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보수단체들이 다음달 3일 개천절에 집회를 예고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엿새 뒤인 한글날에도 대규모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가까스로 감소세로 돌아선 코로나 확진자 수가 다시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 위치한 도심내 집회금지 안내문의 모습.

10일 경찰에 따르면 자유연대와 천만인무죄석방운동본부(석본) 등 일부 보수단체는 개천절에 이어 한글날 연휴인 다음달 9일과 10일에도 서울 광화문과 종로 일대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다.

자유연대는 광화문 교보문고 앞, 광화문 KT 사옥, 광화문 시민열린마당, 경복궁역 7번 출구, 적선현대빌딩 앞 등 5곳에 대해 집회 신고를 했다. 이틀간 총 6000명이 모여 정부와 여당 인사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석본도 이틀 동안 종로구 세종로 소공원 앞,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8000명 규모의 ‘10.3 기념식 및 문재인 정권 규탄 집회’를 열고 행진을 하겠다고 신고했다. 종로 보신각 앞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위한 국민대회가 300명 규모로 이틀간 열린다.

앞서 경찰과 서울시는 개천절 집회 금지를 통고했다. 경찰에 신고된 10인 이상 집회 70건 가운데 33건이 종로구, 중구, 서초구 등 도심권이었다. 이 가운데 석본은 서울 서초구와 중구에 각 3만명 규모의 집회를 열겠다고 했고, 자유연대도 종로구 일대 7곳에서 1만여명 규모의 집회를 신고했다.

경찰은 개천절 집회에 이어 한글날 연휴 집회도 금지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다음달 9일과 10일 신고된 집회들에 대해서도 모두 금지 통고할 것"이라며 "주요 도심권 이외의 서울지역 집회신고에 대해서도 방역 당국의 집회금지 기준에 따라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달 광화문 집회처럼 경찰의 금지 통고에도 이들 단체가 집회를 강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사랑제일교회·자유연대 주최로 문재인 정권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광화문 집회 당시 법원의 허가를 받은 집회는 보수단체 ‘일파만파’와 ‘4·15 부정선거 국민투쟁본부’ 등 단 2개뿐이었다. 법원은 이들 단체의 집회 시간이 비교적 짧고 신고 인원도 100여명 이외로 소수라는 점을 들어 집회를 허가했지만 광화문 일대에는 신고 인원의 수백배에 달하는 인원이 몰려들었다.

실제로 집회 강행의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8.15 집회 참가자 국민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8일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천절 집회와 관련해 아직 확정된 건 없다"면서도 "전광훈 목사를 가둬서 광화문을 잠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판’이라는 걸 모든 국민과 함께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지난 6일엔 ‘휴대폰을 끄고 모이자’는 내용의 일부 보수단체 집회홍보 포스터가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등에 퍼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기자회견 형식으로 바꿔 ‘꼼수 집회’를 열 가능성도 있다. 기자회견을 하겠다며 장소를 잡은 뒤 집회와 같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집단구호를 외치고 피켓과 대형 현수막을 드는 식이다. 집회는 48시간 전에 사전 신고를 해야 하지만 기자회견은 신고 의무가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집회와 기자회견을 구분하는 기준은 구호 제창, 피케팅 등의 의사표현 방식이다.

실제로 지난달 민주노총,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등 단체는 최대 1000명이 참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제창하거나 피켓을 들고 춤을 추는 등 꼼수 집회를 진행했다.

정부는 경찰의 금지 통고를 어기고 집회를 강행할 경우 엄정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전날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일부 단체가 추석 연휴 기간 중인 개천절에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있어 참으로 개탄스럽다"며 "정부는 방역을 방해하고 공동체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국민이 부여한 공권력을 주저 없이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찰과 지자체에 "지난 5월과 8월 연휴의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 만큼은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처하고 필요한 경우 법원에도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라"고 주문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야당들 역시 일부 보수단체들의 개천절, 한글날 집회 움직임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회의에서 "지금은 코로나를 극복하느냐 무너져내리고 마느냐를 가늠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라며 "부디 집회를 미루고 국민과 함께 해주길 두 손 모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이날 "집회 기획자들이 문재인 정권의 도우미가 아니라면, 지금 당장 개천절 집회를 전면 취소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