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관가(官家)가 또 술렁이고 있다. 지난달 청와대에서 다주택 고위공무원에 대한 주택 매도 권고가 내려온 지 한달 만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재원 확보를 위해 임금 20% 삭감 얘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장·차관들은 4달째 급여의 30% 정도를 반납했고, 고위공직자들도 임금을 동결한 바 있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한 국장급 간부는 "올해만 4번째 고통분담인 것 같다. 연가보상비는 삭감됐고 재난지원금은 신청하지 않았다. 강남도 아닌데, 2주택자라고 집 팔라는 얘기에 눈치를 보고 있다. 이제는 월급까지 줄인다고 하니, 기가 차다. 아내가 얼마나 짜증이 났으면 뉴스를 보내왔다. 솔선수범과 고통분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만 무슨 일만 생기면 공무원부터 후려치겠다는 전 근대적인 사고를 보면 참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정부 세종청사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청사로 이동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말하는 4번의 고통분담은 ▲연차보상금 삭감(4월) ▲재난지원금 반납(5월) ▲다주택자 매도 권고(7월) ▲공무원 임금 20% 삭감(8월) 등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실상 한달에 한번꼴로 고통분담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번 공무원 임금 삭감 논의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처음 거론했다. 그는 지난 21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2차 재난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우선 공무원 임금 삭감을 제안한다. 공무원들이 9~12월 4개월간 20% 임금 삭감을 하면 2조6000억원의 재원이 생긴다"고 했다.

조 의원의 발언 이후 그의 페이스북에는 "의원님부터 솔선수범 부탁드립니다", "재산이 14억원이나 되던데 이 기회에 10억쯤 헌납하고 이야기 하시죠", "국회의원 월급부터 줄이자" "말단 공무원들의 봉급이 얼마인지는 알고하는 얘기냐",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 급여도 또 깎냐" 등의 댓글이 달렸다. 벤처창업가인 타다 이재웅 대표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가장 앞장서서 고생하고 있는 분들의 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논란이 계속되자 기획재정부는 진화에 나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4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공무원 임금 삭감안을 묻는 질문에 "공무원 인건비에서 재원을 마련하려면 인건비의 80%를 차지하는 하위직 보수를 삭감해야 되는데, 제약이 있다"며 "지금 8월 말이어서 올해 남아 있는 급여지급 달수가 넉달이고, 한달치라 해도 (2차 재난지원금을 위한) 재원이 많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며 사실상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고통분담을 할만큼 했다는 분위기가 많다. 또 청와대나 국회 등에서 사실상 강제적인 고통분담을 강요하면서 이른바 ‘고통분담 피로도’가 쌓여가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4월에는 2차 추경 예산의 재원 마련을 위해 공무원들의 연차보상비 3963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연차보상비는 가지 못한 연차를 돈으로 보상하는 것을 말한다. 기재부 소속 사무관 A씨는 "지난해 휴가를 가지 못해 일주일 가량 연차가 남았지만 한푼도 보상받지 못했다"고 했다. 5급 공무원 기준으로 의무 휴가를 쓰지 않았을 때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은 연간 약 107만원 수준이다.

또 지난 7월 긴급재난지원금이 나왔을 때도, 과장급 이상 공무원은 대부분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홍남기 부총리가 지난 4월 국회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공무원 사회에선 반납을 사실상 강제하는게 아니냐는 불만이 많았다.

여기에 다주택 고위 공무원에 대한 압박도 불만인 상황이다. 실·국장은 물론 최근에는 과장급까지 눈치를 보고 있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자녀나 대출 등 각 집안마다 사정이 있는데 승진하고 싶으면 주택을 팔아야한다는 결정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부이사관 승진을 앞둔 과장급이 아니면 사실상 버텨보자는 분위기가 많다"고 했다.

공무원 임금 삭감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공무원 임금 삭감안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추후 논의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공무원의 임금을 삭감한다고 얻어지는 재정효과보다 최전방에서 코로나19 방역에 나서는 공무원들의 사기저하 손실이 비용적 측면에서 더 클 수 있다"며 "2차 재난지원금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누구한테 어떻게 사용할지 정교하게 설계부터 하는게 우선이다. 지금은 방역에 모든 정책적 역량을 집결해야 한다. 벌써부터 돈 쓸 생각만하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