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A씨는 몇달 전 회사를 그만두고 휴식을 취한 뒤 최근 새 직장에 출근했다. 그런데 동종업계에 A씨의 이직 소식이 '지라시' 형태로 퍼졌다. 지라시에는 사실과 달라 명예를 훼손시킬 수 있는 허위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B씨는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았다. B씨의 실명과 소속 등을 담은 내용의 지라시가 삽시간에 퍼졌다. 직장 동료 C씨는 "코로나에 걸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온라인에서 유포되는 지라시"라고 말했다.
증권가 직원이나 국회 고위 관계자 등 일부 수요자를 중심으로 생산, 유포되던 지라시가 빠른 속도로 대중화 되고 있다. 최근에는 유명인 뿐 아니라 일반인으로까지 지라시 대상이 확대, 심각한 사생활 침해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생활 폭로에 인신공격까지 일반인들의 피해가 확산되면서 지라시에 대한 공포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 반론권 없는 일반인 '지라시' 피해 더 심각
이달 초 SK바이오팜이 유가증권시장 상장 후 주가가 급등하자 "SK바이오팜 직원들의 재산이 급격히 늘면서 사내 연애(불륜)가 급증하고 있다"는 내용의 지라시가 유포됐다. 누군가 SNS상에서 유포시킨 허위 내용이었다. 이처럼 지라시는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반인과 관련된 지라시는 직장과 실명이 특정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 소속 직원이 지라시 대상일 경우에는 'LG남 ㅇㅇㅇ', '삼성녀 ㅇㅇㅇ' 이런 방식으로 개인 이름 앞에 기업 사명을 붙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지라시 피해자는 소속 회사 측으로부터 지라시에 대한 해명을 요구받는 상황이 생긴다. 피해자 개인 명예 뿐 아니라, 소속 회사 명예도 함께 훼손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한 부장급 관계자는 "지라시에 이름이 올랐을 때는 이미 사내에 소문이 다 퍼진 뒤라 명예 회복 자체가 쉽지 않고 회사 안에서도 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일반인을 소재로 한 지라시는 대부분 구체적인 사실 확인 절차가 없이 양산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단순히 '카더라'식의 제보와 일방적인 주장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도 일단 지라시 피해자가 되면 반론을 통한 명예회복 기회가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다.
법무법인 오킴스의 엄태섭 변호사는 "떠도는 이야기만 가지고 진실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은 허위사실에 대한 반론권이 보장되고 기자회견도 할 수 있지만, 일반인은 해명의 기회나 절차가 없어 지라시로 입게 되는 피해가 더 크다"고 했다. 그는 또 "지라시 피해 소송에서 이겨도 금전 배상액이 100만원도 안되는 경우가 많아, 변호사 수임료도 안나온다"며 "피해자들이 선뜻 소송을 걸기 어려워한다"고 덧붙였다.
회사원 D씨도 다른 대기업의 경력공채에 합격한 이후 회사 측 만류로 이직을 포기했지만, 한동안 지라시가 돌아 힘들었다고 한다. D씨는 "경찰에 고소를 하려고 찾아갔지만, 고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지라시를 더 확산시킬 것 같아 포기했다"며 "고소 대신 해명할 기회를 원했지만, 유명인처럼 기자회견을 열어 해명할 기회가 없어 답답했다"고 말했다.
◇ "신고 없이 수사하면 표현의 자유 침해"… 경찰도 딜레마
경찰은 지라시 관련 범죄를 인터넷 공간에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사이버 명예훼손⋅모욕'이라는 범주로 분류한다. 경찰이 접수한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 발생건수는 지난해 1만6633건으로 2017년(1만3348건) 대비 2년 만에 24% 증가했다. 올들어 6월까지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 발생건수는 8093건으로 전년 동기(7664건)보다 5.6% 늘었다.
지라시 관련 피해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지만, 경찰은 피해 신고가 들어온 사건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지라시 생성과 유포 자체가 불법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경찰이 우연히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불법성 지라시를 인지해도 피해자 신고가 없으면 수사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경찰이 피해자 신고 없이는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것은 지라시로 인한 명예훼손이 '반의사불벌죄'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경찰 한 관계자는 "경찰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신고가 들어오지 않은 지라시 관련 범죄를 수사를 해도 나중에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헛수고가 된다"고 했다.
경찰이 지라시 관련 범죄에 대해 적극 수사를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경찰이 지라시 관련 범죄 척결을 빌미로 개인들의 SNS 활동을 간섭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을 감안해 지라시 수사는 신고를 받은 사건만 대해서만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다만, 코로나 사태처럼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는 신고가 없어도 (지라시 관련 범죄에 대해) 특별단속을 실시해 허위사실 유포자를 찾아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