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 남성 표준 세상인 '젠더 데이터' 폭로
'남성 디폴트'세상에서 여성은 '젠더' 때문에 죽는다
성추행, 성폭력에 무방비하게 설계된 공공장소
차 충돌 실험, 여성 고려 안해… 부상 확률 47% 높아
의약 임상도 여성 배제… 여성에게 효과 없는 약 많아

‘보이지 않는 여자들’로 남성 디폴트 세상을 폭로한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여성운동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Caroline Criado Perez).

최근 원색의 랩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등장한 젊은 여성 정치인의 옷차림에 갑론을박하던 사람들이 읽으면 딱 좋은 참고서가 나왔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젠더 이슈가 첨예한 이 시대에 딱 맞춰 도착한, 정밀한 팩트 보고서다.

핵심은 하나. 표준 인간이 누구인가?

표준 인간이 남성으로 설정되면, 그와 다른 신체와 정서를 가진 여성들은 모든 시스템에서 소수자로 ‘투명화’된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동서고금을 오가며 남성 디폴트로 설계된 세상이 여성을 어떻게 배제해왔는지를 폭풍처럼 서술한다. ‘성차별 사례에 관한 가장 광범위한 바이블'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책의 서술의 무기는 고양된 감정이 아니라 바로 ‘데이터’다.

왜 여성은 사무실에서 추위에 더 많이 떠는지, 스마트폰을 더 자주 떨어뜨리는지, 화장실에서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병원에서 더 자주 오진을 받고, 약효 없는 약을 먹고, 성폭력에 노출되고, 자동차 사고에서 더 많이 다치는지, 왜 댓가없는 노동을 하고, 세금을 더 많이 내는지… 도시계획, 경제, 정치, 재난 상황 등 16가지 영역에 걸쳐 여성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낸다.

가장 큰 문제는 ‘젠더 데이터 공백’, 즉 수집된 여성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팩트풀니스'의 한나 로슬링은 ‘가난 혐오 뉴스에 속지 말고, 데이터를 보라'고 권고했다. 장기 데이터에 근거한 큰 그림을 보면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다'고 근거 있는 낙관주의를 설파하며.

크리아도 페레스는 ‘세상이 진실로 더 나아지려면, 지금부터 여성 데이터를 수집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세상의 반을 지운 채 오랫동안 의심 없이 유지되던 남성 표준 세상에 허를 찌르면서.

‘모든 정책수립자, 정치인, 기업 관리자의 책꽂이에 꽂혀 있어야 할 책’이라고 한 ‘더 타임스'의 평가는 과찬이 아니다. 남성도 여성도 함께 잘 살기 위해 새로운 데이터 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영국의 여성운동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를 이메일로 전격 인터뷰했다.

크리아도 페레스는 여성 정치인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의원들의 말을 끊고, 옷차림을 지적하고, 아가씨나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도 하대의 일환이었다.

-‘젠더 데이터 공백’이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썼나?

"젠더 데이터 공백은 여성 데이터의 부재를 뜻한다. 의학부터 직장, 도시계획, 경제, 정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간 수집되었고 지금도 수집 중인 방대한 데이터는 대부분 남성의 것이다. 그 결과 지구상의 거의 모든 제도와 시스템, 환경이, 남성 디폴트(기본값)로 설계됐다."

-젠더 데이터 공백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기나?

"사소하게는 남성 기준(40세 70kg 남자의 기초 대사율)으로 맞춰진 사무실 냉방 온도 때문에 여자들은 덜덜 떨고, 남성의 손 크기로 제작된 스마트폰이나 피아노 건반 때문에 불편을 겪는다. 여성 임상 실험이 안 된 약 때문에 부작용과 위험에 노출된다. 여성은 세금이나 재난 상황에서도 더 많은 불이익과 위협을 당한다. 중요한 건 젠더 데이터 공백이 악의적이거나 고의적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가 처음부터 인간의 기준을 남성으로 정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해결된 사례가 있나?

"스웨덴 칼스코시(市)의 제설 작업이 그 예다. 2011년 스웨덴 칼스코시의 공무원들은 성평등 지침에 따라 모든 정책을 성인지적 관점에서 재평가했다. 조사 결과 제설 작업에도 성차별적 요소가 있었다. 데이터에 따르면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향이 높다. 자가용이 있는 가정도 남자가 거의 자동차를 사용한다.

