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2조원 규모의 재정적자가 예상되고 복지비 등 지출이 갈수록 늘면서 ‘증세(增稅)는 시간문제’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정부의 싱크탱크가 증세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여권에서는 "증세를 고민할 때"라며 보편적 증세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어려움이 지속되고 청와대도 증세보다는 ‘뼈를 깎는 지출구조조정’을 강조한 만큼 올해 세법 개정안에는 보편적인 증세 방안이 담기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오는 7월 발표할 세법개정안에서 그동안 과세하지 못했던 분야를 신규로 발굴하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증세 대신 고소득자, 특정 분야를 대상으로 한 ‘핀셋 증세’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수 확보만으로 재정악화라는 큰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내부적으로 갖고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국회나 기재부 모두 과세 저항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홍남기(가운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3차 추가경정예산안 사전 브리핑에서 안일환(오른쪽) 기재부 2차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액상담배 세금 인상, 가상화폐 양도세 도입 논의

기재부가 추진하는 세법개정안에는 액상담배의 세율조정과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액상형 전자담배의 세율 조정 논의에 착수했다. 기재부와 행정안전부는 ‘액상형 전자담배 세율조정 방안 연구’ 용역을 한국지방세연구원에 발주했고, 지난달 19일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토론회에서 현행 일반 담배의 50% 수준인 액상형 전자담배의 제세부담금을 일반 담배와 비슷한 3300원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4500원에 판매되는 담배의 제세부담금(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개별소비세, 건강증진기금, 부가가치세 등)을 따지면 일반 궐련담배는 20개비(1갑) 기준 3323원, 궐련형 전자담배는 20개비(1갑) 기준 3004원이다. 하지만 액상형 전자담배의 경우 0.7mL 기준 1670원으로 현저히 낮다.

김홍환 한국지방세연구원 박사는 "흡연에 있어 동일한 행위를 ‘흡입횟수를 기준으로 한 대체효과’로 본다면, 조세부담 형평성을 위해 현행 액상 전자담배의 세율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라고 주장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액상담배에 대한 세율조정을 검토하고 있다"라며 "현재 세율조정 폭 등을 검토하고 있고, 세법개정안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기재부는 또 가상화폐 거래시 부동산 거래처럼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하는 방향으로 세법개정을 검토 중이다. 그동안 정부나 가상화폐 업계에서는 가상화폐 거래를 통해 얻는 소득을 주식·부동산과 같은 ‘양도소득’으로 볼지, 이자나 배당금, 복권당첨금과 같은 ‘기타소득’으로 볼지 이견이 분분했다.

올해 초까지 가상화폐 업계에서는 기재부가 가상화폐에 대한 매매차익을 ‘기타소득’으로 적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지난 1월 기재부가 가상자산 과세 방안을 검토하는 주무 담당조직을 재산세제과에서 근로·사업·기타소득세 등을 담당하는 소득세제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3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이용자 정보와 거래 내역을 파악하기 쉬워지면서, 업계는 개인이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기타소득보다는 양도소득 부과 가능성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가상화폐업계 관계자는 "이미 미국 등 다수의 국가들이 가상화폐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라며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보고 주식, 부동산 거래와 같이 양도차익에 과세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기재부 측은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방안은 현재 검토중인 사안"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된 바 없다"라고 말했다.

또 정부는 부동산을 신탁할 경우,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꼼수를 막기 위한 세법개정에도 나선다. 2014년 지방세법 개정으로 신탁부동산은 수탁자가 종부세 납세 의무자가 됐다. 지방세법 개정 전에는 신탁 여부에 관계없이 납세자가 보유한 부동산을 모두 합산해 종부세액이 결정됐으나, 개정 후에는 신탁부동산에 대해선 과세표준에서 제외돼 종부세를 내지 않아도 되도록 바뀌었다.

하지만 감사원은 지난 4일 ‘부동산 임대소득 등 세원관리실태’ 감사보고서를 발표하고 신탁부동산이 종부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지난 3년간 1000억원이 넘는 종부세가 덜 걷혔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기재부에 합리적인 개선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세법개정안에 세수 확보나 증세를 위한 별다른 정책 변화가 없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과세를 위한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분위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증세 불가피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복지비 등 지출이 계속 늘어나는 재정구조에서 증세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1~3차 추경을 통해 60조원에 육박하는 재정을 추가로 지출하기로 해 나라 살림살이 평가지표인 관리재정수지는 올해 112조2000억원 적자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한 해 재정적자가 100조원을 초과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 있는 일이다.

