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으로 우려가 나왔던 국내 제지업계가 온라인쇼핑, 음식 배달이 늘며 초호황이다. 코로나19로 집콕족이 증가하면서 포장 박스용 백판지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모바일 기기 발전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던 제지업계는 다시금 도약하고 있다.

백판지는 골판지처럼 상자 제조에 쓰이지만, 표면이나 이면이 백색인 종이다. 주로 치킨, 피자 같은 배달 박스나 종이컵, 식료품, 생활용품, 화장품 포장 용도로 사용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쇼핑, 배달이 늘자 백판지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온라인 식품 쇼핑 거래액은 전년도 1분기 대비 50% 늘었고, 생활용품 거래액은 39% 늘었다. 2분기에는 각각 43%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 코로나19로 집콕족 늘었다…제지업체 영업이익 증가세

올해 상반기 제지업체의 영업이익은 성장세를 보였다. 백판지 업계 점유율 1위인 한솔제지(213500)의 상반기 연결 영업이익은 744억원으로 전년 대비 74% 급증했다. 산업용지 부문은 2개 분기 연속 2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SSG닷컴'의 물류센터에서 한 직원이 주문 들어온 신선 식품들을 배송 상자에 담고 있다.

식품 포장재를 전문으로 하는 세하의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83억원 늘어난 946억원이었고, 영업이익은 57억원에서 119% 증가한 124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깨끗한나라(004540)는 107억원의 영업적자에서 362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유경하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코로나19로 음식 배달 수요가 늘면서 백판지 소비가 확대됐다"며 "포장을 많이 하는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증가하고, 1인 가구 증가세로 소포장 상품이 늘어난 것도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제지업체는 올해 3분기에도 코로나 덕분에 호실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8월 30일부터 이달 13일까지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돼 배달 수요가 폭증한 데다 9월 말 추석 성수기까지 겹치기 때문이다.

김두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백판지는 수출용보다 내수용 가격이 높은 편인데, 국내 수요가 증가하면서 실적도 개선됐다"며 "올해 3분기에는 2.5단계와 추석이 겹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中 환경 규제로 폐지 가격 ‘뚝’… 경쟁 완화에 중장기 실적도 긍정적

증권업계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제지업체 실적이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환경 정책 강화로 원재료인 고지(폐지) 가격은 낮아지고, 백판지 공급 경쟁은 줄고 있기 때문이다.

백판지로 포장된 식품과 위생용품

‘최대 쓰레기 수입국’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중국은 2017년 폐지 수입량을 2800만톤에서 2019년 1000만톤, 2021년 0톤까지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수출길이 막히자 국내에 폐지 공급량이 늘면서 백판지 제조 업체는 싼 가격에 폐지를 구입하고 있다.

고지 1kg당 가격은 지난해 상반기 226원에서 188원으로 떨어졌고, 펄프는 847원에서 621원으로 하락했다. 중국이 고지 수입을 전면 중단하면, 고지 공급과잉 현상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제지업체가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탈바꿈했지만, 노후 설비 폐쇄와 쉽지 않은 증설로 경쟁도 줄고 있다. 지난해 신풍제지는 연산 약 20만 톤 규모의 설비 가동을 중단했다. 한창제지(009460)는 노후한 SC지 생산라인 제지 2호기를 멈춰 세웠고, 깨끗한나라는 올펄프 제품을 주로 생산했던 제지 1호기를 고철 처리했다.

유 연구원은 "국내에서는 제지공장이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혐오 시설로 알려져 지자체 허가와 주민 동의를 얻기 힘들다"며 "중국은 고지 공급 부족, 동남아는 육상교통망 미비로 증설에 나설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