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입법을 추진하기로 한 평등법 일부 조항들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법조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차별 행위자에게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액을 가중하는 징벌적 책임 조항 등은 사회적 약자인 '을'을 보호하기 위해 나왔지만, 오히려 '갑'을 차별하는 법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6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의견표명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국회의장에게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하면서, 국회를 통해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날 인권위는 차별행위 금지 내용 등을 담은 평등법 시안도 공개했다. 이 시안이 입법되면 인권위는 사인간 차별이 발생했을때 이에 대한 시정 권고를 할 수 있고, 사안이 중대한 경우에는 소송 지원도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손해배상과 관련해서는 입증 책임을 차별행위자에 부과하는 방향의 규정을 담았다. 기존 민법의 적용을 받을 때는 피해자가 차별행위자의 고의나 과실이 있음을 증명해야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 법 시안에 따르면 거꾸로 차별행위자가 고의나 과실이 없음을 증명해야 손해배상 책임을 면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의 시안은 차별행위가 있었다고 인정될 경우 차별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에 대한 입증 책임도 차별행위자에게 부과시켰다.

인권위는 또 차별행위가 악의적이라고 인정되는 경우 손해액의 3~5배를 가중하는 조항도 넣었다. 차별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경우에는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과 함께 법인에 책임을 묻는 양벌규정도 포함시켰다.

이같은 평등법 시안이 공개되자, 법조계 일각에서는 일부 조항들이 헌법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문제가 된 조항은 가중적 손해배상책임 조항과 차별행위자의 손해배상 입증책임의 부담 조항, 차별 관련 제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시 형사처벌 조항 등 세 가지다.

법무법인 대한중앙의 조기현 대표는 "손해배상액을 5배까지 물리는 것은 헌법상 책임주의 원칙과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며 "차별행위자로 지목된 자에게 차별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입증책임을 부담하게 하는 것도 과도하게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헌법상 권리인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차별 제보자에 대한 해고, 전보, 징계, 퇴학 그 밖에 신분이나 처우와 관련한 불이익 조치시 형사처벌을 한다는 규정 역시 예시규정에 불과하고 추상적 측면이 강하다"며 "법관의 재량에 따라 형사처벌이 결정될 수 있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의 정주백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도 "평등과 불이익한 처분이라는 말 자체가 추상적이고 모호한데 이를 토대로 형사처벌을 한다는 것은 위험한 측면이 있다"며 "이 법안이 통과되면 평등 관련 소송이 급격히 늘면서 ‘사회적 카오스(혼란)’가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본회의장.

평등법 취지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법률은 중립적 지위를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공법학 교수는 "법률이라는 것이 중립적 지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한 입법상 미덕인데 이 법은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된 측면이 강해 법률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법조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국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에도 3배 이내로 가중적 손해배상을 규정한 사례가 존재한다"며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들도 가중적 손해배상 규정을 두고 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