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직·일정 수익 증빙하면 '여행 하듯' 장기체류
"월급 2천달러 넘으면 OK" 1주만에 2700명 몰려
"단기 방문객에 의존하는 관광 모델서 벗어나야"

코로나 대유행 속 원격근무를 하는 여행자에게 장기 체류비자를 발급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사진은 크로아티아.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에 따른 재택 근무 확대 속에 장기체류 비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증명한 뒤, 장기간 체류 가능한 비자를 발행받아 마치 여행 하듯 외국에서 생활하며 원격 근무를 병행하는 방식이다.

18일(현지 시각) 미 경제매체 CNBC는 스탠퍼드대 경제학자 니콜라스 블룸의 연구를 인용해 9월 기준 미국 노동자의 42%가 풀타임 재택 근무를 하고 있으며, 상당수가 내년 중반까지는 사무실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일부 국가들은 단기 방문객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관광 모델을 벗어나 저렴하고 여유로운 휴양지에 위치한 '홈 오피스'(Home office) 모델을 내놓고 있다.

영국의 해외 영토인 앵귈라(Anguilla) 관광청은 지난달 21일부터 자국에서 생활하며 원격근무를 할 수 있는 체류비자 신청을 받고 있다. 최소 3개월 이상 체류할 여행객에 한해 개인당 1000달러에 발급되며, 코로나 감염률이 0.2% 미만인 저위험 국가 출신만 가능하다. 두차례의 코로나 검사 확인서, 신청자의 직업과 수입원을 증명할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나라 바베이도스(Barbados)는 올해 7월 '12개월 바베이도스 웰컴 스탬프'라는 이름의 취업 비자를 선보였다. 9월 셋째주까지 1350명 이상이 신청했으며 이중 40% 이상은 미국인이다. 섬 전역의 레스토랑, 카페, 공공도서관, 공원 등에 무료 와이파이가 설치돼 원격근무를 돕는다. 비자소지자는 입국일로부터 1년 간 자유 재입국이 가능하며, 자녀의 학비만 내면 사립학교는 물론 국공립학교에도 보낼 수 있다.

영국 해외 영토인 버뮤다도 1인당 263달러에 비자를 발급한다. 재직증명서 또는 대학 수준의 학위 프로그램 등록증, 지속적인 연간 수입을 증명해야 한다. 제이슨 헤이워드 버뮤다 노동부 장관은 "버뮤다의 크리스탈빛 바다를 보며 근무하고 18마일의 산책로를 누릴 수 있다"며 "버뮤다에 방문하는 해외 원격근무 노동자들이 국가 경제활동을 촉진할 것"이라고 했다.

코카서스 산맥으로 둘러싸인 국가 조지아(Georgia)가 지난 7월 말 공개한 장기체류 프로그램 '조지아에서 원격으로'에는 일주일만에 2700개의 신청서가 접수됐다. 이 프로그램에 등록한 여행자는 비자 없이 360일 간 조지아에 머무를 수 있다. 신청 자격은 월 급여가 최소 2000달러를 넘어야 하며, 개인 비용을 들여 호텔에서 12일 간 코로나 검역을 받아야 한다.

여행자들에게 '발칸의 천국'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도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준비 중이다. 다만 구체적인 조건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드레이 플랜코비치 총리는 지난달 26일 트위터에 "크로아티아가 2021년 중에 디지털 노마드를 맞이한다"며 "세계 최초로 디지털 유목민의 체류를 합법적으로 규제하는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