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주파수는 FM 99.9Mhz(메가헤르츠)에 맞춰주시고요, 질문이 있으시면 경적을 울려주십시오. 마이크를 들고 진행요원이 찾아게겠습니다."

3일 오후 서울 성동구 살곶이체육공원에서 열린 '드라이브인 2021학년도 수시대비 대학입시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사근동 살곶이체육공원에는 200대가 넘는 차가 운동장에 운집했다. 성동구청이 주관한 '2021년 대입 입시설명회' 참가를 위해 모인 차량이었다. 성동구는 수시모집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개최하는 입시설명회를 올해는 참가자들이 각자 자동차를 몰고 와서 듣는 '드라이브인(Drive-in)'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날 참가한 학부모와 고등학교 학생들은 "A 대학 전형 먼저 소개할까요? 아니면 B 대학 먼저할까요" 같은 질문에 대해 경적을 울려 의사를 표명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차량에서 들어도 확실히 오프라인 설명회가 온라인보다 정보 전달이나 질의 응답 면에서 낫다"고 참가한 학부모들은 입을 모았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참가자들이 각자 자동차를 가지고 오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드라이브인' 방식의 행사가 늘어나고 있다. 대규모 집회, 강연 등 온라인으로만 진행하기 어려운 행사의 경우, 아예 '자동차 집회'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입시설명회의 경우 몇 달새 드라이브인 방식이 보편화되다시피했다. 종로학원 등 입시교육업체 뿐만 아니라 경기도 고양시, 과천시 등 지자체들이 자동차 극장 방식으로 입시설명회를 진행했다.

지난 4월 28일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건축부지에서 열린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조합의 '드라이브 인' 총회에 참석한 조합원 이종권씨가 투표용지를 들고 유튜브로 총회를 시청하고 있다.

대면 집회가 필수적이다시피한 재건축조합회의도 드라이브인 방식으로 열린다. 지난 4월 말 열린 서울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조합회의는 재건축 건설공사가 한창인 서울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 터에서 열렸다. 5월 열린 서울 서초구 신동아아파트 발전위원회(재건축조합)은 조합장 해임을 위한 총회를 드라이브인 방식으로 진행했다.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장노년층이 많아 온라인 화상회의를 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몇 억원이 달려있는 민감한 이슈라 대면 총회가 꼭 필요하다"며 "차량을 이용한 일종의 준대면 총회가 재건축 조합에서 보편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운동장에서는 차량 1000여대가 모인 드라이브 인 학위수여식이 열렸다. 학생들 대신 차량 위에 학사모가 씌워지기도 하고 학생들과 학부모는 박수 대신 경적을 울리며 축하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문을 닫아야 했던 교회들도 연합해 '드라이브 인 워십 서비스'을 제공하고 있다. 자동차의 라디오 주파수를 활용해 정보를 전달하고 기존의 자동차 극장처럼 대형 전광판을 세워 설명했다.

개인 의사표현이 필요한 모임에서도 자동차가 역할을 해내고 있다. 지난 6일 남양주시는 전국 지자체 최초 드라이브 인 비상대책 회의를 개최했다. 각자의 차량 안에서 정해진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시장이 회의를 주재하면 각 의원들은 휴대전화 연결을 통해 상황과 대책을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여럿이 모여야하는 집회현장에서도 자동차가 등장했다. 지난 5월 전국택배연대노조는 '택배차량 드라이브 인 집회'를 열고 택배 차량 운전자들이 '특고노동자 차별 철폐' 손팻말을 들어보이며 투쟁했다.

조광한 경기 남양주시장이 지난 6일 차 안에서 '드라이브인'(drive-in) 방식의 간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시민들 중에서도 방역과 생활용품으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경우가 생겼다. 지난달 25일 공개된 중고차 매매업체 AJ셀카의 8월 '내차팔기' 대표시세에 따르면 최근 한달 간 내차팔기 거래량 상위 20개 모델 기준 8월 시세 증감률은 전월 대비 평균 4%를 기록했다. AJ셀카에 따르면 6월 5%, 7월 3% 상승에 이어 8월까지 중고차 시세는 꾸준한 상승을 이어오고 있다.

사람이 많은 여름철 휴양지를 피해 차에서 숙박하는 '차박'의 효과로 SUV 차종의 인기가 높아지기도 했다. 카이즈유 통계에 따르면 8월 신차등록 대수 상위 5위권 내에는 SUV차종 3개가 포진했다. 2위에 기아 쏘렌토, 3위 현대 싼타페, 5위 현대 팰리세이드 등이다. 7월까지만 해도 5위권 안 SUV는 3위에 자리한 쏘렌토가 유일했으나, 거리를 두면서도 즐길 수 있는 캠핑과 차박의 인기에 힘입어 SUV를 찾는 시민들이 많아진 탓이다.

자차를 이용한 거리두기는 한국만의 트렌드가 아니다. 미국, 브라질, 노르웨이 등 국가를 막론하고 드라이브 인 형태의 뮤직 페스티벌과 콘서트가 성행하고 있으며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감상하는 미술전시가 개막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일본의 한 호러 이벤트 회사는 예약자가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차를 세우면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귀신이 나타나는 드라이브인 공포 체험을 기획하기도 했다.

때문에 미국 내 중고차 가격은 역대 최대 수준으로 치솟는 중이다. 미국 중고차거래 사이트 에드먼즈닷컴에 따르면 7월 한달 간 중고차 평균 가격이 16% 상승했다. 전달인 6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판매대수가 22% 증가한 120만 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이는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월간 판매대수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의 장기화가 예상됨에 따라 자동차 활용 산업이 더 넓어질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전까지 드라이브인 회의나 의회도 생각지 못했는데 생겨났고 연말에도 드라이브인 콘서트 등이 예정돼있는 걸로 안다"며 "안전한 이동수단과 개인공간으로서 자차의 가치는 앞으로도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