시의원들은 보행자와 대중교통 이용자 우선으로 제설 순서를 바꿨다. 눈 속에서 유모차(또는 휠체어와 자전거)를 미는 것보다 운전하는 편이 더 쉽다고 판단해서다. 겨울 보행자 사고 비용은 도로 관리 비용의 2배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훨씬 이득이었다. 그동안 칼스코시가 여자의 희생, 남자의 혜택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데이터 공백을 인지한 뒤로 더 나은 정책을 설계했다."

젠더 데이터 공백이 메워진다면 여자도 남자도 더 지혜롭고 합리적으로 설계된 세상에서 살게 될 거라고 했다.

-디즈니의 공주, 마블의 영웅 캐릭터도 여성의 주체적인 시각이 반영되고, ‘미투’가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신의 지적은 매우 유의미하다. 무엇보다 엄청난 데이터를 기반으로, 데이터 공백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 설득력 있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을 깊게 파헤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있었나?

"의학 분야의 데이터 공백을 발견했을 때였다. 인류 절반의 생명이 달린 중대한 문제였다. 물론 그전에도 ‘남성이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디폴트 인간’이라는 믿음은 깊고 넓게 뿌리 내리고 있었다. 이 사회에 정치와 문화 전반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있고, GDP 산출을 비롯해 전 세계 경제 정책은 지금까지 여성의 무급 노동 기여분을 배제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의학 분야에도 데이터 공백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설마 생각지 못했다. 그 결과로 여성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충격이 컸다. 21세기에 여성의 심장마비 증상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여성의 심장마비는 남성의 증상과는 다르며 심장질환은 여체와 남체에서 다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반드시 알려야 했다."

2014년 FDA는 여성에게 두 번째로 흔한 약물 부작용이 ‘약효 없음’이라고 발표했다.

-여성에 관한 데이터가 제대로 수집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무엇인가?

"자동차 충돌시험이다. 역사적으로 자동차 충돌시험에 사용되는 인형은 평균 남성의 인체 계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뿐이었다. 지금까지도 177cm, 76kg의 인형은 자동차 충돌시험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된다. 평균 여성을 대표하기에는 너무 크고 또 너무 무겁다. 결국, 자동차의 안전성 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보자. 여자는 운전할 때 남자보다 더 앞으로 다가앉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손이 운전대에, 발이 페달에 닿고 계기판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전면 충돌 시 위험은 더 커진다. 자동차가 여자보다 더 뒤쪽으로 앉는 충돌시험 인형에 최적화되었기 때문이다. 안전벨트 시험도 유방이 있는 인형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좌석 등받이는 어떤가? 평균 여성의 신체보다 훨씬 무거운 중량을 흡수하도록 디자인된다. 충돌 시 여자가 남자보다 더 앞으로 내던져진다는 뜻이다. 똑같은 자동차 사고를 당할 때 여자가 중상을 입을 확률이 남자보다 47% 높고 사망할 확률은 17% 높다."

-‘여성 인형’ 모형으로 충돌 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건 충격적이다.

"한참 지난 후에야 ‘여성 인형’이 나왔지만, 사실상 크기만 줄인 남성 인형이었다. 알다시피 남녀의 차이는 신체 사이즈로만 국한할 수 없다. 남녀는 척추 간격, 근육과 지방의 분포, 머리와 목의 상대적인 크기, 골반도 다르다. 이 차이들은 모두 자동차의 안전성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게다가 여성 인형은 12세 아이만 한 크기로 아주 작아서 평균 여성을 대표하지 않는다. 또한, 유럽신차평가프로그램(유로NCAP) 테스트에서 여성 인형은 조수석에만 사용된다."

-자율주행차까지 만드는 21세기 최첨단 자동차 회사들이 안전에 관한 이런 중요한 사실을 왜 인지하지 못했을까?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답은 둘 중 하나다. 첫째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여자를 싫어한다는 것. 그런데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둘째는 남성을 중립적인 성으로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평균 여성이 평균 남성과 다르다는 사실을 아무도 떠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동차 충돌 시험. 여성 인형으로 시험하는 건 의무가 아니고, 시험을 한다 해도 ‘조수석’에 앉혀질 뿐이다.

-남성 디폴트 환경에서 당신이 겪은 불편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무엇인가?

