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 코로나뉴스 청취 보다 SNS로 잦은 소통 유지"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마련된 선별진료소 앞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체 채취 순서를 기다리는 내원객들을 응대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우울·공포·스트레스가 바이러스처럼 번지고있다. 코로나 확진자·격리자 뿐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까지도 이른바 ‘코로나 블루(우울)’와 ‘코로나 번아웃(정서적으로 부담 혹은 기대가 높은 환경에 오랜 시간 관여되면서 비롯되는 긴장되고 고갈된 상태)’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다.

실제 호주에서는 세쌍둥이 자녀의 출산을 기다리던 예비 아빠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실직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영국의 전직 경찰 간부는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인 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가 격리를 하던 중 극단적 선택을 한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국내의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말로 다할 수 없다. 죽고싶다"는 글이 올라왔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코로나19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정신보건 위기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감염에 대한 불안감 뿐 아니라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외로움이 개인 정신 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8월에 이례적인 수준으로 자살자가 늘어 정부 당국이 긴급 메시지를 발표했다. 일본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1849명으로, 작년 동기와 비교해 15.3%(246명) 급증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장관)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앞으로의 생활에 불안을 느끼는 분도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중앙자살예방센터 센터장)는 "코로나로 인한 자살 증가에 대한 우려는 세계 공통 과제"라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높은 자살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신건강문제, 경제적 문제, 건강문제의 삼중고가 코로나로 모두 악화될 위기"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자살 증가 위험을 높인다는 통계는 아직까진 없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블루가 자살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국가별 통계가 아직 없어 파악하기엔 매우 이른시점"이라면서 "코로나로 인한 자살과 관련해서는 입증되지 않은 사례나 증언들만이 이용 가능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에서도 최근 코로나로 인한 외출 자제·사회적 고립 등으로 불안감과 우울 증가, 이로 인한 자살 증가 우려 등이 크게 늘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코로나19 8월 유행 이후 '코로나 우울'로 인한 정신건강 관련 정보 문의는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심리상담 건수도 같은 기간 1.8배 늘었다.

수도권 중심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지난달 14일 3085건이었던 정신건강 관련 정보 제공 건수는 20일 6244건, 26일 1만193건으로 늘어나더니 21일 만인 이달 4일에는 1만2300건으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2457건이었던 하루 심리상담 건수도 20일 3378건, 26일 4570건에 이어 이달 4일 4424건으로 1.8배가량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코로나 우울'을 질병 코드로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코로나 블루는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서는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코로나 블루라는 질병명은 없기 때문에 전조증상인 우울증 등을 조기에 감지하고, 치료하면 된다. 백종우 교수는 "감염재난 시기에 발생하는 건강에 대한 위협, 경제적인 어려움, 일상의 중단 등은 현실적 고통으로서 우리가 직면하는 첫 번째 화살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극복해나가야 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자연스레 우리의 마음 한켠에는 불안, 분노, 우울감이 유발되는데 이를 코로나 블루라고 일컫는다. 사실 불안한 감정을 질환으로 느낄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의 불안은 누구나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KSTSS)에서 최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소 시기에 비해 국민들의 우울과 불안은 증가했지만, 80% 정도는 정상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0~20%는 임상적 관심이 필요한 정도의 불안을 보여주고 있다. 백 교수는 "우울증, 불안증세가 있었거나 너무나 큰 고통으로 잠을 못 자는 분들은 전문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미래를 속단하거나, 예측하려고 하면 스트레스가 더 커지므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요즘처럼 비대면 접촉이 늘고 있는 와중에는 우울감이나 슬픔,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인간이 변화에 적응하려면 신체적 혹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대안을 하나씩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야외활동이 제한됨에 따라 집에만 머물며 코로나19 관련 뉴스를 계속해서 보게 되는데, 이는 심리방역에 가장 안 좋은 행동이다. 최소한 실내에서 창문을 열고 햇볕에 드는 곳에서 운동하기를 권장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백 교수는 "타인과 ‘소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소중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전화 혹은 SNS 등을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놓고 ‘함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권준수 교수도 "생활 반경이 줄어들수록 규칙적인 수면과 운동, 적절한 식이조절 등을 지켜야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것도 좋은 기회다. 취미활동은 휴식을 즐기며 코로나 우울을 이겨낼 수 있는 해법이다. 뜻밖에 주어진 이 고립된 시간동안 스스로를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