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 남동공단에서 만난 중소기업 대표들은 "내년을 장담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매출은 곤두박질치고, 공장은 사흘 걸러 하루씩 가동하고 있어 언제 폐업해도 이상하지 않은 지경이라는 것이다.
위기는 코로나 때문일까?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위기의 시작점은 2018년이었다. 그해 최저임금 인상, 이듬해 무역분쟁, 그리고 올해 코로나까지. 이곳 대표들은 현 상황을 '퍼펙트 스톰(여러 악재가 겹친 대형 위기)'이라고 설명했다.
남동공단에는 최근 정부가 육성하겠다고 나선 '뿌리기업'이 몰려있다. 뿌리기업은 주조·금형·용접·열처리 등을 통해 조립 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이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근간이 된다는 의미에서 뿌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남동공단 내 뿌리기업들은 이미 노쇠 병약한 상태다. 2016년 5월 78.9%에 달했던 평균 공장 가동률은 올해 5월 57.5%까지 추락했다. 1998년 IMF 경제위기 당시 가동률(66.6%)보다도 낮다.
뿌리기업 대표들은 최저임금 인상 타격에 따른 출혈이 극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년간 최저임금이 32%가 오를 동안 매출은 그대로니 빚만 늘었다는 것이다. 연일 치솟는 공장 임대료와 원자재 값을 감당 못 해 도산하는 기업은 부지기수고,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동남아 업체에 거래처를 뺏기는 것은 예삿일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무역분쟁에 코로나까지 연달아 터지니 여기저기서 "도저히 못 버티겠다"는 비명이 나온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가 매년 발간하는 '뿌리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국내 전체 뿌리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꾸준히 줄고 있다. 2016년 4.82%에서 2017년 4.54%, 2018년 4.09%로 매년 떨어졌다. R&D 투자는 엄두도 못 낸다. 같은 기간 업체당 R&D 투자 비용은 8840만원에서 5600만원까지 쪼그라들었다.
"공단 내 사장님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설비에 투자하거나 부동산(공장부지)에 투자하거나 둘 중 하나죠. 당연히 돈을 번 쪽은 후자입니다. 설비에 투자한 사장들은 몇 년 못 버티고 공장 문 닫았어요. 수출 여건도 좋지 않은데 매년 인건비까지 오르니 남는 게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누가 뿌리산업에 뛰어들겠습니까?" 15년째 남동공단에서 철판 금형 업체를 운영하는 A대표 얘기다.
정부는 지난 7월 뿌리산업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뿌리산업이 정체된 원인에 대해 "기업들이 영세하고 기술혁신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단은 맞다. 하지만 해법을 제대로 찾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뿌리기술 범위를 확대하고 대출 프로그램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대출을 늘리면 뿌리기업들이 신규 투자에 나서고 대형화를 이룰 수 있을까. 현장에서는 정부 지원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지난 수년간 국내 뿌리기업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에 대한 고민과 분석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