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고 관련 정보 공개를 꺼리던 대기업 연구소들이 달라지고 있다. 여전히 기술 보안에는 철저하지만 유튜브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분위기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기업 연구소 직원들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연구소 내부와 다른 직원들을 소개하는 '브이로그'나 '웹 예능' 형식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인 브이로그(Vlog)는 자신의 일상을 촬영한 영상 콘텐츠를 의미한다. 예전에는 연구소를 홍보하지 않거나, 홍보한다고 해도 딱딱한 소개 영상을 올리는 정도였지만 최근엔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삼성전자(005930)는 최근 26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계정 '삼성전자 뉴스룸'에 '데이로그'와 '직장인 Vlog' 시리즈 영상을 올리고 있다. 연구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직접 영상에 나와 출근부터 퇴근까지 자신의 하루 업무 일과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삼성의 대표적인 연구소로는 미래 선행기술을 연구하는 종합기술원과 조금 더 제품화에 가까운 기술을 연구하는 삼성리서치 등이 있다. 삼성전자가 4대 미래 성장 사업으로 선정한 AI·5G·바이오·반도체 중심의 전장부품 모두 종기원에서 선행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브이로그에 나오는 연구소 직원들은 직접 셀카봉을 들고 실제 근무하는 사무실이나 팀 회의 장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측정실에 가서 해당 직군 연구원들이 맡은 업무를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실무자들을 인터뷰해 연구소와 관련된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연구원들의 컴퓨터 화면이나 인력 등 민감한 정보는 '삐' 소리를 입히거나 블러 처리를 해 이곳이 기업 미래를 책임지는 연구소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LG사이언스파크 유튜브 계정에 올라온 '엘사인의 브이로그' AI 담당 연구원의 하루 업무 일과 편.

LG(003550)그룹도 일주일 간격으로 '엘사인의 브이로그'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엘지사이언스파크인(人), 즉 LG 계열사별 대표 연구소가 모여 있는 LG사이언스파크에 근무하는 직원이 직접 나와 자신의 하루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LG사이언스파크는 연구개발 인력만 2만2000여명에 달하는 LG그룹의 미래먹거리를 책임지는 연구단지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사이언스파크는 LG의 미래를 책임질 R&D(연구·개발) 메카로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 중요성이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일과 10일 유튜브 'LG사이언스파크' 채널에 올라온 두 편의 영상엔 AI(인공지능)개발인프라팀 안소연 선임이 등장한다. 안 선임은 오픈오피스로 꾸며진 사무실에서 아침 회의에 참여하고, 토론토에 있는 AI 연구원과 화상회의를 진행한다. 그는 지난 6월 새로 시작한 'LG AI HUB 시스템'이라며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선뜻 공개하기도 했다. 출근길로 시작해 사내 식당, 토크 콘서트, AI 난제 해결 교육 등을 간접 체험하는 브이로그는 오후 5시 30분 안 선임이 퇴근하면서 끝이 난다.

현대자동차 유튜브 계정 'Htmi'에 올라온 '현대자동차 연구소 남양연구소 사람들은 무슨 일을 현대?' 전자신뢰성시험팀 편.

웹(web) 예능 형식의 연구소 소개 영상도 있다. 현대차(005380)남양연구소 소속 연구원들이 나오는 '남양연구소 사람들은 무슨 일을 현대?' 영상이다. 남양연구소는 지난 2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재계 총수 최초로 방문해 화제가 됐다. 남양연구소는 파워트레인, 설계, 디자인, 전장 부품 등 차량에 적용되는 모든 기술을 담당하는 현대기아차 R&D의 전초기지다.

자신들을 사내 크리에이터 '연구소 꼬꼬'라고 소개한 연구개발 소속 직원 2명은 'I♡NY' 티셔츠를 입고 전자파 무반사 시험실 등 시설을 탐방한다. '남하(남양연구소 하이)' 등 신조어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30초 후 공개 ㄱㄱ(고고)' 같은 자막을 입히는 등 웹 예능에서 유행하는 편집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영상이 올라오는 계정 이름은 현대(H)와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과한 정보)를 합친 'Htmi'인데, 로고에 "이런 것까지 말해도 돼요?"라는 말풍선이 달려있기도 하다.

SK이노베이션 유튜브 계정에 올라온 대전 기술혁신연구원 편.

SK이노베이션(096770)은 유튜브를 통해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기술혁신연구원을 첫 공개 했다. 대전에 있는 기술혁신연구원은 석유·윤활유·고분자·배터리·신소재 분야 등에 대한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곳으로 보안상 잘 드러나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영상에서는 'SKinnoMan(스키노맨)'이라고 불리는 직원이 SK를 상징하는 빨간색 운동복을 입고 나와 대전 기술혁신연구원을 구석구석 투어 형식으로 보여준다. 유튜브 영상에 필수적인 '구독' '좋아요' 요청도 빠지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홈페이지에 올려둔 통상적인 홍보 영상이 아니라 실제 직원들이 나오는 영상이다 보니 시청자들 공감대를 더 많이 형성할 수 있다"면서 "그동안 연구소가 보안을 이유로 공개를 잘 안 하다 보니 취업준비생이나 학생들이 지원할 때도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런 영상들을 통해 정확한 직무 정보를 제공하면서 기업도 적합한 인재 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