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텍사스주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하라고 요구한 지 이틀만인 24일 중국은 쓰촨성 청두(成都) 주재 미국 총영사관을 폐쇄하라고 맞받았다. 이날 중국 주요 지수는 미국과의 갈등을 악재로 받아들이면서 급락(상하이 3.86%, 선전 5.00%)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오는 11월 미국 대선까지 미·중 갈등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며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상수가 되면서 실적 전망이 밝아지는 회사들이 있다. 중국의 기술 국산화 관련 회사들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던 중국 시장을 중국 기업들이 가져올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라 실적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반도체 소재의 수출을 규제한 뒤 한국이 규제 품목을 국산화하는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정책을 추진하면서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된 것과 비슷한 원리다.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뒤 모니터에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로고가 비치고 있다.

대표적인 회사는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SMIC다.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가 화웨이(華爲)에 공급하던 반도체를 미·중 갈등으로 더이상 공급할 수 없게 되면서 SMIC가 이에 대한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한 기대로 SMIC는 지난 16일 상하이증권거래소 커촹반(科創板) 상장 첫날 공모가보다 201.97% 상승하며 거래를 마쳤다. SMIC는 이번 공모를 통해 532억위안(약 9조1700억원)을 조달했다.

SMIC는 커촹판 상장을 통해 모은 투자금으로 경쟁사인 TSMC와 삼성전자(005930)에 뒤쳐지는 기술 수준을 높인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SMIC의 투자금은 중국내 반도체 소재·장비를 공급하는 중국 내 업체들에게 흘러들어가 중국 정부가 조성한 '반도체 펀드'와 함께 중국 반도체 장비 업계의 수익으로 연결될 전망이다.

반도체 세정·에칭 장비 회사 북방화창(NAURA)도 24일 종가 기준으로 지난 1년간 65.48위안에서 178.59위안으로 3배 가까이 올랐다. 이 회사는 올해 1분기 YMTC, 화홍반도체 등에 장비를 공급했는데 SMIC가 증설하면 수혜를 볼 것이란 기대도 받고 있다. 또다른 반도체 소재·장비 회사 AMEC도 작년 7월 상장후 주가가 2배 넘게 올랐다.

김철민 삼성증권(016360)연구원은 이와 관련 "작년 기준 중국 반도체 설비 시장 규모는 134억5000만달러로 글로벌 2위 시장이지만 설비 자급률은 5%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미국 정부의 반도체 규제 하에 중국 반도체 설비 국산화 흐름은 이들 회사에게 장기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외에도 ZTE처럼 5세대(5G)이동통신 장비를 공급하거나 INPUR처럼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운영하는 회사들과 인공지능(AI) 보안 분야의 하이크비전,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및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인 용우네트워크도 기술 국산화 수혜 업체로 분류된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하는 양신일중(两新一重) 전략은 5G와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 중심의 신형 인프라 사업 추진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들 업체들도 대부분 지난 5월 22일 중국 정부의 양신일중 전략 발표후 주가가 올랐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기술 견제를 받으면 국산화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우리나라의 소·부·장 정책처럼 성공 가능성이 낮아도 길게 보면서 키울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주들이 중국 증시를 주도하면서 기술주 중심으로 구성된 중국 증시 지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23일 커촹반의 주요 50사(社)를 담은 커촹50 지수가 출시됐고, 오는 27일에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본토 기술기업 30사를 담은 항셍테크지수가 출시될 예정이다. 커촹50은 기술주와 함께 제약·바이오 주식도 담고 있다. 홍콩테크지수는 알리바바, 텐센트, 메이퇀 같은 플랫폼 기업들도 포함돼 있다.

이들 신설 지수는 한국 투자자들의 중국 기술주 투자 문턱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일반 투자자들은 지난해 문을 연 커촹반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중국인과 등록된 외국인 투자자만 투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촹50 지수가 출시되면서 이를 추종하는 펀드·ETF 상품이 등장할 수 있다.

한정숙 미래에셋대우연구원은 "중국 정부는 성장산업에 대한 자금조달 여력을 확대해 금융업과 정보통신업이 자생적으로 동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자급자족을 통해 대외적 제재압력의 피해를 최소화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중국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전략은 단기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성장주 비중을 늘리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