"가장 직접적인 불편은 화장실에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그나마 화장실은 성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여자 화장실 줄이 늘 길다. 여자는 신체 구조상 화장실 사용 시간이 남자의 2.3배고, 남자보다 화장실에 가야 할 일이 잦다. 게다가 남자 화장실은 칸막이 말고도 소변기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나. 신체적 차이가 있는데도 동일 면적 화장실이 공정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크게 보면 UN 조사 결과 여자 3명 중 1명은 안전한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한다.

부적절한 위생 시설은 여자를 배제하고 위험에 떨게 하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하나다. 화장실을 비롯한 공공장소는 설계 당시부터 여성들에게 흔한 성희롱, 성폭력 문제가 고려되지 않는다. 불 꺼진 골목길, 열악한 조명 시설, 안전 요원이 부족한 대중교통, 성폭력 신고 및 감독 관리가 미비한 직장까지 전부 다!

도시 설계자들이 여자를 싫어해서 이렇게 됐을까? 아니다. 남자들에게 성폭력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라, 그 부분을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한 거다."

-정책결정자들의 생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나?

"여성 진출 공백을 메우면 된다. 의사결정과정에, 연구에, 지식 생산에 참여한 여자들은 여자를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정치 지도자의 젠더 감수성이 중요하다. 정치 영역에 더 많은 여성이 진출해야 한다.

요즘 시대에 기업들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다는 점을 볼 때 민간 부문도 놓칠 수 없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는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구글에 다니고 있었다. 샌드버그는 자신이 직접 아픈 발로 걸어보고 나서야 건물 가까운 곳에 임부용 주차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글은 샌드버그의 임신으로 뒤늦게 젠더 데이터 공백을 인지했다."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에서 젠더 ‘팩트풀니스'라고 극찬을 받은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 광범위한 통계와 사례로 무장하고 있다.

-나 또한 실내 냉방부터 스마트폰 크기와 자동차 설계, 피아노 건반, 의약품 등에서 모든 것이 남성이 디폴트로 되어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런 사례들을 대체 어떻게 선정하고 데이터를 수집했는지 궁금하다.

"인간은 자신의 상황을 기준으로 현실을 받아들인다. 남자들은 여자의 현실을, 여자들은 남자의 현실을 잘 모른다. 그래서 여자들은 몰랐다. 남자들이 같은 불편을 겪지 않는다는 사실을!

젠더 관련 문제는 아니지만, 예를 들자면 나는 하지불안증후군을 겪고 있다. 남들도 다 나와 같은 증상을 겪는 줄 알았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게 정상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어느날 친구에게 "아, 정말 지겹지 않니? 다리가 도무지 가만히 있지를 않아서 계속 움직여주거나 침대에 올려놓아야만 하잖아"라고 했더니 친구가 의아해했다.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그때까지 나는 내 경험이 보편적인 줄로만 알았다.

여자들은 피아노 건반이 손에 비해 너무 크거나 사무실이 너무 춥거나 한 것에 관해 "남자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럴 거로 생각하니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거다."

-한편으로는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더 안전하고 더 쾌적하며 더 호의적인 환경을 누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들 모른 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의문을 제기해도 바뀌지 않을 거로 생각해서.

"깨닫는 계기가 필요한 것 같다. 나 또한 페미니즘에 입문하면서 그런 문제들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20대 초까지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러나 당시에 어떤 책을 읽고 내 머릿속이 남성 디폴트적 편견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의 성별을 모르면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하다니! 큰 충격이었다. 왜 한 번도 그게 이상하다고 의식하지 못했을까. 그 후로 남성 디폴트 구조가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젠더에 민감한 환경에서 성장했나?

"가정환경이 특별하지는 않았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두 오빠가 있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외동딸이자 막내였다. 다른 게 있다면 우리 가족은 브라질, 스페인, 포르투갈, 대만,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살았다."

마블의 히어로 영화 ‘캡틴 마블'. 디즈니와 마블은 시대 정신을 흡수해 여성 캐릭터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2005년까지 영국에 개봉한 영화를 분석하면 대사 있는 배역의 28%만이 여자였고, 군중 장면의 17%만 여자가 등장했다.

-아이들의 경우, 성장 과정 자체가 ‘남성 디폴트'의 영향권 안에 있지 않나?

