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위기 아케이드게임 시장의 단면… 코로나 확진자 방문이후 직격탄
모바일⋅온라인에 밀려… 2005년 1만5000개 넘던 오락실 수백개 수준으로

지난 16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정인게임장. 불 꺼진 간판 아래로 오락기가 연신 반출되고 있었다. 철거 중인 내부에선 전원이 내려간 오락기의 검은 화면과 손때 탄 레버만이 고요히 자리를 지켰다. 1.5t 트럭에 실려 가는 오락기를 바라보던 사내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연신 담뱃불을 붙였다. 지난 20년간 이곳을 찾았던 단골들이라고 했다.

"기계를 헐값에 내놨지만 구매자가 몇 없어요. 그나마 스트리트파이터2 기계는 저 친구들(단골)이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즐겨주면 다행이죠." 2001년부터 정인게임장을 운영해온 사장 이모(58)씨는 짐짓 홀가분한 표정이었지만, 말끝에서 묻어 나오는 진한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었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정인게임장. 전날 마지막 운영을 마치고 기계를 빼내고 있었다.

◇ 국내 격투 게임 ‘마지막 성지’... 5월말 코로나 확진자 방문에 큰 타격

국내 격투 게임 ‘마지막 성지’로 불리던 노량진 정인게임장이 지난 15일을 끝으로 문 닫았다. 정인게임장은 영등포 판타지아 게임랜드, 대림동 그린게임랜드와 함께 국내 격투게임 3대 성지 중 한 곳으로 꼽혀왔다. 2013년 4월 판타지아, 2018년 10월 그린게임랜드가 폐업한 후엔 정인게임장만이 유일무이한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정인게임장은 격투 게임 대표주자인 ‘철권’ 외에도 1992년 출시한 스트리트파이터2 대쉬, 킹 오브 파이터즈 등 고전 격투게임기를 갖춰 게이머들의 사랑을 받았다. 격투게임 애호가 이수영(35)씨는 "철권 시리즈는 제대로 된 오락실이라면 모두 갖추고 있지만, 스트리트파이터나 킹 오브 파이터즈를 운영하는 오락실은 극히 드물었다"며 "정인게임장은 고전 격투게임 매니아들이 대전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장소여서 지방에서 원정을 오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폐업은 갑작스럽게 결정됐다. "전날 결정했어요. 원래 이달말까지 운영해보려 했는데, 손님은 없어도 임대료는 내야 하니…" ‘임대료’라는 단어를 꺼낼 땐 평온하던 이 사장의 언성이 살짝 높아지는 듯했다. 이 사장은 2018년까진 서울 동작구 숭실대학교 인근에서 ‘숭실게임랜드’를 함께 운영해왔다. "숭실게임랜드와 같이 (정인게임장을) 접었으면 상황이 나았을 텐데, 현실이 이런 걸 어쩌겠습니까. 순응해야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위태하던 오락실 운영에 결정타를 입혔다. 이용자가 줄어든 데 이어, 5월 23~27일 사이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방문하기까지 했다. 이 사장은 "코로나19도 폐업을 앞당긴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 1만5000개 넘던 전국 오락실, 2016년 800개 미만… 치킨게임에 공멸위기

정인게임장 폐업은 고사 위기에 처한 국내 아케이드게임 시장의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05년 연간 4조7621억원에 달하던 국내 아케이드게임 시장 규모는 2018년 139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는 2018년 국내 게임 시장 전체 규모인 12조830억원의 1.2%에 불과하다. 2005년 1만5094개에 달하던 전국 오락실 수는 2016년 800개로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인형뽑기 전문 업소와 성인게임장을 포함한 수치다. 지금도 수백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16일, 폐업을 결정한 후 정리중인 정인게임장 내부.

오락실 줄폐업의 원인은 높은 기계값과 플랫폼 변화다. 대표적인 격투 게임인 철권7 기기 한대 가격은 1500만원을 넘어선다. 기기를 업그레이드하는 데에는 550만원이 든다. 이 사장은 "구입한지 1년도 안 돼 500만원 이상을 들여 업그레이드하는 일이 반복됐다"고 했다. 정인게임장은 최초 철권7 기기 16대를 운영했지만, 폐업 직전엔 비용 부담에 기기 수를 10대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주력 게임인 철권7이 PC와 콘솔(가정용 게임기)용으로 나오고, 네트워크 플레이를 지원하기 시작한 점 또한 오락실 운영에 큰 타격을 줬다. 온라인 게임과 함께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게임 성장도 영향을 미쳤다. 오락실 이용자가 줄어들자, 철권7 대전 기록을 저장해주던 ‘테켄넷’ 서비스도 지난해 10월 종료됐다. 이어 몇달전엔 오락실간 네트워크 대전도 중단됐다고 한다.

최초 기기를 들여왔을 때 한판 당 500원이던 정인게임장 철권7 이용료는 폐업 직전엔 200원까지 낮아졌다. 박리다매로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함이었지만, 낮아진 이용료는 수익성 악화로 돌아왔다. 한 판당 200원으로 1500만원의 오락기 구매가를 거둬들이기 위해선 7만5000판이 필요하다. 5분에 한판씩 24시간 돌아가더라도 260일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

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오락실은 인건비가 적게 들어가는 업종임에도 최근 무인 게임센터가 늘고 있다. 조금의 인건비도 부담하기 힘들다는 방증"이라며 "게임 이용료를 낮추는 ‘치킨게임’도 일어나고 있어 업계 공멸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