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웃는 집값은 투기세력 아닌 정책 과오 탓"
부동산으로 쏠리는 유동성…기업 투자 부진 영향
과도한 증세 ‘매물잠김’ 현상 초래할 가능성도

천정부지 치솟는 집값이 부동산 투기세력이 아닌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한 결과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법인세 인상 등으로 과도한 유동성이 실물로 흘러가지 못한데다 취득세, 양도소득세 등 세금 중과가 매물잠김 현상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3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문 정부 조세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30일 바른사회시민회의와 시장경제제도연구소가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투기세력이 집값을 끌어 올렸다는 논리는 명백한 오진(誤診)"이라며 "부동산 문제의 주범은 지난 3년 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풍부해진 시중 유동성이 실물로 흘러가지 못한 정책 실패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조 교수와 김상겸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등이 참석했다.

◇ 부동산에 쏠리는 유동자금...反기업 정책 해소해야

정부가 각종 부동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주택가격은 꾸준히 상승하는 모습이다. 한국은행,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문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17년 이후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의 중위값은 지난 2017년 5월 6억600만원에서 올해 6월에는 9억2600만원으로 약 52.7% 올랐다.

정부에서는 과잉 유동성을 집값 상승 요인으로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시중 유동성이 이미 3000조원을 넘었다"며 "정부는 넘치는 유동자금이 부동산 같은 비생산적 부분이 아니라, 건전하고 생산적인 투자에 유입될 수 있도록 모든 정책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DB

실제로 문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17년 5월 2460조원 수준이던 통화량은 3년새 약 530조원 증가했다. 27일 한은에 따르면 올해 5월 광의 통화량(M2 기준)은 3053조9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35조4000억원 늘어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4월에는 전월대비 35조원 증가해 사상 처음으로 3000조원을 넘어섰다.

조 교수는 이런 과잉유동성 문제가 기업들에 불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들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정책 불확실성이 유동성이 실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부동산 과열을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최저임금 인상, 무리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법인세 인상 등 반(反)기업 정책을 펼치면서 유동성이 기업 등 실물로 들어가길 바라는 것은 모순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조 교수는 "기업 투자의 법제적 환경을 개선해 유동성이 기업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며 "하지만 정부는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만 흘러간다고 한탄하며,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가리고 있다"고 했다.

◇ "증세는 집값 '기폭제'…매물잠김 현상 우려"

최근에 발표된 6·17, 7·10 등 부동산 대책에 대해서는 시장의 내성을 키우고, 매물이 사라지는 '매물잠김' 현상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내놓은 보유세 외 취득세, 양도소득세 등 거래세 중과가 집값을 상승시키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26일 서울 송파구 아파트 단지 상가의 부동산 중개업소 아파트 매물 정보란이 비어있다.

조 교수는 "거래세가 대폭 인상되면서 매물이 나오는 퇴로가 차단되는 모습"이라며 "지금 안 사면 영원히 못 산다는 공포가 확산될 수밖에 없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수요자를 비롯한 2030 젊은 세대들까지 잇달아 패닉바잉(공황구매)에 나서는 것도 이로 인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반발하는 여론은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실검(실시간 검색어) 챌린지'와 오프라인 촛불 집회 등에 이어 지난 27일에는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부동산 대책이 신뢰보호원칙,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취지에서였다.

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목표가 ‘국민의 주거안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성난 민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은 26일 합동 보도자료를 내고 최근 제기되는 소급적용 위험, 실수요자 피해, 집주인 권리침해 등 이슈에 오해가 있다며 정책 목표를 재확인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김상훈 미래통합당 의원이 재산세가 중저가 주택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부과되고 있다고 지적하자 "오는 10월 중저가 부동산에 대한 재산세울 인하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