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시장에 뛰어든 건 처음입니다. 아주 은밀하고 치밀하게 준비했더군요."

네이버가 지난 3월 자회사 스노우를 통해 한정판 운동화 재판매(리셀) 플랫폼 ‘크림(Kream)’을 출범했다. 한정판 운동화의 가치가 부상하면서 주목받는 리셀 시장은 소상공인과 스타트업이 어렵게 키워 온 시장이었다. 운동화 거래를 중개하는 A씨는 "소수의 마니아를 상대로 한 작은 시장인데 국내 인터넷 비즈니스를 장악한 공룡 기업 네이버가 진출하다니, 놀랍고 불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의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통상 거래액의 10% 정도가 수수료로 책정되는 리셀 시장에서 크림은 운동화 재판매 수수료를 없애며 소비자를 빨아들이고 있다. 업계의 불안감은 커졌고, 아웃오브스탁·프로그 등 기존 업체들은 수수료를 절반으로 낮출 수밖에 없었다. 운동화 재판매 업체는 수수료가 수익의 전부인데, 인터넷 공룡 네이버가 자본력을 앞세워 영세업체를 짓밟는 모습이다.

게다가 크림은 국내 최대 온라인 스니커즈 커뮤니티인 네이버 카페 ‘나이키 마니아’와 독점 광고 계약을 맺었다. 회원 수 86만명에 달하는 이곳에서는 ‘크림’ 외의 리셀 업체명은 회원들이 금지어로 지정됐다. 자사의 플랫폼을 활용해 홍보를 독점한 것은 물론, 회원 간의 정보 교류마저 차단한 것이다.

커뮤니티 의존도가 높은 마니아 시장에서 자본으로 공동체의 관심사를 독점하고, 이를 컨트롤해 사세를 넓히는 전략은 상도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자회사)가 네이버(커뮤니티)와 손잡고 시장을 다 먹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크림이 운동화 리셀 시장을 장악해가는 과정은 낯설지 않다. 검색 포털과 온라인 게임으로 출발한 네이버는 인터넷 검색 노출 순서를 광고에 따라 조정하는 방식으로 자영자들이 주로 운영하는 식당·꽃집 등에서 돈을 받아냈고, 부동산 중개와 만화에 뛰어들어 시장을 장악했다. 최근에는 인터넷 쇼핑을 강화해 거래액 기준으로 사실상 국내 이커머스 시장 1위에 올랐다.

네이버는 생필품을 판매하는 ‘특가창고’, 유명 브랜드와 제휴한 ‘브랜드 스토어’ 등을 선보인 데 이어, 지난 1일 유료 멤버십 ‘네이버플러스’(월 4900원)를 출범했다. 멤버십 가입자가 쇼핑·예약·웹툰 등을 간편결제(네이버페이)로 결제하면 결제금액의 최대 5%를 포인트로 적립할 수 있는데, 유료회원제로 미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운 아마존을 연상케 한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인터넷 검색에서 슈퍼파워를 가진 네이버가 이커머스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불공정하고 입을 모은다. 자사 서비스를 우대하거나 경쟁 사업자를 배제하는 등 시장지배력을 남용할 거란 우려에서다. 이에 네이버는 ‘소상공인 사업 지원’이란 명분을 앞세웠지만, 업계는 꼼수라고 주장한다.

네이버는 중소업체들이 입점한 ‘스마트스토어’의 판매 수수료를 없애는 대신, 네이버페이 수수료와 쇼핑 광고 등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었다. 5월 기준 네이버 쇼핑에 입점된 업체는 32만여 개, 상품 수는 8억 개가 넘는다. 네이버에 입점한 사업자가 노출 빈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네이버페이 사용과 광고 제휴가 불가피한 상황. 여기에 네이버가 멤버십 가입자에게 주는 다양한 혜택을 고려하면, 사업자들은 네이버에 더 종속될 수밖에 없다.

네이버는 지난 15일부터 쇼핑 검색에 뜨는 광고 개수를 기존 4~8개에서 6~12개로 늘리는 시험 중이다. 이에 일각에선 네이버가 페이와 광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 쇼핑을 강화했다고 해석한다. 이를 통해 이커머스 시장도 장악하고 금융 사업도 키우는 일석이조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네이버의 국내 검색시장 점유율은 약 73%다. 공정거래법상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가 넘으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돼 규제를 받지만, 플랫폼 사업자인 네이버는 시장의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플랫폼 사업자의 독과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017년 구글이 검색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는 혐의로 24억2000만유로(약 3조283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다음 달부터는 온라인 플랫폼 규칙을 시행한다. 국내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말까지 온라인 플랫폼 분야 심사 지침을 마련하기로 했다.

규제가 답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명분’이다. 네이버를 키운 검색 서비스는 공공성과 투명성, 신뢰성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최근 행보를 보면 네이버는 이익에 눈이 멀어 이 자산을 훼손하는 듯하다. 네이버가 인터넷 골목 시장에 계속 눈독 들이는 모습도 아쉽다. IT 업체를 운영하는 B대표는 "네이버는 신사업을 할 때마다 ‘구글도 한다’면서 논란을 빠져나가는데, 과연 구글과 한 카테고리로 묶일 만한 혁신사업이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IT 대기업이라면, 골목시장이 아닌 세계시장에서 통 크게 싸워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