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내주 WWDC서 자체 설계 PC 칩 발표할듯"
모바일 혁명 이끈 애플·ARM, 인텔 독재에 균열낼까
애플이 내년에 출시할 맥과 맥북 프로 등 PC 제품군에 ARM의 프로세서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맞춤형 설계를 한 자체 칩을 넣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애플, 인텔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지만, 블룸버그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이같은 내용이 기정사실화 됐으며 애플이 오는 22일 온라인으로 개최할 예정인 'WWDC(세계개발자회의) 2020'에서 공식 발표될 예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애플은 그동안 아이폰, 아이패드 시리즈 등 주요 제품군에 영국의 반도체 설계 지적재산권(IP) 기업인 ARM의 디자인을 밑바탕으로 자사의 운영체제에 맞춤화된 프로세서를 직접 설계해 개발해왔습니다. 다만 맥, 맥북 등 노트북PC 제품군에는 PC용 중앙처리장치(CPU)의 최강자인 인텔의 칩을 사용했습니다.
애플이 PC 제품군에만 인텔의 칩을 탑재해온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ARM의 프로세서가 연산 성능보다는 저전력·고효율에 강점이 있었고, 무엇보다 인텔의 x86 아키텍처(하드웨어·소프트웨어 등 컴퓨터 시스템의 설계방식)가 오랜 기간에 걸쳐 PC용 소프트웨어에 최적화됐기 때문입니다.
◇애플 아이폰 시대를 연 숨은 공신 ARM
애플과 ARM의 인연은 당초 알려진 것보다 꽤 오래됐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가 본격화된 1990년대 초반부터 애플은 꾸준히 세계 무대에서는 거의 이름이 알려진 바 없는 아콘(ACORN·ARM의 전신격인 회사)과 물밑에서 협력을 진행해왔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의 제품보다는 PDA(개인용정보단말기) 분야에서 협력이 이뤄졌었습니다.
현재 ARM은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의 두뇌격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애플, 퀄컴, 삼성전자, 화웨이 등 대부분의 AP 설계·생산 기업이 ARM의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설계를 일부 수정해 개발하거나 설계 그대로 생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애플과 ARM이 협력을 시작한 1990년대만 해도 ARM은 그저 영국 변방의 반도체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애플과 ARM의 첫번째 협업은 현재 아이패드나 태블릿PC의 '조상님'격으로 평가받는 애플의 뉴튼 메시지 패드입니다. 1993년 개발된 이 제품은 당시 조슨 스컬리 애플 CEO(최고경영자)가 제안한 지식 탐색기라는 개념을 기초로 만들어졌습니다. ARM의 프로세서가 탑재된 이 제품은 흑백 액정스크린과 스타일러스 펜을 탑재한 제품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였습니다. 우선 소비자 가격이 너무 비쌌고, 일각에선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이후 스티브 잡스가 CEO로 복귀하며 수많은 프로젝트를 취소했고, 뉴튼 메시지 패드 역시 단종됐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예외적으로 뉴튼 메시지 패드의 개발팀만큼은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어쩌면 프로젝트는 실패했더라도 이 제품에서 잡스는 미래에 다가올 모바일 시대의 단면을 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이 개발팀은 인텔 CPU 대신 뉴튼 프로젝트에 사용했던 ARM의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아이폰을 개발해냈습니다.
◇인텔이 장악해온 PC용 프로세서, 애플이 지각변동 일으킬까
애플, 삼성전자, 퀄컴, 화웨이 등 수많은 기업들이 똑같은 ARM의 설계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칩 성능에는 차이가 큽니다. 이는 프로세서의 설계도를 수정·변형하고 운영체제에 맞게 최적화하는 회사의 역량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가령 지난 2018년 애플은 ARM 기반의 모바일용 프로세서 'A12 바이오닉'을 내놓았는데, 동일한 설계를 사용한 삼성전자 엑시노스9810, 퀄컴의 스냅드래곤 845에 비해 월등히 높은 연산성능을 나타냈고, 그래픽처리장치(GPU)의 경우 거의 2배에 가까운 격차를 벌리며 업계에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애플의 이같은 프로세서 혁신은 모바일뿐만 아니라 PC분야의 강자인 인텔을 긴장시키기도 했습니다. 특히 A12 프로세서의 경우 모바일용인데도 불구하고 벤치마크 결과가 2015년 출시된 인텔 스카이레이크 기반의 일부 PC용 CPU 제품군보다도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모바일 AP는 작은 사이즈, 설계 구조 등의 문제로 PC용 제품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후로도 애플은 ARM과의 협력을 통해 꾸준히 A시리즈 칩셋의 성능을 높여왔고 최근에는 노트북PC 라인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따라왔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업계에서는 가장 뛰어난 성능의 모바일 프로세서를 만들어온 애플의 개발팀이 야심차게 준비한 PC용 프로세서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국 IT전문지 지디넷은 "이미 애플은 수년전부터 탈인텔을 계획해왔고, 핵심 프로그램과 개발자, 서드파티들과 함께 최소한 절반 이상 계획을 진행해온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인텔과 애플의 결별설은 이미 수년전부터 나온 이야기이고 그만큼 애플이 인텔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준비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응용프로그램 등 여러 단계에서 진행되어왔을 것"이라며 "애플뿐 아니라 퀄컴도 PC용 스냅드래곤 칩셋을 내놓으며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있으며 과거와 같은 프로세서 변경으로 인한 호환성 문제가 해결되면서 인텔 중심의 PC용 프로세서 시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