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해외 석탄발전 투자 논쟁
외신 "文 정부는 입장 밝히지 않고 애매한 태도로 일관"

정부가 나라 안팎에서 석탄발전 수출을 중단하라는 압박을 받으면서 한국전력(015760)이 베트남에서 추진 중인 석탄화력발전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정부가 국내에선 탈(脫)석탄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해외에서 대기오염을 유발하는 석탄발전을 지원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한전과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 석탄화력발전사업 참여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는 등 행동에 나섰다.

반면 기업들은 "수출마저 끊기면 국내 석탄산업 생존이 위태롭다"고 호소하고 있어 해외 석탄발전 투자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한 석탄화력발전소 전경

◇ "한국 정부, ‘그린뉴딜’하면서 대기오염 유발하는 석탄발전 해외투자는 모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이 해외 석탄발전사업 투자를 중단하지 않아 환경단체와 해외 투자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FT는 박유경 네덜란드 연기금(APG) 이사의 말을 인용해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과 일본이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소극적이었으나 지난달 일본이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을 줄이기로 결정하면서 한국이 가장 뒤처지게 됐다"고 전했다.

그동안 국내외 환경단체와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전력의 동남아시아 지역 석탄화력발전 프로젝트 참여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이들은 한전이 정부의 급진적인 탈원전·탈석탄 기조에 발맞추면서 해외에서는 수익을 내겠다며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화석연료 발전 프로젝트를 검토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환경보호에 초점을 맞춘 한국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과 어긋난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해외 투자자들은 연초부터 한전의 해외 석탄화력발전 투자 중단을 촉구해왔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 6월 한전에 해외 석탄 발전소 투자에 대한 명확한 전략적 근거를 김종갑 사장이 직접 설명하라고 요구했고, 한전 지분을 보유한 영국성공회 재무위원회는 이달 초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전이 한국에선 '에너지 전환에 동참하겠다'며 립 서비스를 하고 해외에 석탄발전을 수출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투자금 회수 가능성을 시사했다. 주요 환경단체들도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님, 이것이 한국이 생각하는 그린뉴딜의 모습입니까?"라는 문구를 배치한 전면광고를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하면서 한국의 신규 석탄화력발전 투자를 비판했다.

최근 여당 의원들도 ‘석탄발전 수출 금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환·우원식·민형배·이소영 의원들은 한전과 금융기관의 해외 석탄발전사업 참여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해외석탄발전금지 4법’을 지난달 발의했다. 법안은 한전과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산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의 해외석탄발전 참여 및 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은 "해외 석탄 투자를 중단하고 일관성 있는 그린뉴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이 ‘기후악당 국가’ 오명을 벗을 수 있는 길"이라고 밝혔다.

그린피스와 기후솔루션,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4개 국내 환경단체들이 이달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국전력의 베트남 석탄화력발전 사업 투자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법안이 다음달 국회에서 통과되면 한전이 베트남에서 추진 중인 붕앙2호기 석탄화력발전사업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붕앙 2호기는 베트남 하띤성 지역에 건설되는 1200메가와트(MW)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로, 총사업비는 2조5000억원이다. 한전의 지분참여 규모는 2200억원이다. 한전의 투자가 결정될 경우 수출입은행이 8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고, 삼성물산(028260)과 두산중공업이 설계·조달·시공(EPC) 사업자로 참여할 예정이다.

◇ 수출마저 중단되면 국내 석탄 생태계 타격…업종 전환할 시간 필요

그러나 국내 석탄산업은 수출이 중단되면 두산중공업을 포함한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며 유예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의 경우 이미 탈원전 정책으로 타격을 받았는데, 수출 실적의 60~70%를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마저 줄어들면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 작업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두산중공업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가스터빈, 풍력발전 등은 아직 사업 초기 단계라 막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한데, 당장 수입원이 끊기면 미래 사업에 대한 투자를 단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24일 "현재 국내기업 여건상 석탄발전에서 가스발전 등으로 수출품목의 전면 전환이 곤란해 금융지원 즉각 중단 시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석탄산업 생태계에 타격이 우려된다"고 했다. 수출입은행의 해외 석탄발전사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에 어긋난다는 여당 의원들의 지적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들도 수출 금지로 인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가까스로 한전 이사회에서 투자 승인을 받은 인도네시아 자와 9·10호기 석탄화력발전사업에 참여하는 중소·중견 기업만 340여곳에 달한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법안이 다음달 통과될 경우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의 대출과 보증이 불가능해져 자와 9·10호기 사업 추진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전과 기업들은 ‘석탄발전이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구식기술’이라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전은 해외에서 짓는 석탄화력발전소의 대기오염 물질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친환경 기술인 초초임계압(USC) 기술을 활용하고 추가 비용을 들여 환경설비를 설치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USC 기술을 적용한 발전소는 MWh당 탄소배출량이 745kg으로 일반 석탄화력발전소 대비 약 100kg 가량 적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과 비슷한 수준의 탄소배출량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한전 측의 설명이다. 자와 9·10호기와 붕앙 2호기에는 탈질설비, 탈황설비, 저녹스(Low NOx) 버너, 전기집진기, 저탄장덮개 등 친환경 설비도 설치할 예정이다.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은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석탄발전소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친환경 방식으로 지원하는 조건으로 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런 조건에서 정책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며 "(붕앙 2호기에) 적용하는 기술은 석탄발전 기술 중에서는 최상위 기술로 국제기준에 비해서도 오염물질이 가장 적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해외 석탄화력발전 투자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FT는 "한국 국회의원들은 해외 석탄발전 프로젝트 투자 금지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는 계획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애매한(non-committal)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하는 한전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업계는 한전이 조만간 이사회를 열고 베트남 붕앙 2호기 사업 투자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고 오는 28일 개최 예정인 한전 이사회를 주목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붕앙 2호기 사업의 경우 아직 안건 상정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