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근무에는 이렇다 할 그 어떤 장점도 없다(I don’t see any positives)."

미국 동영상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Netflix)의 리드 헤이스팅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재택근무’에 대해 싸늘한 평가를 내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실리콘밸리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재택근무 ‘예찬론’이 힘을 얻는 가운데, 돌연 반대표를 던진 것.

헤이스팅스 CEO는 7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려면 구성원끼리 둘러 앉아 토론을 해야 하는데, 재택 근무를 하면 서로 모이기가 어렵다"며 "특히 전 세계적으로 보면 딱히 득(得)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 백신이 (보건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는다면, 임직원들이 12시간 안에 업무에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코로나가 잦아들면 바로 재택 근무를 해제할 생각임을 드러냈다.

넷플릭스는 자율성을 중시하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유난히 독특한 기업 문화로 유명하다. 헤이스팅스는 창업 초기부터 ‘최고가 되거나, 자리에서 밀려나거나(Best or Nothing)’라는 인사 방침을 내세웠다. 마치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처럼 각 포지션을 철저히 A급 직원들로 채우고, 해당 직원 능력을 최대한 활용한 후 적당한 성과만 내는 평범한 직원들은 퇴출한다. 과거 큰 업적을 세웠더라도 이번 분기 실적을 못 내면 정리 대상이다.

넷플릭스 한 임원은 1년 새 휘하 직원 75명 중 25명을 해고하면서 "지시받은 대로 일하고 현재 상태(status quo)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넷플릭스(Netflix)의 리드 헤이스팅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자칫 넷플릭스가 혹독하게 직원들을 몰아붙이는 것 같지만, 실제 대우는 정반대다. 쫓겨나지 않은 직원들에겐 업계 최고 수준 자유도와 보상이 주어진다. 넷플릭스에서 휴가는 직원이 원하는 만큼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근무시간도 따로 없고, 심지어 출장 경비를 일일이 보고할 필요도 없다. 자기 돈을 쓰는 것처럼 알아서 필요한 곳에 사용하면 나중에 무조건 실적으로 판단한다.

이렇게 직원들 손에 ‘자유’라는 칼자루를 쥐어주길 좋아하는 헤이스팅스 CEO가 유독 재택근무에 부정적인 의견을 앞세우는 까닭은 뭘까. ‘회사는 프로 스포츠팀이지 놀이터가 아니다’라는 평소 지론을 실천하는 데 있어 재택 근무는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헤이스팅스 CEO는 이날 인터뷰에서 "감독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선수가 체육관에 얼마나 머무르느냐’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얼마나 잘 뛰는지’만이 중요하다. 하지만 생각해 봐라. 엘리트 선수가 되려면 일단 체육관에 꽤 오랜(quite a bit) 시간 머물러야 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또 "코로나19가 끝나도 주 5일 가운데 4일은 회사에서 일하고, 하루 정도만 재택 근무를 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기업들이 이 정도선에서 재택 근무를 권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곧 재택 근무 열풍이 사그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금에야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거대 IT기업들을 필두로 너나할 것 없이 전면 재택 근무를 권장하고 있지만, 곧 업무적 효율성과 창의성 문제로 새 타협점을 찾아 나설 것이란 평가다.

헤이스팅스 CEO 말대로 실리콘밸리 기업은 회의 전 티타임, 회의 후 식사 자리, 사무실에 옹기종기 앉아 옆 사람과 나누는 잡담에서 얻는 영감을 중요시 여긴다.

스티브 잡스가 픽사 스튜디오 새 사옥을 지으면서 모든 직원이 서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도록 동선을 설계한 것도, 야후를 이끌던 마리사 메이어가 직원들의 재택근무에 반대한 것도, 땅값이 천문학적으로 치솟는데 기업들이 굳이 실리콘밸리에서 사무실을 유지하는 것도 모두 ‘대면(對面)’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나왔다.

헤이스팅스 CEO 말고도 ‘창의성을 무심코 얻는 계기를 없앤다’며 재택 근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CEO가 역시 적지 않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최근 코로나 사태 이후 재택 근무 문화가 퍼지자 "직원들이 회의실에서 옆 사람과 회의 전 2분 정도 잡담하는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고 경고했다.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창업자는 살아 생전 "이메일과 인터넷 채팅만으로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다는 건 미친 소리"라며 "창의성은 즉흥적인 만남과 임의로 이뤄지는 토론에서 나온다"고 재택 근무를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