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5년까지 160조원을 투입하는 ‘한국판 뉴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하면서 한국전력(015760)의 전기요금 개편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부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골자로 한 ‘그린 뉴딜’ 분야에만 73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는데, 이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행하려면 전력망 개편과 함께 전기요금 체계도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재생에너지 보급 비용을 소비자가 전기료로 부담하는 형태로 갈 가능성이 높아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전력 나주 본사 전경

16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정부의 ‘그린 뉴딜’ 계획에 발맞춰 보다 근본적인 전기요금 개편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원래 한전은 지난달 말 전기료 인상 방안을 담은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 충격을 감안해 발표를 하반기 이후로 미뤘다.

정부가 추진하는 탈(脫)원전·탈석탄 중심 에너지전환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걸맞는 전력시장을 구축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전기요금 체계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한전도 이런 변화를 반영해 조만간 개편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은 재생에너지 보급이나 환경규제에 쓴 비용을 떼어내 전기요금 고지서에 별도로 표기하는 ‘환경요금’란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관계자는 "환경 관련 비용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높이고 에너지 절약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전기요금에 포함된 환경요금을 별도 고지하는 것을 시작으로 소비자에게 에너지전환에 필요한 비용을 알리고, 장기적으로 이 비용을 전기료와 분리해서 부과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실제 미국, 영국, 독일, 일본과 미국 일부 주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 보급 비용을 소비자 전기요금이나 별도의 환경부담금 형태로 거둬들이고 있다.

한전이 ‘환경요금’ 표기를 고려하게 된 배경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환경비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한전이 탄소배출권과 RPS(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 구입 등에 지출한 비용만 2조원이 넘는다.

특히 탄소배출권 비용은 지난해 한전 적자의 주범으로 꼽힌다. 탄소배출권은 매년 탄소 배출 기업들이 정부로부터 일정 한도를 부여받고 이를 초과하는 배출량에 대해선 외부에서 탄소배출권을 사들여야 하는 제도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최근 2년 사이 급등한 데다 배출권 유상 할당량이 2021년부터 기존 3%에서 10%로 상향 조정될 예정이라 한전의 환경비용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와 함께 한전이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연료비 연동제는 전기 생산에 사용하는 연료 가격이 오르거나 떨어지면 이에 맞춰 바로 전기 요금을 조정하는 제도다. 유가가 하락하면 전기료가 내려가고, 유가가 오르면 전기료도 상승하는 식이다. 한전 입장에서는 실적 변동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원가가 반영되지 않는 현재의 고정 요금제에서 한전은 고유가 시기에 연료비가 올라 적자를 내고 저유가 시기에는 연료비 하락으로 흑자를 내는 상황을 반복해왔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연료비가 저렴한 원자력과 석탄 발전이 줄고 상대적으로 연료비가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늘어난 점도 한전이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고려하게 된 요인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한전이 환경비용 부담을 덜고 실적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기요금 개편안을 마련한 뒤 그린뉴딜과 에너지전환 정책에 필요한 인프라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력 공급원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려면 지금의 대규모 중앙집중형 전원에서 분산형 전원으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관련 발전 설비와 스마트그리드 구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전은 정부가 원하는 전력시장을 구축하기 위해 향후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특히 스마트그리드에 추가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다만 현재와 같이 국제유가와 밀접하고 환경 비용이 계속 증가하는 비용 구조로는 ‘빚내서 투자하는’ 형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어 지금과는 다른 전기요금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전기요금 개편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