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증세 목적이 아닙니다."
"세수 확보 차원으로 접근한 게 아닙니다."
"다시한번 당부드립니다. 정말 증세 목적으로 한게 아닙니다."

임재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25일 발표한 금융과세 선진화 방안에 대해 "증세가 아니다"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2023년부터 2000만원 초과 주식 양도 차익에 세금이 부과되기는 하지만, 증권거래세를 낮추기 때문에 세수 차원에서는 중립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약 600만명으로 추정되는 개인 주식 투자자 중 5% 정도만 과세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임재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지난 24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 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광효 소득법인세정책관, 임재현 세제실장, 김문건 금융세제과장.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증세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금 상황에서 3년 후에 있을 일을 예측하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 요구한 증권거래세 완전 폐지를 정부가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 정부 출범 후 급증한 복지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금융부분의 과세 범위를 확대하는 증세를 단행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감세를 통해 경기를 부양해도 모자를 판에 국민의 세부담을 늘리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2023년까지 0.15%로 단계적 증권거래세 인하

정부가 25일 ‘제8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을 통해 확정한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 방향’에 따르면, 오는 2023년부터 주식 양도와 관련한 소액주주 비과세 제도가 폐지되고 2000만원 초과의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서 20%의 양도소득세가 부과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22년부터 기존 과세 분류에 금융투자소득을 신설해 주식·채권·파생상품 등 모든 금융상품에 양도세를 부과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기로 했다.

동시에 정부는 주식을 매도할 때 0.25%씩 원천 징수하던 증권거래세는 2022년 0.02%포인트(P), 2023년 0.08%P씩 낮추기로 했다. 2023년부터는 0.15%로 낮아진다.

이번 선진화 방향에 대해 정부는 증세 목적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임재현 기재부 세제실장은 "양도세 부과를 통해 늘어난 세수만큼 증권거래세를 인하하는 만큼 세수 차원에서는 중립적이다"면서 "양도차익에 2000만원의 기본공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 95%는 거래세 인하를 통해 세부담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주식 양도차익 과세가 시작될 경우 600만명으로 추정되는 개인투자자 중 5%인 30만명이 과세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수 효과는 2022년 금융투자소득 부분 시행을 통해 5000억원, 2023년 2000만원 이상 차익에 대한 양도세 부과 등을 통해 1조9000억원 늘어나지만, 단계적 거래세 인하를 통해 이만큼 세금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정부는 추정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2019년 증권거래세 세수가 6조원이었는데, 이것을 근거로 계산해서 시뮬레이션해서 나온 전망치"라고 설명했다.

25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전문가들 "정부 추정, 지나치게 자의적"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부의 추정이 지나치게 자의적이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양도세 부과 대상으로 2000만원 초과 이익자를 설정한 것은 현재 시행중인 금융소득과세, 부동산임대소득과세 등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다. 정부는 2010년에서 2018년 간 주식 양도차익이 2000만원 초과인 개인투자자 비율이 5.6%라는 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관련 세수 규모를 추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양도세로 인한 세수 증가분과 거래세 인하분이 같다는 정부측 주장에 의문을 표시한다. 거래세는 거래 횟수, 거래량 등에 의해 유동적이기 때문에 과거 통계치를 기반으로 미래 세수를 예측하는 게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양도소득세 또한 이익이 난 만큼 과세하고 손실이 난 만큼 공제를 하기 때문에 과세 시점의 시황에 따라 세수가 달라진다. 현 시점에서 세수 증감이 없다고 정부가 주장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단순하게 계산했을 때 2023년에 주식 양도차익으로 1조9000억원의 세금을 걷으려면 개인 투자자가 총 9조5000억원의 차익을 내야 하는데(세율 20% 가정) 지금 시점에서 이런 추정을 하는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계획보다 세금을 더 걷을 수 있고, 덜 걷을 수도 있다.

정부 내부에서도 이런 지적을 수긍해 제도 시행 후 거래세율을 낮추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금융세제 선진화 방안을 통해 세수 증가분이 발생한다면 과세가 시행되는 2023년 이후 거기에 맞춰서 거래세율을 더 낮출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주식차익 양도과세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시장에서 꾸준히 제시됐던 거래세의 완전 폐지 요구를 정부가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른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 한다는 원칙에 따라 양도 차익에 과세를 한다면 지금까지 소득세 대신 걷는 세금이라고 인식됐던 거래세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거래세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을 보고 세수를 포기 못하겠다는 정부의 고집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양도세율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000만원 초과 이익에 부과되는 양도세 기본세율 20%가 미국(15~20%), 일본(20%), 영국(10~20%), 독일(25%), 프랑스(30%) 보다 높지 않은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3억원 초과 수익에 할증세율 25%가 적용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세율 자체가 다른 나라보다 낮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시장에서의 제도 연착륙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보다 낮은 세율로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세율을 올리는 방식이 검토됐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세수보다 과세 범위가 대폭 넓어졌다는 점을 주목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안은 거래세율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과세 대상 및 범위가 늘어난 특징이 있다"면서 "정부는 세수 중립적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투자자들이 체감하기엔 증세에 가까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급증하는 지출 막으려 이곳 저곳 증세하나

경제 전문가들은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논의를 현 시점에서 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지난 24일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한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4월에 발표한 -1.2%에서 -2.1%로 0.9%P(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5.1%) 이후 22년만에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증세 논의에 불을 붙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급증한 복지 지출 등을 감당하기 위해 과세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온다. 정부는 올해 세법 개정을 통해 주식차익 양도과세 뿐만 아니라, 액상담배의 세율 상향 조정과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 등도 추진할 방침이다. 코로나 대응을 위한 올해 1~3차 추경을 통해 60조원 가량 지출을 늘리면서,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사상 최대치인 112조2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데도 과세를 확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 경제연구원의 고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경기가 악화될 때는 감세 조치 등을 통해 투자와 소비 여력을 보강하는 것이 상식적인 경제정책 운용인데, 복지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경기에 역행하는 증세 방안을 정부가 내놓고 있는 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