"일단 여자아이들은 교실에서 여자의 역사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 학교는 남자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가르친다. 가령 우리는 14~17세기를 르네상스로 분류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 시대에 여자들은 여전히 지적 예술적 활동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공공장소를 예로 들어 보자. 여자아이들은 10살 때부터 공원이나 운동장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남자아이들과 싸울 자신이 없어 남자아이들이 그곳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원 입구를 여러 개 만들고 스포츠 공간을 세분화하자 여자아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런 식으로 교육 콘텐츠와 공공 디자인 설계에서 점점 더 젠더를 고려하면,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잡히지 않을까?

"현재까지는 일부 국가에 혁신적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젠더 분석이 오직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추가적인 것, 틈새시장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한 이런 상황은 계속될 거다."

-성중립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할 잠재적 불공평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가장 시급한 문제는 기술과 인공지능(AI)인 것 같다. 기계 학습이 편견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젠더 편견 문제를 속히 해결해야 한다."

천재 과학자 하면 떠오르는 아인슈타인. 생각나는 과학자는 대개 남자다. 여성 천재 과학자가 역사 속에서 지워졌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 소비자가 점점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여성의 몸을 제대로 연구하고 데이터화한다면, 그것만으로 블루오션의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나? 더 작은 여성용 스마트폰을 만든다거나 등등. 기업이 여전히 소극적인 이유가 뭔가?

"다시 남성 디폴트적 편견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 같다. 남성 데이터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성 중립적인 데이터라는 생각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 의문을 제기할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무념의 편견’에 이의를 제기한다. 기업들이 하루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젠더 데이터 수집이 올바른 일일 뿐 아니라 사업적으로도 똑똑한 일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여성의 가정 돌봄 노동도 GDP로 데이터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은데.

"도시 계획을 짤 때, 정부 예산을 배정할 때, 직장 내 휴직 등의 사규를 정할 때 좀더 세밀하게 여성의 돌봄 노동(맞벌이 가정의 여성 노동자)을 고려해야 한다. 설계에서부터 대중교통이나 탁아, 승진, 휴가 등을 정교하게 반영하면 여자들이 더 공평하게 유급노동에 전념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GDP증가로 이어진다."

-출산, 호르몬 변화 등 여성들의 몸은 신비하고 복잡해서 수치화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남성들에게 뭐라고 답하겠나?

"일단 질문하라. 여성에게. 여성이 신비하고 복잡한 이유는, 오로지 여성에 대해 알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 데이터도 남성 데이터만큼 많아진다면 여성은 더 이상 그런 불가사의한 존재가 아니다."

-앞으로도 젠더 이슈는 불평등, 환경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놓쳐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의제다. 젠더 이슈는 어떤 방향성과 운동성을 갖고 전개될까?

"반복해서 말하지만 여성 데이터 공백을 없애는 게 우선이다. 모든 일을 시작할 때 ‘이 프로젝트의 기반이 남성 디폴트는 아닌가' 의심하는 것, ‘여성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남녀 모두를 위한 더 좋은 세상을 설계해나갈 수 있다. 그렇게 되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수많은 통계 자료를 근거로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다'고 주장한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나로슬링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가난과 혐오를 부추기고 갈등을 조장하는 뉴스는 많지만, 데이터를 보면 세상은 확실히 우상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교육, 복지 등 장기적인 큰 데이터를 보면 여성의 삶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젠더 데이터'라는 섬세한 돋보기로 보니 변화가 더 빨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는 여자들'이 여성판 ‘팩트풀니스'의 역할을 할 거라고 기대한다.

"아직 ‘팩트풀니스’를 읽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사실과 데이터에 근거해서 ‘여성 데이터 공백'을 보여주고 있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이겠다."

캐롤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여성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질문이 없으면 답도 없는 게 데이터의 속성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데이터를 향해 어떤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던져야 할까?

"일단 첫 단계는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할 것인지’를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결정하게 하는 거다. 집단 내 다양성이 부족하면 시작부터 틀리거나 불완전한 데이터가 수집될 수밖에 없다. 그다음 단계는 여성 데이터와 남성 데이터를 구분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요한 통찰을 놓치게 된다.

마지막 단계는 당연해 보이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인데, 데이터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거다. 특히나 자신이 아는 것과 다른 데이터일수록 더더욱! 분명한 것은 더 좋은 데이터는 더 좋은 의사결정을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