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간장에서 '반도'의 여전사로, 잊혀도 다시 시작"
"깡의 원조?... 간절하게, 진실하게 나를 비울 뿐"
"'반도'의 연상호 감독, 최고 감독이자 인생 멘토"
"취미 있어야 슬럼프 극복… 음식하면, 시름 잊어"
"가장 큰 창조적 자산은 억압 없이 보낸 유년 시절"
"조선의 레이디 가가? 퍼포먼스 시도는 내가 먼저"

‘부산행’ 속편, 블록버스터 좀비 영화 ‘반도(7월 개봉)'에서 여전사 ‘민정’ 역을 맡은 배우 이정현.

이정현이 요리를 잘한다는 소문은 일찍이 외식업계의 ‘대모’ 노희영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요리 예능계의 양대 구루 백종원과 김수미를 잇는 새로운 신데렐라로 등판할 줄은 몰랐다. ‘이정현 만능 간장'은 ‘백종원의 만능 간장'을 잇는 열풍을 일으키고, 최근 출간한 요리책 ‘이정현의 집밥 레스토랑'은 생활 요리계의 대가 김수미의 ‘수미네 반찬’과 즐겁게 경합 중이다.

차승원이 ‘삼시 세끼-어촌 편’에서 펄떡이는 참돔을 해체하고 장작불에 매운탕을 끓이는 동안, 이정현은 ‘신상출시-편스토랑’에서 긴 칼로 하몽(스페인산 생햄)을 자르고 토치로 불향을 입힌 만능 간장을 내놓으며 시청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코로나가 장기화하고 ‘집콕’ 생활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화구와 텃밭을 오가며 요리하는 스타들에게서 힐링을 얻었다.

어느 장소에서건 순서에 맞춰 하나씩 요리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건 얼마나 즐거운가.

광주항쟁을 다룬 전설적인 영화 ‘꽃잎'으로 주목을 받은 후, 20대를 세기말의 ‘테크노 전사'로 보냈던 이정현. 배우에서 가수로 급격한 커브를 그린 커리어 덕에, 30대에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 차근차근 ‘막노동’에 가까운 배역으로 영화계 스텝을 밟았던 이정현에게 요리 예능을 권한 사람은 연상호 감독이었다.

K 좀비 시대의 서막을 연 영화 ‘부산행’의 감독 연상호는 ‘부산행’ 이후 4년을 그린 속편 ‘반도’의 여전사로 이정현을 캐스팅했다. 그 자신, 애처가에 요리를 사랑했던 연상호 감독은 이정현에게 조언했다. ‘좋아하는 취미로 대중과 친밀해지는 것도 괜찮다’고.

폐허가 된 한반도에서 인육을 뜯어먹으려 달려드는 굶주린 좀비와 싸우던 이정현은, 촬영이 비는 날 집으로 돌아와 흰 앞치마로 갈아 입고 TV 카메라 앞에서 ‘만능 간장’과 ‘계란 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극과 극의 태도는 이정현에게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3천 대 1의 경쟁을 뚫고 ‘미친 소녀’로 스크린에 데뷔했을 때부터, 순간 전압이 백만 볼트로 치솟는 테크노 전사로 노래할 때도, 그는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엄마와 요리하며 몸과 마음의 치유를 받았다.

광기에 가까운 에너지로 ‘무당의 딸’이 아닌가 의심받던 이정현은, 평범한 부모를 둔 서울의 한 가정에서 딸 다섯의 막내로 자랐다. 시끌벅적한 집안에서 자매들과 넘치도록 사랑과 우정을 지지고 볶고, 끼니마다 풍성한 집밥을 먹고 컸다. 이정현이 부모로부터 받은 최고의 예술 교육은 ‘무조건 믿어주고 억압하지 않는 것’이었다.

코로나19 와중에서 개봉하는 도전적인 여름 블록버스터 ‘반도'의 제작발표회를 며칠 앞두고 이정현을 만났다.

