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경기 부양 위해 수소에너지에 12조원 투자

국제에너지기구(IEA) 전문가들이 "코로나 사태로 수렁에 빠진 세계 경제를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수소에너지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정부가 마련하는 경기 부양책에 수소를 중심으로 한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IEA에서 수소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김태윤, 사이먼 베넷(Simon Bennett) 연구위원은 조선비즈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정부는 수소 인프라 확충과 실증 프로젝트 및 기술 개발 지원을 통해 수소 발전 비용을 낮추고, 에너지 전환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최근 코로나 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90억유로(약 12조원)를 수소 관련 인프라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독일 정부의 계획처럼 정부가 수소에너지에 투자해 경제 회복을 견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IEA는 코로나 사태 여파로 올해 에너지 분야 탄소 배출이 역사상 최대 폭인 8%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탄소 배출량 감소는 구조적인 변화 때문이 아니라 단기적인 에너지 소비 감소에 따른 것으로, 경기 회복과 동시에 탄소 배출량은 다시 빠르게 반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수소 에너지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 부진한 경기를 진작시키고 탄소 배출 감축 과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수소가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수소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다양한 수단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미래에 등장할 수소경제에 대한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공공조달을 통해 수요를 확대하는 한편 수소 가치가 확대되도록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앞으로 10년이 수소경제로 전환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기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수소경제로 전환하는 이행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그래픽=정다운

IEA는 두 연구위원이 작성한 ‘수소의 미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각국 정부가 수소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해안에 인접한 산업단지를 수소 생산 거점으로 개발하고 천연가스 인프라를 수소 운반에 활용하는 한편, 트럭 및 선박·항공과 같은 장거리 수송 분야에서 수소 활용을 확대하고 수소의 국제무역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4가지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이들은 "수소 에너지는 공급·전환·유통·소비에 이르는 가치사슬 전반에 투자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수소경제 시스템에 대한 전략적 개요를 마련해 투자 시기와 규모를 조정하고 기업과 소비자를 여기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G20 국가 중 11개 국가가 수소 에너지에 대한 로드맵을 마련했고, 50개 이상의 수소 에너지 지원 정책이 수립됐다. 많은 국가가 수소에 주목하는 이유는 ‘탄소 배출 감축’이라는 골치 아픈 과제 때문이다. 이들 연구위원은 "글로벌 탄소 배출 감축 목표가 강화되는 가운데 정부는 수소가 문제 해결의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수소 논의는 더 이상 도로 운송에만 국한되지 않고 에너지 저장, 정유·화학·철강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 장거리 운송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연구위원은 수소경제가 구축되면 에너지 안보 수준도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수소는 전력을 가장 오랜 시간, 가장 저렴하게 저장할 수 있는 데다 화석연료뿐 아니라 재생에너지로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수소 역시 완전히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은 아니다. 수소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화석연료가 사용돼 탄소 등 오염물질이 배출된다. 연구위원들은 "수소가 에너지 전환의 ‘게임 체인저’가 되려면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청정한 방식으로 생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IEA는 재생에너지나 원자력을 수소 연료로 전환하거나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장치를 통해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각국의 적극적인 기술 개발 노력으로 이런 방식으로 수소를 추출하는 비용은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세계 7곳에서 탄소 포집시설을 운영 중이고 15개 이상 프로젝트가 건설될 예정이다.

셸이 미국에 설치한 수소차 충전소.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통해 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설비(electrolyser)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170MW 규모의 설비가 운영 중인데, 앞으로 2~3년 내 560MW 규모가 증설될 전망이다. 유럽은 북해 지역에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를 건설해 이를 수소 생산 허브로 활용할 방침이고, 중국은 내년까지 150MW 규모의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수소 에너지의 잠재력은 크지만 여전히 높은 비용과 부족한 인프라, 규제 장벽 때문에 성장 속도는 더디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연구위원들은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두 연구위원은 "수소의 상업적 확장 초기 단계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존 인프라를 사용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며 "기존 천연가스 인프라를 활용하면 새로운 수소 전용 파이프라인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수소를 운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연구위원들은 글로벌 LNG 시장의 성공적인 성장에서 얻은 교훈을 활용해 국제 수소 거래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소에 대한 정책 지원이 확대되고 있지만 대부분 국가 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자는 의미다. 연구위원은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 등 상대적으로 수소 생산 비용이 많이 드는 국가는 국제 수소 거래에 따른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부 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일본은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협력해 수소 거래를 개발, 확장하고 있다.

연구위원들은 또 "커민스, 셸, 토탈, 토요타, 에어리퀴드, 미쓰비시, 미쓰이 등 글로벌 기업들이 지난해 수소 스타트업에 1억1000만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수소 에너지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상대적으로 견조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