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원서 "지난해보다 수요 89% 감소...지급 불능"
기업 최대 유망주 '버진 갤럭틱' 주식 매각에도 역부족
"구조조정안 승인 안되면 9월 말에는 현금 바닥 나"

영국 사업가 리차드 브랜슨이 설립한 버진 애틀랜틱 항공사가 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연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 회사는 지난달 12억 파운드의 자금을 자체적으로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영국 법원을 거쳐 미국 법원에서 파산 절차를 밟게 됐다.

영국 항공사 버진 애틀랜틱(Virgin Atlantic)이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지난 4월 법정관리에 돌입한 호주 2위 항공사 버진 오스트레일리아(Virgin Australia)에 이어 버진그룹의 두번째 파산이다. 이른바 '괴짜 억만장자'로 불리며 우주산업분야까지 진출했던 리처드 브랜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대형 항공사가 파산한 대표 사례의 주인공이 됐다.

4일(현지 시각) 버진 애틀랜틱은 국제적인 지급 불능상황을 다루는 미 파산보호법 15조에 따라 뉴욕 남부 연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미 CNN방송과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이 보도했다. 미국 기업이 자국 법원에 채무의무 중지를 요청하는 11조와는 달리, 15조는 해외에 거점을 둔 기업이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조항이다. 즉, 외국 기업의 파산 절차를 다루고 미국인 해외투자자 보호를 요청할 때 해당된다.

버진 애틀랜틱은 이날 법원에 제출한 파산보호 신청서에서 "부채를 상환하고 지속 가능한 장기 성장을 위해 이해관계자들과 협상을 벌였다"며 "이는 합의된 자본의 재확충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항공 예약 신청이 1년 전보다 89% 감소했으며 2020년 하반기 현재 수요는 2019년 대비 25% 이상 감소했다"고 신청 사유를 설명했다.

이번 일은 코로나발(發) 경영난에 빠진 버진 애틀랜틱이 12억 파운드(약 1조8000억원) 규모의 자금 확보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힌지 한달도 안 된 시점에 터졌다.지난달 14일 이 항공사는 모회사인 버진그룹과 미국계 헤지펀드 데이비드슨 켐프터 캐피털 매니지먼트로부터 각각 2억5000만 달러의 투자와 2억1300만달러의 담보대출을 받기로 했었다. 여론 악화 등으로 영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게 되자,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 항공사 구제에 나선 것이다.

특히 브랜슨 회장이 '알짜 계열사'인 민간 우주탐사기업 버진 갤럭틱 주식을 처분해 확보한 자금 일부를 항공사에 투입해 화제가 됐었다. 당시 버진 애틀랜틱은 독자적인 자금 확보로 경영난을 극복하겠다고 자신했고, 당장의 파산 위기는 넘길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런 만큼 이번 파산신청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현재 이 항공사는 창업자인 브랜슨이 51%의 지분을 보유하고 미국 델타항공이 49%를 출자하고 있다.

이날 버진 애틀랜틱은 영국 런던 법원에도 내달 25일 표결을 통해 채권자들로부터 12억 파운드의 구조조정에 관한 방안을 승인받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회사의 구조상 영국과 미국 채권자 양측으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구조조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앞서 법원은 이 회사에 8월 25일 채권단 회의를 소집해 구조조정에 대한 투표를 실시하라고 명령했다. 버진 애틀랜틱 대변인은 "구조조정안 이행을 앞두고 관련 채권자 모두의 승인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버진 애틀랜틱은 런던 법원에 구조조정 협상이 승인되지 않을 경우 올해 9월에 현금이 바닥날 수 있다고 밝혔다. 항공사 측은 "구제금융 자금이 없으면 9월말까지 가용현금이 4900만 파운드로 떨어져 채권 보유자 계약에 명시된 7500만 파운드에도 못 미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버진 애틀랜틱은 올해 4월부터 유럽 노선을 비롯한 대부분의 운항을 중단했다. 5월에는 영국 개트윅 거점을 폐쇄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3000명이 넘는 직원을 해고했다.

브랜슨 회장의 '스페이스 드림'도 불투명하게 됐다. 버진 갤럭틱은 그룹 내에서도 가장 큰 기대를 받던 핵심 계열사지만, 항공사 구제를 위해 현금 조달차 주식을 팔면서 현재까지 2억 파운드 이상이 투입된 상태다.

지난해 10월 뉴욕증시에 상장한 버진 갤럭틱은 시가총액만 41억달러(약 5조원)에 달한다. 브랜슨 회장이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이상의 개인 자금을 쏟아부을 만큼 공을 들여 키웠다. 이후 테슬라의 스페이스X, 아마존의 블루오리진과 함께 3대 민간 우주탐사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여파 속에 주식까지 처분해 자금을 조달했던 버진 애틀랜틱은 결국 파산 수순을 밟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