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셰일 혁명’을 이끌었던 체사피크에너지(Chesapeake Energy)가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의 공장이 멈추고 이에 따라 글로벌 유가가 폭락하면서 셰일업계에 경영난이 불거진 탓이다.

체사피크는 일요일인 이날 미국 텍사스 남부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체사피크의 채무는 500억달러(약 60조원)에 달한다. 채권자는 10만명 정도다. 올해 저유가로 파산보호를 신청한 미국 석유업체 가운데 최대 규모다.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제시한 구조조정 방안을 보면 체사피크는 부채 70억달러를 탕감받고, 동시에 기업 회생(DIP·Debtor-In-Possession) 자금 9억2500만달러를 추가로 대출받길 원한다.

체사피크가 기업 파산 관련법에 따라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구조 조정을 하는 동안 금융시장에서 기업 회생을 위해 조달할 수 있는 대출 자금은 약 20억 달러인데, 회사는 이 중 일부를 주요 채권자인 프랭클린 템플턴 투자 등에 진 빚 상환에 쓰겠다는 계획이다.

체사피크는 기존 채무를 주식으로 출자 전환을 하는 방안도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텍사스 남부법원은 자산과 부채 상황을 살피고 채권자 의견을 들은 뒤 체사피크의 생존 가능성을 바탕으로 파산보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체사피크 에너지 주식이 거래되고 있다.

체사피크는 프래킹(셰일 암석을 수압으로 깨트려 천연가스와 석유를 함유한 셰일 오일을 추출하는 공법) 기술을 토대로 2000년대 미국 셰일 혁명에 앞장 선 업체다.

지난 1989년 톰 워드와 체사피크를 공동 창업한 오브리 맥클렌돈 전 최고경영자(CEO)는 천연 가스가 석탄과 석유를 대체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미국 전역에 진출했다. 이후 승승장구를 거듭해 지난 2005년에는 엑손 모빌을 잇는 미국 2위 천연가스 생산업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는 코로나19 사태로 석유 업계가 얼마나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전락해버렸다. 2008년 전성기 당시 350억달러를 넘던 시가총액 역시 26일 종가 기준 1억1600만달러로 300분의 1 수준까지 쪼그라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글로벌 수요 감소로 원유 등 에너지 가격이 급락하면서 금융권이 다른 셰일 기업에도 대출 삭감에 나섰다고 전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미국 대형 은행 JP모건체이스를 포함한 미국 지역 은행·투자사들은 오는 3분기 기업 대출 심사를 앞두고 이미 셰일 추출 기업을 대상으로 한 담보부 채권 대출 규모를 30% 정도 줄이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재 에너지 기업 대출에 따른 미국 은행권 위험 노출 금액은 총 6500억 달러(약 782조원) 정도. 미국 은행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로 그다지 크지 않지만, 앞으로 셰일 업계 전망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예상 손실 규모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일부 전문가들은 셰일업계를 대표하는 체사피크 도산이 군소 셰일업체 줄도산의 신호탄이 될 지를 우려하고 있다. 법무법인 헤인스앤드분에 따르면 5월말 기준 미국 석유 시추·생산업체 가운데 18곳이 이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유가가 4월 바닥을 찍은 뒤 반등하고 있지만, 여전히 셰일 관련 업계가 생존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배럴당 45달러’ 선에는 훨씬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셰일 업체 뿐 아니라 유전 관리·시추 설비 업체들도 줄줄이 실적 부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세계최대 원유 유전 관리업체 슐럼버거(Schlumberger)는 1분기에 배당금을 대폭 삭감했다.

무디스 선임 연구원 존 티로프는 "셰일 붐 기간에 쌓은 막대한 부채를 감안하면 당분간 셰일업체들이 줄도산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