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이 올해 들어 은행주를 약 1조5000억원어치 내다 판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경제 타격에 기준 금리까지 인하되면서 은행 수익성이 악화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코스피가 최근 2000선을 회복하면서 외국인 자금 유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자는 은행주만큼은 여전히 순매도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5일까지 외국인이 매도한 신한지주(055550), KB금융(105560), 하나금융지주(086790), 우리금융지주는 총 1조4565억원으로 집계됐다. 신한금융이 6327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 외엔 KB금융이 3885억원, 우리금융이 2296억원, 하나금융이 2011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그래픽=박길우

외국인은 올해 1월까지만 해도 4대 금융지주사 주식을 935억원어치 사들였다. 그러나 2월 들어 2300억원을 팔아치우더니, 코로나19가 본격 유행한 3월엔 4328억원으로 매도세가 더욱 거세졌다. 4월엔 매도액이 3300억원으로 다소 줄어들었지만, 5월엔 다시 4107억원으로 순매도 규모가 커졌다. 이달 들어선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1465억원을 팔아치웠다.

외국인 순매도 행렬에 은행주도 맥을 못추고 있다. 코로나19 여파에 1500선까지 떨어졌던 코스피는 최근 2000선을 회복하면서 연초 대비 6.6% 하락 수준까지 회복했지만, 4대 금융지주와 지방 금융지주 등으로 구성돼 있는 KRX은행지수는 여전히 20% 이상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은행주 소외 현상은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구경회 SK증권 연구원은 "해외 주요 기관 투자자들은 코로나19 이후 구경제 관련 업종을 내다팔고 신경제 성장주를 대거 매입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여기에 금리 인하 등이 겹치면서 은행주 비중을 특히 많이 줄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진상 현대차증권 연구위원 역시 "한국 금융시장이 불안해서 외국인이 은행주를 내다판다기보단, 유동성 확보 차원과 글로벌 자금 흐름 등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상황이 이렇다보니 책임 경영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해온 금융지주 회장들 역시 30% 가까이 손실을 보고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의 경우 2015년 신한은행장 취임 이후 약 6100주를 사들였는데, 현재 기준 -31.2% 손실률을 기록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역시 2015년부터 지금까지 2만1000주를 매입, 30.6% 손해를 봤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총 6만5000주를 들고 있는데, 이중 2012년 회장 취임 이후 매입한 2만주만 따져보면 15%가량 손실이 났다. 지난해 취임 이후 올해까지 총 4만주를 사들인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28.2%의 손실을 기록 중이다.

금융지주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매년 금융지주 회장들은 글로벌 세일즈를 위해 직접 해외 IR을 돌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출장 계획이 전면 보류된 상황이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여전히 입국 제한이 걸려있는 국가들이 많은데다, 다녀온다 해도 2주 자가격리가 필요해 해외 출장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컨퍼런스 콜 등 언택트 IR을 개최하고 있지만, 회장님이 직접 뛰는 데 비하면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은행주는 저평가돼 있는 데다 배당 매력이 있어 향후 코로나19 국면 등이 해결되면 상승 여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김진상 연구위원은 "최근 바이오, 언택트 관련 주식이 상승했지만 그만큼 밸류에이션 부담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코로나19 국면이 종료되고 금융시장이 안정된다면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데다 배당 매력도 있는 은행주가 주목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