청담동 언덕의 레스토랑엔 늦은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는 손님들이 몇몇 보였고, 한가로운 공기 사이로 과일 차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순백의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질끈 묶은 채 노메이크업 상태로 앉아 새처럼 지저귀는 이정현은, 이곳 여성들 가운데 가장 수수해 보였다. 인터뷰 내내 갓 태어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인터넷에서 이정현을 치면 ‘만능 간장'이 자동 완성되더군요. 기분이 어떤가요?

"좋아요. 마냥 신기하죠. 예전엔 카리스마, 여전사로만 알려져서 사람들이 상상도 못 했대요. 집에서 조용히 요리하는 사람인 줄은(웃음). 제가 연예계 생활 25년이에요. 그동안 제 나름대로 얼마나 업 앤 다운이 심했겠어요. 대중들 눈에 안 보일 때도 한 번도 쉰 적은 없었거든요. 중국, 일본 해외 활동하면서 비행기 타고 쉴 새 없이 국경을 오 가다가도, 집에 오면 엄마랑 TV 앞에 앉아 가만히 음식 다큐를 봤어요."

밥하는 소리, 밥 먹는 소리가 그렇게 평온하고 좋았다고 배시시 웃었다.

-무엇보다 요리하는 표정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어요. 스크린에선 늘 굶주린 상태로 극한의 연기를 해왔으니, 반전도 그런 반전이 없습니다.

"하하. 그 연기의 바탕이 다 잘 먹고 잘 자는 데 있었어요. 요리는 엄마에게 모든 걸 받았어요. 딸이 다섯이고, 그 식구가 다 모이면 20명이 넘었어요. 음식 있는 곳에 사람 있다고, 어릴 때부터 엄마는 손이 커서 김장도 한번 하면 300포기씩 하셨어요. 집에 오는 사람은 빈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었죠. 늘 먹이고 싸주고... 사춘기 때는 엄마가 고생하는 게 싫었는데, 커서 보니 그걸 제가 고스란히 닮았어요. 무조건 뭘 많이 해서 먹여야 해(웃음)."

요리할 때도 연기할 때도 끝까지 판다. 어린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에 집중할 때 발견되는 ‘몰아'의 상태를 보여주는 이정현.

-시끄럽고 다복한 집이었군요. 억압이 전혀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저희 집은 시험 기간에 공부하려고 밤에 불 켜놓으면 엄마한테 혼쭐이 났어요. "밤늦게 뭐 하는 거냐"고 불 끄고 나가셨어요. 다른 친구들은 학원 다섯 개씩 다닐 때라, 사춘기 시절엔 ‘왜 공부도 못하게 하냐'며 대들었어요. 엄마는 늘 ‘행복하게 놀고먹는 게 최고'라고 하셨어요. 용돈도 냉장고에 위에 두면 다섯 자매가 알아서 정직하게 가져갔어요. 아이들을 철저하게 믿어주셨죠."

-부모가 억압하지 않고 믿어주면 내재된 에너지가 ‘창의성'으로 폭발하더군요. 부모의 영향권에서 일찍 빠져나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사는 거죠. 정현 씨는 어떻게 연기를 하게 됐죠?

"4~5살 때부터 아빠의 전축에서 LP음악을 들으며 자랐어요. 퀸, 마이클 잭슨, 마돈나...미국 팝 영향을 많이 받았죠. 유치원 때부터 문 워크를 출 정도였어요(웃음). 원래 꿈이 가수였다가 우연히 영화 오디션을 보게 됐어요."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 오디션장에서 마지막 번호를 쥔 지원자였고, 16살에 3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나왔다. "주어지면 뭐든 정말 열심히 해요. 그게 돌고 돌아 또 다른 행운을 부르는 것 같아요"라며 복스럽게 웃었다. 문득 이정현의 2015년 작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생각났다. 열심히 살수록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도시 빈민의 삶을 그린 서늘한 블랙코미디.

한국판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라 불리는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그로테스크함과 사랑스러움을 동시에 보여준 ‘수남' 역할로 이정현은 2015년 청룡영화상에서 ‘암살’의 전지현, ‘차이나타운’ 김혜수, ‘무뢰한’ 전도연을 제치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화 제목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이정현을 연상시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열심히 살수록 점점 미궁에 빠지는 반면, 이정현은 계속 행운의 사다리를 탄다는 점이 다르지요.

