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정보 불법 조회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윤종구)는 30일 남 전 원장의 항소심 선고에서 검찰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1심과 항소심에서 다뤄진 다양한 논거를 봤을 때 남 전 원장이 하급자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과 문정욱 전 국정원 국장은 1심과 마찬가지로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조오영 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해 1심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무죄로 판단했다.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정보를 수집한 국정원 정보원 송모씨에게는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서초구청 가족관계등록팀장이었던 김모씨는 위증 혐의가 유죄로 바뀌면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1심 벌금 100만원보다 처벌이 무거워졌다.

윤종구 재판장은 이날 이례적으로 판결에 대한 4쪽 분량의 사전 자료를 공개했다. 윤 재판장은 "가족과 그 구성원 정보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며 "혼인 외 자녀의 개인정보도 다른 정보와 동일하게 보호를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만약 가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얻을 경우 공익 목적이라면 광범위하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지만 징계‧수사‧보복 목적이라면 엄격하게 제한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윤 재판장은 이어 "재판 기준은 변하는 여론이 아니라 헌법, 사회상규, 공동지식 등과 이를 이성적, 법률적 언어로 정리한 법이며 원한, 분노, 복수는 법의 영역에서는 금기어"라고도 했다. 국정원 하급자가 채 전 총장의 가족 정보를 불법하게 취득한 것과 관련해 여론에 떠밀려 남 전 원장에게까지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남 전 원장은 지난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채 전 총장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첩보를 듣고, 하급자들과 공모해 혼외자의 가족관계와 학교생활기록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남 전 원장은 처음 첩보 보고를 받을 당시부터 "남자들의 허리 아래 문제를 들춰서 입에 담는 것은 아니다"는 식의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고, 첩보 검증 결과를 보고받고도 "쓸데없는 일을 했다"고 질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