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사기구(IMO)의 황산화물 배출 규제가 시행된 지 6개월 만에 선박 연료 시장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해운사들은 오염물질 저감장치(스크러버)를 설치하거나 저유황유를 사용하는 대신, 아예 한 단계 더 환경친화적인 액화천연가스(LNG)에 몰리고 있다. LNG선은 황산화물을 거의 배출하지 않는 데다 기존 연료유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친환경 선박으로 볼 수 있다.

25일 조선업계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저유황유와 고유황유의 인기가 사그라들고 있다. 세계 최대 벙커링(연료 공급) 항구 싱가포르항을 찾는 선박은 지난달 3059척으로 27년 만에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지난달 벙커유 선박 연료 판매량은 전년도(369만톤)에 비해 대폭 줄어든 78만5000톤이었고, 저유황유 판매량도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항 RWG 터미널.

유럽 최대 저유황유 벙커링 항구인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의 상황도 비슷하다. 로테르담 항구에서 1분기 판매된 벙커유와 저유황유 양은 207만톤으로, 지난해 1분기 판매량(201만톤)과 비슷한 수준에 그쳤다. 반면 LNG 선박 연료는 지난해 1분기(5403톤)보다 3배가량 늘어난 1만5710톤이 팔렸다.

최근 선박 연료시장에서 LNG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엄격한 환경규제 때문이다. IMO가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 상한선을 3.5%에서 0.5%로 대폭 강화하면서 선주들은 저유황유 또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쓰거나, 탈황장치인 스크러버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스크러버는 환경 문제, 저유황유는 품질 문제가 불거져 LNG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

선사들은 최근 개방형 스크러버를 금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스크러버 설치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 국제친환경교통위원회는 "폐수를 바다에 버리는 방식의 개방형 스크러버를 모두 폐쇄형 스크러버로 개조하라"고 선주들에게 촉구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25개국 항구에서는 앞서 개방형 스크러버 입항 금지를 결정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스크러버 수주잔량도 급속도로 줄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LNG추진선 수주잔량은 1890만DWT(재화톤수용량)에서 2440만DWT로 29% 증가했으나, 스크러버 수주잔량은 1730만 DWT에서 970만 DWT으로 44% 줄었다. 클락슨 리서치는 "남아있는 700여개의 스크러버 개조공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며 "수주잔고도 많지 않다"고 분석했다.

프로미스호에 설치된 배기가스 세정장치 ‘스크러버’.

저유황유는 품질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고유황유에 맞춰 설계된 엔진에 저유황유를 넣었을 때 고장이 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지속해서 나와서다. 조선업계에서는 "저유황유가 엔진 고장을 일으켜 바다 위에서 배가 멈춘 사례도 있다"면서 "저유황유 사용에 따른 대책과 연구, 품질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황이 이렇자 조선·해운업계에서는 LNG 추진선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트라(KOTRA)는 오는 2025년 글로벌 신조 발주 선박 1800여척 중 LNG 추진선이 1085척(60.3%)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LNG선박연료 수요가 높아질수록 LNG추진엔진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며 "한국 조선소들의 LNG추진 선박의 수주량이 하반기로 갈수록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백점기 부산대학교 교수는 "환경규제가 강화될수록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며 "경쟁국가에 비해 기술력이 뛰어난 한국 조선소들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