"(놀라는 표정으로)그렇게 보셨어요? 저도 ‘꽃잎'으로 데뷔한 후 나이가 애매해서 활동을 못 했어요. 가끔 들어오는 배역도 거의 공포였는데, 그건 또 무서워서 못했죠(웃음). 그러다 가수 활동을 시작했는데, 한번 무대로 가면 영화계에는 또 없는 존재가 돼버려요. 가수 활동은 이십 대 초반이면 전성기가 끝나고, 열심히 해외 활동을 해도 국내에선 잊힌 채로 서른을 맞았죠.

다행히 2011년 무렵에 우연히 사석에서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그동안 왜 연기를 안 했느냐’며 얼마 뒤 아이폰 단편 영화 ‘파란만장’으로 불러주셨어요. 그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 단편에서 황금곰상을 받으면서 "이정현이 다시 연기한다"는 소문이 난 거죠. 그렇게 단편 영화, 독립 영화로 시작해 다시 차곡차곡 스텝을 밟아 올라갔어요."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기다리면, 어디에서건 늘 늦지 않게 기회의 바람이 불어오지요.

"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 뒤 ‘범죄소년'이라는 독립영화도 노개런티로 출연했는데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운 좋게 ‘명량'의 정씨 부인에 캐스팅이 됐어요. 분량은 조금 나왔는데 많이들 인정해주셨죠.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도 예산이 7천만 원이었나? 작은 영화라 노개런티였고, (밥값이 없어 아침 촬영을 못 한다는 걸 알고)제가 스태프들 식비도 대고 그랬어요.

회사에선 당연히 반대했지만, 전 그냥 이런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만 해도 좋겠다 싶었어요. 기대도 안 했는데, 그 영화가 개봉도 하고 저는 그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2015년)까지 받았어요."

1996년 ‘꽃잎'으로 신인상을 받은 후 19년 만의 수상이었다. 다른 세계를 향한 눈빛, ‘정상성'에서 밀려난 채로도 살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잡초 같은 여자' 역에 이정현을 능가할 이가 또 있을까. 그렇게 세기말을 가수로 보낸 후 통째로 날아갔던 2000년대 영화 커리어가 다시 시작됐다. 야망이나 총명보다는 순수하고 해맑은 몰입이 읽히는 이정현의 선택들.

-영화 ‘반도'는 ‘부산행'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연상호 감독과는 즐겁게 작업했나요?

"그분은 최고였어요. 감독님은 배우들이라면 꼭 작업하고 싶어 하는 최상위권의 리더죠. 완벽한 콘티, 본인이 샘플로 보여주는 직접 연기, 1분이 필요하면 딱 1분만 찍는 귀신 같은 효율성… 더 놀라운 건, 편집 결과를 보면 기가 막히게 장면이 붙어있어요. 슬픈 감정이면 불필요한 걸 쥐어짜지 않고, 딱 그 슬픈 연기를 건져 내요. 저녁 8시까지 예정된 촬영이, 점심 전이면 끝이 나죠."

-그 운영의 묘가 정말 궁금하군요. 자신의 머릿속에서 모든 설계가 끝난 감독만이 그런 식의 효율의 리더십이 나옵니다. ‘군함도'를 함께 했던 류승완 감독은 어땠나요?

"스타일이 다르죠(웃음). ‘군함도'는 역사물이었고, 류승완 감독은 좀 더 엄격했어요. 큰 작품이었고 풀샷이 많아,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는 가운데 한 쪽에선 연기해야 했어요. 모두가 합심해서 달려갈 수밖에 없었죠. 징용 노동자들을 표현하느라, 황정민, 송중기 씨도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체중을 뺐고, 저도 당시 몸무게가 35kg이었어요."

-늘 스크린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악바리처럼 몸을 쓰는 역을 맡아왔죠. 연상호 감독은 이번 영화 ‘반도'를 위해 ‘매드맥스'의 무드를 참고했는데, 정현 씨는 혹시 ‘매드맥스'의 여전사 샤를리즈 테론에게 영감을 받았나요?

