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청계천에 위치한 예금보험공사(예보) 주변이 새로운 '집회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대규모 집회가 열렸던 광화문광장이나 서울광장 등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집회 신청이 불허되자, 정부에 항거하는 사람들이 예보 앞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30일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인국공) 노조는 다음달 1일 예보 앞에서 이른바 '인국공 사태'에 항의하기 위한 공동문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인국공 직원들이 길거리에서 집회를 진행하는 것은 1999년 공사 창립 이래 처음이다. 해당 집회에는 인국공 정규직 직원 약 1500명이 참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국공 사태란 정부가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 1900명을 일시에 정규직으로 전환한 일을 말한다. 인천공항 노조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정부의 보안검색요원 정규직 방침에 반발해 왔다.
노조 관계자는 "인국공 사태가 우리 사회의 공정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고자 공동문화제를 기획했다"라며 "문화제와 별개로 기존에 진행하던 대국민 서명운동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보 앞에서는 앞서 지난 2주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부동산 관련 온라인 카페 '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모임', ''7·10 취득세 피해자 모임'과 임대사업자협회 추진위원회, 임대차 3법 반대모임 등 4단체는 지난 18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예보 앞에서 부동산 규제 정책에 항의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주최측 추산 5000여명이 참가한 2차 집회에서 이들은 "땀 흘려서 번 돈이다. 국민 재산 보호하라!", "징벌 세금 못내겠다! 미친 세금 그만해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한쪽 신발을 벗어 하늘로 던졌다. 또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와 직접 민심을 헤아려보라는 취지"라며 무대 위에 '문재인 자리'라고 적힌 의자를 설치, 이곳을 향해 신발을 던지기도 했다.
예보 앞이 새로운 대규모 집회의 장(場)으로 떠오른 이유는 코로나 사태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2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 광화문광장·서울광장·청계광장 등에서 집회를 여는 것을 금지했다.
6·17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모임 운영자 이형오(47)씨는 "광화문 주변에서는 아예 집회를 할 수 없고 대안으로 택했던 서울역 광장에서도 집회를 열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당시 수 천명 규모의 집회를 열 수 있는 장소는 예보 앞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예보 앞에서의 반정부 시위는 당분간 이어질 예정이다. 서울시는 예보 등을 집회금지 구역으로 추가 지정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최근 여러 집회가 열리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코로나 상황이 지금보다 악화되지 않는 한 집회금지 대상구역을 확대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단체들은 서울시의 집회금지를 계속 따를 수는 없다며 광화문광장 등에서 집회를 열겠다는 뜻도 밝히고 있다. 우리공화당은 다음달 15일 광복절을 맞이해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앞 등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태극기 집회를 29일 예고했다.
앞서 지난 29일 서울시의 집회 금지 명령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도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은 "집회자들이 방역수칙을 준수할 경우 최소한의 범위에서 집회를 보장해야 한다"며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 등이 서울시를 상대로 제기한 옥외집회금지처분 집행정지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한편 지난주까지 예보 앞에서 열렸던 시민들의 부동산 집회는 이번 주말 인국공 노조의 집회계획에 따라 여의도로 장소를 옮겨 진행된다. 부동산 관련 온라인 카페 4개 단체는 내달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역 1번출구에서 오후 4시부터 '전국민 조세저항' 집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예보 앞 부동산 집회를 추진해 온 이형오씨는 "집회가 여러 차례 진행되면서 온라인 카페 회원이 아닌 사람들도 기사를 보고 집회에 오기 시작했다"며 "예보 앞은 늘어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없어 더 넓은 장소를 찾아 여의도로 옮기게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