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 목적의 항생제 남용을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일반적으로 항생제는 바이러스 감염에는 효과가 없고 세균감염에 효과적이지만, 코로나19는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 발생하므로 항생제는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없다.

의료계에서는 보조적 치료로 항생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코로나19로 인해 폐렴이 발생하면 이차적으로 세균성 폐렴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어 사용되는 것일 뿐 예방이나 주된 치료법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내성과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사용량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5월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약을 구매하기 위해 문의하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달 1일(현지 시각) 제네바에서 열린 정기 기자회견에서 "항생제 남용에 따라 내성이 커진 박테리아도 걱정될만한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WHO는 합병증으로 박테리아에 감염된 경우가 아니라면 경증 코로나19 환자에게는 항생제를 처방하지 말라는 지침을 이날 발표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항생제는 면역력과 저항력이 떨어진 노약자, 암환자, 이식환자에게 내성이 잘 생긴다"며 "항생제 내성은 인류가 질병과 싸우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산물이지만,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우리 몸은 내성이 생겨 다음 치료에는 더 강력한 항생제를 사용하게 되고 결국엔 어떤 강력한 항생제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생겨난다"고 지적했다.

과거 대비 항생제 사용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많은 수준의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의약분업 시행 이후 항생제 처방률은 2002년 43.35%에서 2018년 22.86%로 줄었다.하지만 여전히 OECD 회원국보다는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국민의 하루 항생제 사용량은 34.8DDD(Defined Daily Dose)로, 하루 동안 1000명당 34.8명이 항생제를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터키(40.6DDD), 그리스(36.3DDD) 다음으로 많고, OECD 평균(21.2DDD)과 비교해서는 1.6배 많았다.

현재까지 학계에서 코로나19의 증식을 억제하는 것으로 공식 입증된 항바이러스제는 없다. ‘인터페론-알파 주사제’(B/C형 간염 치료제)와 ‘칼레트라 경구약’(로피나비어/리토나비어 복합제·1형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 치료제)의 동시 투여, 또는 리바비린 또는 타미플루(인플루엔자 독감 바이러스 치료제)가 일부 환자들에게 투여되어 효과가 있었다는 보고가 있지만 이를 일반화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항생제를 과다복용할 경우, 유익균을 모두 죽여 또 다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대표적으로는 정상 세균이 사라진 틈을 타서 독소를 발생시키는 해로운 세균이 증식해 장염을 일으키는 항생제연관장염(CDI)이 있다. 보건복지부는 "항생제 사용 후 설사와 같은 증상이 있을 경우에는 항생제 사용을 중단하고 ‘CDI’ 발병 여부를 우선 확인해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계에서는 항생제로 인한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고혈압, 당뇨, 아토피, 피부염 등의 만성질환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추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고려대 의대 김희남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18년 이같은 의견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연구결과는 학술지 ‘미생물학 트랜드(Trends in Microbiology)’에 게재됐으며, 장내미생물이 항생제에 노출되면 생존을 위한 긴축반응을 일으켜 항생제 내성을 갖는 세균이 늘어나고 결국 장내미생물 구성에 심각한 왜곡현상이 생긴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 항생제 내성세균들은 대부분 돌연변이를 보유하고 있고 항생제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오래 유지되는 성질을 보이기 때문에 왜곡된 미생물구성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무엇보다 영유아 시절 문제가 발생하면 성인이 돼서도 같은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았다.

반대로 항생제만 먹으면 변비가 생기는 사람이 있다. 이 경우 항생제 복용이 완전히 끝난 후에 프로바이오틱스를 챙겨 먹으면 좋다. 다만 항생제와 프로바이오틱스를 동시에 먹지 않아야 프로바이오틱스의 효능이 작동한다. 두 약을 먹어야 한다면 몇 시간 간격을 띄우고 먹어야 한다.

무엇보다 항생제를 복용할 때는 의사가 지시한 복용법과 복용 기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증상이 일시적으로 사라졌다고 해서 복용을 중단하거나 간헐적으로 먹으면 항생제에 저항성(내성)이 생겨 감염이 재발할 수 있다.

한편 글로벌 제약사들은 항생제 내성을 ‘코로나19 대유행에 필적할 만한 위협’으로 보고 공동 기금을 마련해 새 항생제 개발에 착수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로슈, 머크, 존슨앤드존슨 등 20개 제약사는 WHO와 협력해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규모의 기금을 마련하고 새 항생제를 개발하는 30여 중소 생명공학 회사에 제공할 계획이다.

유엔에 따르면 약물 저항성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70만명에 이른다. 유엔은 세계 주요국가의 충분한 공조 대응이 이뤄지지 않으면 2050년에는 희생자가 1000만명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