1/2를 가중 처벌하고, 재범 시 종신형까지 추진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지난달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형벌불소급 원칙에 따라 이같은 신규 법안들은 모두 조두순에게 적용하기 어렵다.

조두순의 상세 거주지 주소 등을 공개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기존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제도의 적용 대상을 넓히는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여성가족부의 ‘성범죄자 알림e’ 서비스를 통해 성범죄자의 신상정보와 거주지 건물번호까지 공개하고 있다. 미성년자가 살고 있는 가정이나 시설에는 건물번호 뿐 아니라 구체적인 호수까지 우편으로 고지된다.

현행 법대로라면 조두순은 출소 후 전입 신고를 한 행정동 단위까지만 주소가 공개된다. 조두순의 신상정보 공개 범위는 2008년 범행 당시 기준을 따르기 때문이다.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 범위는 지난 2013년에야 ‘읍면동’에서 ‘건물번호’로까지 확대됐다. 김경협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일찍 통과되면 조두순의 상세 주소가 공개될 길이 열린다.

다만, 조두순이 만기 출소하기 전까지 개정안 통과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김경협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 등에서 논의된 뒤에도 여야 합의를 거쳐야 하고 국회를 통과해도 입법 예고를 거쳐 시행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성(性) 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로 신상정보가 공개된 텔레그램 ‘박사방’과 ‘n번방’ 운영자들. 왼쪽부터 조주빈(25), 강훈(18), 이원호(19), 문형욱(25)이다.

◇ 디지털 성범죄 양형 강화됐지만… n번방 가해자들도 피해갈 가능성 커

형법불소급원칙에 따라 정작 국민의 공분을 샀던 강력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게 된 최근 사례는 또 있다. 미성년자 성(性) 착취 영상물을 촬영하고 배포해 체포된 ‘n번방’ 사건 피의자들이 대표적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14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이번 양형기준안에 따르면, 같은 범죄를 2건 이상 저지른 ‘다수범’과 아동·청소년 성(性) 착취 ‘상습범’의 경우 최대 29년 3개월까지 징역형을 받도록 했다.

양형위는 또 영리 등의 목적으로 판매하는 범죄를 2건 이상 저지르면 최대 징역 27년형을, 2건 이상 배포범죄 혹은 아동·청소년을 알선할 경우 최대 징역 18년을 선고하도록 권고했고,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구입도 2번 이상이면 최대 징역 6년 9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n번방 사건의 주요 피의자들은 이처럼 강화된 양형기준을 적용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강화된 양형기준은 오는 12월 최종 의결된 뒤에야 효력을 갖게 된다. 양형기준은 발효 이후 기소된 사건부터만 적용되기 때문에 이미 관련 범죄로 재판이 시작된 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새 기준을 참고해도 위법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판사 재량’이라는 점에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