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상 임상시험 코로나 백신 8개 중 4개가 중국 제품
최종 승인 전 3상 단계에서 민간인·군인 동원해 백신 투여
해외 3상 임상 확대하며 데이터 축적
"미·러 제치고 백신 전쟁 주도권 잡는다"
시진핑 주석은 백신 우선 공급 약속하며 '백신 외교'

중국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물리칠 백신의 3상 임상시험을 확대하며 연내 백신 출시를 위해 속도를 올리고 있다. 3상 임상시험은 백신 개발의 마지막 단계로, 백신 후보 물질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는 대규모 실험이 이뤄진다. 현재 전 세계에서 3상 임상이 진행 중인 코로나 백신 후보 8개 중 4개가 중국이 개발한 것이다. 단기간에 3상을 끝내고 긴급 승인을 통해 전 세계 백신 시장의 판을 주도하겠다는 게 중국의 계획이다.

중국은 국내에서 일반인과 군인을 대거 동원해 효능과 부작용 검증에 나섰다. 7월 22일부터 ‘백신 긴급 사용’ 계획에 따라 의료진, 항공사·공항 근로자 등 바이러스 노출 위험이 큰 고위험 그룹에 백신 후보를 투여했다. 현재까지 아무런 안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게 백신 개발사와 중국 정부의 주장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의 투쟁에 기여한 공로자 4명에게 국가훈장과 국가 영예 칭호 메달을 수여했다.

해외에서는 중동·라틴아메리카·동남아시아 등에서 3상 임상을 진행하며 각국에서 데이터를 쌓고 있다. 미국·러시아 등 세계 최강국이 뛰어든 ‘백신 전쟁’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백신 외교’를 펼치며 자기편 만들기에 나섰다.

중국이 3상을 진행 중인 백신 후보 물질 4개는 국영 제약사 중국의약집단(시노팜·Sinopharm) 산하 중국생물기술집단(CNBG)과 베이징과흥생물제품(시노백 바이오테크), 강희락생물(칸시노 바이오로직스)이 각각 개발한 것이다. 이 중 CNBG와 시노백의 백신 후보는 정부의 최종 승인 전 일반인을 대상으로 긴급 사용 허가가 났다. 칸시노의 백신 후보는 중국인민해방군 군인을 대상으로 접종이 진행 중이다.

중국 국영 제약사 시노팜의 계열사 중국생물기술집단(CNBG)이 개발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후보.

시노팜의 계열사 CNBG(중국생물기술집단)은 현재 백신 후보 2종에 대해 3상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페루·모로코·아르헨티나·요르단에 이어 세르비아와 파키스탄 정부도 최근 CNBG 백신 3상 임상을 승인했다. 중국에서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거의 나오지 않으면서 외국에서 임상 참가자를 모아 데이터를 쌓는 것이다.

CNBG는 중국 국내외에서 이미 10만 명 이상이 백신 후보 2종을 접종했다고 7일 밝혔다. 류징전 시노팜 회장도 이미 백신을 맞았다. CNBG 기율검사위원회의 저우송 서기는 이날 중국 국영 라디오 CNR과의 인터뷰에서 "접종자 중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가 한 건도 없었고 눈에 띄는 부작용도 없었다"고 했다. 백신이 효과가 있고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중국 국영 제약사 시노팜의 류징전 회장.

백신 후보 2종 모두 변이가 일어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또 코로나 백신을 독감 백신처럼 매년 맞을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면역이 최대 3년간 지속된다는 게 회사의 주장이다.

CNBG는 11월까지 3상 임상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생산시설을 확장 중이다. 시설 확충이 끝나면 연간 백신 생산량은 10억 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베이징과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두 곳의 시설에서 생산 가능한 백신은 연간 2억~3억 회 분량이다. CNBG는 중국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 직원과 해외 주재 중국 대사관 직원에게도 백신을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인웨이둥 중국 시노백 최고경영자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제품을 보여주고 있다.

시노백(베이징과흥생물제품)은 현재 브라질·인도네시아·터키·방글라데시에서 ‘코로나백’이라 불리는 백신 후보 물질의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 직원과 가족 3000여 명을 비롯해 수만명이 접종했다.

인웨이둥 시노백 최고경영자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국제서비스무역교역회’에서 "이르면 연말까지 판매 승인을 받을 걸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현재 연간 예상 생산량은 3억 개 정도다. 시노백 백신은 사용 전 최장 3년간 보관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프리카 등 저온 보관이 어려운 지역에서 유용하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아직 정식 출시 승인이 나지 않았는 데도 해외에서 ‘예비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시노백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인도네시아 국영 제약사 피티바이오파마가 4000만 회분의 백신을 선주문했다.

중국인민해방군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후보 물질을 개발한 칸시노 바이오로직스.

톈진의 생명공학 회사 강희락생물(칸시노 바이오로직스·CanSino Biologics)이 개발한 백신 후보는 이미 인민해방군 군인들이 대거 접종했다. 칸시노와 백신을 공동 개발한 인민해방군 산하 군사과학원 군사의학연구원 소속 천웨이 중국공정원 원사는 8일 코로나 백신 개발에 기여한 공로로 시진핑 국가주석으로부터 국가 영예 칭호인 '인민영웅’ 메달을 받기도 했다.

칸시노의 백신 후보 물질 ‘Ad5-nCoV’는 일반 감기 바이러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과학계 일각에선 많은 사람이 일반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Ad5-nCoV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감기 바이러스 항체가 코로나 항체 생성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칸시노는 9일 이런 지적을 부인하며 "충분한 임상시험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전문가라는 집단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라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위쉐펑 칸시노 회장은 최근 중국 관영 CCTV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코로나 감염증이 통제되지 않은 국가와 지역에서 활동하는 평화유지군도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0년 2월 10일 베이징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치료 전문 병원인 디탄병원을 방문했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 백신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코로나 감염증이 중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했다는 ‘중국 발원론’ 또는 ‘중국 책임론’을 잠재우기 위해 백신 개발 공급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이 개발한 백신을 ‘세계 공공재’로 부르며 개발도상국에 백신 우선 공급을 약속했다. 필리핀·브라질·인도네시아·파키스탄 등이 중국 정부와 백신 개발사로부터 약속을 받아냈다. 시 주석은 7일 모로코 국왕과 전화 통화를 하며 아프리카 국가들이 먼저 중국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중국의 ‘백신 외교’를 두고 중국 정부가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국가들을 상대로 백신을 무기로 거래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중국 내 코로나 확산을 통제한 후 세계 각국에 마스크와 의료장비를 보내며 ‘마스크 외교’를 펼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