"아니요. 특별히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저는 무조건 감독님을 멘토처럼 의지하고 따라갔어요. 시나리오에 나온 대로, 감독님이 알려준 대로… 모든 게 명확했어요."

2020 칸 영화제 공식 초청작 ‘반도'에서 총을 든 이정현.

-16살에 ‘꽃잎'에 출연할 때는 어땠죠? 장선우 감독은 90년대 한국영화계의 작가주의적인 마초로 유명했지요.

"모든 게 무서웠어요. 필름 돌아가는 소리도, 엄청난 규모의 촬영 스태프들도… 첫날부터 촬영을 접고 ‘쟤, 누가 뽑았냐?’고 화를 내셨어요(웃음). 숙소로 돌아와 울면서 결심했죠. ‘연기를 모르니 그냥 미친 아이로 살자'고요. 다음날부터 그냥 미쳐서 거리를 헤매다녔어요. 불쌍해서 주민들이 데려다 씻기면 스태프가 와서 조용히 데려갔어요. 돌로 그어 온몸에 상처를 내고, 머리로 유리창을 받고 기절도 했어요. 백치 상태로 가서 그렇게 무식하게 했어요."

-그런 식의 극심한 메소드 연기는 자아를 훼손해요. 일상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의 혼돈을 겪을 텐데요.

"다행히 집에 오면 다 치유가 됐어요. 언니들 덕에 집안이 늘 밝고 시끄러웠어요. 엄마가 해준 된장찌개에 밥 먹으면 모든 상처가 다 아물었어요."

16살의 완벽한 여배우 ‘꽃잎'의 이정현. 데뷔작으로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자그마한 체구가 발산하는 에너지가 정말 대단합니다. 혹시 작은 키가 커리어에 제약이 된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아니요. 전혀요. ‘꽃잎' 오디션의 문구가 그거였어요. ‘소녀를 찾습니다. 작고 마른 소녀…’ 제 키가 160cm가 넘었다면 이 세계에 들어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어요(웃음)."

작은 몸이 뿜는 ‘깡'과 카리스마가 전도연을 닮았다고 했더니, 막대사탕을 베어 문 듯 감동적인 표정이 됐다. "감사하죠.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많은 배우가 다 악바리 근성이 있어요."

-‘깡'의 기질은 혹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나요?

"(웃으며)아버지는 성실한 강력계 형사였어요. 등에 권총을 차고 다니셨고, 점심엔 동료들을 데리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이셨어요. 보수적인 분이라 ‘혼날까봐' 저는 영화 오디션도 막내 언니랑 몰래 가서 봤어요. 그런데 합격 발표가 신문 1면에 나는 바람에 들켜서, 그날 아빠 앞에 무릎 꿇고 앉았죠. 아빠가, 절 보더니 단박에 그러셨어요.

"우리 딸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구나! 서울대 들어간 것보다 더 기쁘다!""

-자긍심으로 속을 꽉 채워주셨군요!

"맞아요. 그래도 저는 또 고생하는 거 보이고 싶지 않아서, 가족들이 촬영장에 절대 못 오게 했어요. 미성년자였는데도 촬영장에 내내 혼자 있었어요. 미친년 분장해서 피 칠갑을 하고 돌아다니던 때라… 그런데 어느 날 몰래 구경 온 아빠 엄마와 딱 마주쳤어. 마지막 광주 금남로 군중 촬영 현장에서요. 어찌나 놀랐던지 엄마 아빠가 신문으로 얼굴을 착 가리시더라고. 하하."

-박찬욱 감독의 ‘파란만장' 촬영 때도, 문소리 대타로 전화 받고 현장에 달려가 2시간 만에 저수지에 빠진 시체 연기를 했습니다. 메이킹 필름을 보니, 거친 바닥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마음으론 행복했다고 해서 놀랐어요.

