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北에선 전대협이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충성 결의한다고 해"
이인영 "北에서 잘못 알아…충성맹세하고 주체사상 신봉하지 않았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23일 개최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마치 '사상 검증장' 같았다. 영국 주재 북한 공사 출신 태영호 의원을 중심으로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과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이었던 이 후보자에게 "사상을 전향했느냐"고 물었고, 이 후보자는 "주체사상 신봉자가 아니다"라면서 "남쪽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이인영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野 "이인영, 반미자주노선 리더…사상 물을 수 있다"

태 의원은 이날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 질의를 시작하면서 준비해 온 자료를 꺼내 들었다. '태영호와 이인영 두 김일성 주체사상 신봉자의 삶의 궤적'이라는 자료였다. 태어난 해가 비슷한 두 사람(태 의원 1962년, 이 후보자 1964년)이 과거 주체사상을 믿었던 과거가 있다는 것이었다.

태 의원은 1980년대에 북한에선 "남한에 주체사상 신봉자가 대단히 많다, 전대협이라는 조직 성원들은 매일 아침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남조선을 미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충성의 결의를 다진다"고 가르쳤다"고 했다. 이 후보자는 "아마 북쪽에서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다"며 "전대협 의장인 제가 매일 아침 김일성 사진 놓고 충성맹세하고 주체사상을 신봉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태 의원은 또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이 후보자 삶의 궤적을 많이 들여다봤는데, 언제 어디서 사상전향을 했는지 찾지 못했다"며 "저는 대한민국에 와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자는 언제 어디서 더는 주체사상 신봉자가 아니라고 공개선언 한 적 있느냐"고 물었다.

이 후보자는 "이른바 전향은 태 의원처럼 북에서 남으로 오신 분에게 해당한다"며 "저에게 사상전향 여부를 묻는 것은 온당하지 않은 질문"이라고 했다. 또 "북에선 사상전향이 강요되는지 모르지만, 남쪽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있다"며 "남쪽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대협 의장 활동) 당시 주체사상 신봉자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통합당 박진 의원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운영하는 공개 자료실에서 받은 것이라며 '동지여 전진! 동지여 투쟁!'이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은 1987년 9월 출간됐고, 저자는 '이인영'이라고 적혀 있다. 이 문건엔 미국에 대해 "세계 민중의 철전지 원수 아메리카 침략자의 파쇼적 통치"라고 언급돼 있고, 혁명의 주체를 "수령-당-대중"의 삼위일체된 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후보자가 작성한 글 맞느냐"는 박 의원 질의에 이 후보자는 "아니다"라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잘못 기록한 것"이라고 했다.

문건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양키 침략자는 38선 이남에 이승만 괴뢰정권을 내세워 민족해방투쟁의 깃발을 갈갈이 찢고자 책동하여"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박 의원이 "이승만 대통령은 단순 이승만 박사가 아니라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 대통령이다. 동의하느냐"고 묻자, 이 후보자는 "이승만 대통령을 우리의 국부라고 하는 건 다르게 생각하다. 우리 국부는 김구가 되는 게 마땅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진석 의원은 "통합당 의원들이 사상문제 관련 질문하는 이유가 있다"면서 "이 후보자는 반미자주 노선의 전대협 학생운동 리더였다. 대한민국 정부 국무위원이 되고자 하는 후보자에게 검증 위한 질문은 당연하다"고 했다. 조태용 의원도 이 후보자의 전대협 의장 활동과 반미(反美) 활동 대해 물었다. 이 후보자는 "그 당시에도 제가 노골적으로 반미자주노선을 추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박진 미래통합당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국무위원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與 "민주주의. 이인영 같은 청년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

더불어민주당 측은 이 후보자의 사상 문제를 제기하는 통합당 의원들을 향해 "매우 유감"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당 김영호 의원은 "이 후보자에 대한 야당 질의 내용이 매우 유감스럽다"며 "대한민국 4선 국회의원과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게 주체사상을 포기하라, 전향했느냐고 묻는 것은 굉장히 국회를 모욕하는 행위"라고 했다. 윤건영 의원은 "오늘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이 후보자와 같은 독재 시절 수많은 청년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천박한 사상검증 대상이 아니다. 대단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재정 의원은 인사청문회장에서 태 의원이 이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는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고 "태 의원이 이 후보자 사상검증을 할 거라는 말이 있어서 '그러면 코미디'라고 일축했는데, 그 장면을 지금 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다짜고짜 '특정 사상을 믿느냐'는 사상검증 태도는 대한민국 헌법이 그 누구에게도 허락한 적 없다"면서 "명백한 십자가 밟기"라고 했다. 이 의원은 질의 시간 일부를 할애해 "대한민국 국회의원 질의 태도가 반헌법적이었다. 충격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십자가 밟기'는 일본 에도막부 시절, 기독교를 금지했을 때 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예수나 성모 마리아 그림을 바닥에 놓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했던 '에부미(繪踏)'를 가리킨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고 있다.

◇"저와 임종석, 北 잘 안다…의심, 기대로 응원해 달라"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남한의 친북(親北)성향 인터넷 매체 '자주시보'의 글을 축약해 보도하는 형식을 통해 "이번 (청와대) 인사에서 이인영, 임종석 두 사람에게 기대도 많다"면서 "한미워킹그룹, 사드, 한미연합훈련 싹 없애라고 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한 통합당 김태호 의원 질의에 이 후보자는 "저와 임종석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에 대해 북쪽에서 어떻게 이야기했느냐에 주목하기보다, 저와 임 특보는 북한을 잘 안다"며 "당면 문제를 잘 풀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조금이나마 의심하는 게 있으면 의심하지 말고 기대로 응원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