"문소리 언니가 임신하는 바람에 갑자기 섭외 전화를 받았어요. 현장 가서 대본을 봤는데, 무당 역할이에요. 다행히 제가 브레이크 댄스를 배웠어요. 관절이 잘 돌아가요. 물에서 끌려 나와 엎어 치고 메쳐지며 끌려가는데 관절이 막 돌아간다고 감독님이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하늘에서 내려준 선녀라고. 모형 시체보다 더 시체 같다고요. 하하. 저는 그냥 그 모든 게 꿈같고 감사했어요."

-연기하는 태도가 정말 헌신적이군요.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친다는 느낌마저 들어요.

"간절하게 진실하게 해요. 완전히 그 인물이 되어서, 감독의 의도가 관객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무대는 달라요. 제 안에 있는 밝은 리듬이 나와요. 즐겁죠. 두 개의 장르에서 다른 에너지가 나오는 게 신기해요."

-무대에서 테크노 춤을 추며 가수로 살 때는 즐거웠나요?

"(힘차게)네! 그때는 또 모든 컨셉을 다 제 뜻대로 만들고 펼쳐냈어요. 1집 ‘와'에서는 동양적인 무대를 꾸몄어요. 그다음 ‘바꿔'에서는 여전사로, 2집에서는 이집트 컨셉, ‘줄래'에서는 바비 인형, 3집 ‘아리아리'에서는 야생녀 컨셉으로 갔어요.

제가 데뷔할 때는 세기말이라 다들 밀레니엄을 노래했어요. 사이버 컨셉 일색이었는데, 전 오히려 반대로 갔죠. 아쟁 소리를 넣고, 비녀 꽂고 부채 들고, 과격한 테크노 꺾기 춤을 췄어요. 작은 비녀는 안 보인다고 30cm나 길게 뽑아서 꽂았어요. 부채 안에는 눈동자를 그려 넣었는데, 동공이 지구였어요. 저의 구상은 동양적인 외계인이 지구를 바라보는 느낌이었어요."

테크노 ‘동방불패', 무대마다 쇼킹하고 완벽에 가까운 컨셉을 들고 나와 ‘컨셉 장인'이라 불렸던 이정현. 사진은 2015년 ‘무한도전-토토가'에 출연한 모습.

-놀랍네요! 무엇보다 신인 가수인데 컨셉을 만드는 능력과 권한이 있었다는 것이!

"어린 나이에 그렇게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았어요. 음반사 회장님이 첫 방송 나가고 "니가 한 이상한 화장에 눈동자 부채 때문에 다 망했다!"고 탄식을 하셨어요. 그런데 3일 만에 난리가 난 거예요. 거리 레코드점에서, 리어카에서 CD 사려고 길게 줄을 늘어섰어요. 그 뒤부터 컨셉은 모두 제 맘대로 할 수 있었어요."

-이정현을 ‘조선의 레이디 가가’라고 하지만, 무대마다 독특한 스타일과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먼저 선보인 건 레이디 가가보다 먼저였죠.

"시기적으로는 제가 앞섰죠(웃음). 레이디 가가의 인어 컨셉도 제가 ‘바꿔'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였던 적이 있어요. 소고기 드레스도 인형에 고기 옷을 붙인 한 아티스트의 작품에 영감받아 저도 써먹어야지 했는데, 레이디 가가가 입고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레이디 가가는 아트 팀이 있었고, 저는 끙끙대며 혼자 했다는 거예요(웃음)."

-자기만의 끼와 힘으로 한 시기의 음악 산업을 풍성하게 만들었어요. 진정한 ‘깡의 원조'가 아닌가 합니다(웃음).

"매번 방송국 미술감독을 쫓아다니며 이런 세트를 만들어 달라고 조르곤 했어요. 제 별명이 공포의 스케치북이었어요. 재미있으니 기를 쓰고 했지요."

-자신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뭐죠?

"최선을 다하자, 열심히 하자! 저는 설거지를 해도 음식물 망을 끝까지 다 비워요. 화장실 청소를 해도 배수구 머리카락 한 올까지 잡아내죠. 연기할 때도 능력의 최대치를 쓰려고 해요. 일단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잘 마무리하려고 해요."

-‘노력의 배신’을 느낀 적은 없나요?

"애초에 자신 없는 건 잘 안 해요(웃음). 가령 스트레칭은 해도 기술을 쓰는 스포츠는 안 해요. 노력해도 안 될 땐 저도 원망이 왜 안 들겠어요. 하지만 작은 기회라도 오면, 그때 되게 감사하며 해요. 나중에 후회하면 괴로우니까."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했지요?

"항상 잘 되면 그다음이 슬럼프였어요. 영화 ‘꽃잎'을 찍고 나서 바로 슬럼프였는데, 가수로 1집 내고 나니 또 슬럼프...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일은, 잘 되든 안 되든 슬럼프가 자주 와요. 피가 마르죠. 이겨내기 위해 저는 취미를 찾았어요. 취미가 있으면 힘든 시간을 견딜 힘이 생겨요. 그게 제겐 요리였어요.

주말엔 남편과 원예농장에 가서 천 원짜리 모종을 사요. 베란다 텃밭에서 상추와 블루베리를 키우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요. 어릴 때 엄마는 텃밭에 고추, 파, 배추… 온갖 채소를 다 심었어요. 끼니때면 언니랑 바구니 들고 채소 뜯으러 갔는데, 저는 그 심부름이 너무 좋아서 매번 콧노래를 불렀어요.

커서는 매주 목요일 TV 앞에서 7시 45분을 기다렸어요. ‘한국인의 밥상'을 보려고요. 엄마랑 둘이 앉아서 가마솥 뚜껑 위에 지글지글 소리 내며 부침개가 익어가면 세상 시름이 다 잊혔어요."

-슬플 때는 언제인가요? 기쁠 때는 언제인가요?

"슬플 때는 나이 드신 부모님이 아프실 때죠. 기쁠 때는 엄마가 당 수치도 혈압도 정상이라 기분이 좋으실 때고요. 잠시나마 함께 나들이하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요. 그리고 엄마한테 배운 레시피로 오이소박이며 김치며 유튜브에 소개한 걸 보고, 사람들이 ‘쉽게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할 때요. 엄마의 요리법이 퍼져서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그걸 보는 엄마가 웃으시니, 저도 참 좋아요."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죠?

"많이 움직이는데 그보다 더 많이 자요(웃음)."

-사랑을 받을 때 행복한가요? 줄 때 행복한가요?

"줄 때 행복해요. 엄마가 주위에 바라는 거 없이 베푸는 모습을 보고 컸어요. 그 복이 제게 왔다고 믿어요. 그래서 자꾸 주고 싶어요. 뻔한 말 같지만,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훨씬 기쁨이 커요."

해맑은 광기, 갓 태어난 것 같은 얼굴, 자기 헌신, 깡다구, 상대를 향한 무한한 존경 같은 이정현의 본질은 모두 ‘자기 비움'이라는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대화의 길목마다 유년이라는 기쁨의 저장고에 두레박을 내렸고, 그럴 때마다 평화의 온기가 찰랑거리며 줄을 타고 올라왔다. 엄마와 텃밭에서 풀을 뜯어 양푼에 비벼 먹던 풍경은 두고두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간직하고 싶다고 했다. 더불어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맹렬한 좀비와 들개 같은 인간들이 함께 살던 ‘반도' 촬영장도.

"배우도 스태프도 제 각자 불만 없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완벽한 상태를 경험했죠."

필요하면 순식간에 자기를 비워내는 ‘계산 없는 몰입'.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폭발적인 존재감이 드러나는 방식에서 집안 일과 영화 일은 닮았다. 마치 나라는 존재는 타인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는 듯. 비워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비울수록 기쁨으로 채워지는 엄마의 밥상처럼.

헤어지는 순간까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기운 빠질 땐 된장찌개를 끓여 드세요. 육수 진하게 내서 된장 풀고 양파 한 개 반, 대파 한 개만 썰어 넣고 끓여도 정말 맛있어요. 순식간에 행복해져요. 맛있는 거 먹으면 기분 좋잖아요." 지치지 않는 힘과 투명한 연약함을 동시에 지닌 우리들의 슬기로운 여전사, 이 땅의 모든 성실한 앨리스에게 축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