급증하는 재정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정부는 올해 적자국채를 97조3000억원 발행할 계획이다. 지난해 30조원이었던 적자국채가 한 해 사이 67조원 이상 급증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결산 기준 728조8000억원이었던 국가채무는 올해 말 840조2000억원으로 111조4000억원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의 총수입 대비 총지출을 보여주는 통합재정수지는 76조4000억원의 적자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적자비율은 4.0%로 지난해 결산 0.6%에 비해 3.4%P(포인트) 올라간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반영한 관리재정수지가 112조2000억원 적자로 결산되면, GDP 대비 적자비율은 5.8%로 작년 결산(2.8%) 대비 3.0%P가 올라간다.

기재부도 부족한 세수를 채우는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기업 수출이 급감하고, 내수 경제활동 위축으로 자영업자 매출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1~4월 국세수입은 전년 같은 기간대비 8조7000억원 감소한 100조7000억원에 그쳤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2조8000억원(1.7%)의 세수가 감소한 2009년(161조7000억원)과 외환위기로 2조1000억원(3%)의 세수가 줄어든 1998년(65조7000억원)에 비해, 감소금액이 약 4배 수준이다.

국세수입이 크게 줄어든 배경은 경기에 민감한 법인세 수입과 부가가치세 수입 등이 조 단위로 줄었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업들의 지난해 영업실적 악화로 법인세수가 감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로 인한 내수부진이 겹쳐 부가세수가 동반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부가세 납기 연장 등 세정지원 등으로 세수 확보가 이연되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5월 재정수지에는 전국민 대상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인한 지출 증가가 반영되고, 3차 추경에 대한 재정악화도 연말까지 누적될 것"이라며 "지출 구조조정만으로 재정악화를 막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보편적 증세 논의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정규철(오른쪽) KDI 경제전망실장이 지난달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올해 경제전망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치·경제계, 증세 놓고 갑론을박

증세를 수면위로 띄운 것은 국책연구기관들이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달 20일 올해 경제 전망을 발표하며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중장기적으로 재정지출 수요가 커지는 만큼 증세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도 기고문을 통해 "지금 같은 재난 시기에는 증세를 미루지 말고 적절한 규모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여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도 "증세를 검토할때"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본소득제 도입과 전 국민 고용보험 등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재정지출 확대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핀셋 증세’, ‘부자 증세’만으로는 재정 건전화에 한계가 있어,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일 "증세 없이 복지를 확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기본소득을 본질적으로 (도입)한다면 증세는 불가피하다. 세제 전반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재난소득과 관련 "재원 확보 방안과 지속 가능한 실천 방안은 무엇인지 등의 논의와 점검이 이뤄지길 바란다"며 증세를 언급했다.

더좋은미래(더미래)의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도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재분배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보편적 증세를 통한 기여 인구 및 세수 규모 확대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국회 산하 연구단체인 국회미래연구원은 지난 12일 발표한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는 국가재정 관리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연구진 기고문을 통해 국회 차원의 증세 추진을 촉구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제21대 국회 주요 입법·정책현안 보고서를 지난달 30일 발간한 가운데, 소득세 공제체계 및 과세표준구간의 전반적인 조정, 근로소득자 면세자 축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보고서는 "최근 재정여건 개선을 위해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와 소득세 공제체계 및 과세표준구간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며 "전반적인 소득세 실효세율 인상 및 소득세 체계 재조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탄소세와 로봇세, 데이터세, 국토보유세 등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자는 논의도 시작됐다. 코로나19 위기, 복지확대 등으로 재정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세수를 확보하자는 취지다. 기후변화와 인공지능(AI) 발달 등 시대변화를 반영한 조세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수년간 경험축적으로 (기본소득의) 경제활성화 효과가 증명되면 탄소세, 데이터세, 국토보유세, 로봇세, 일반 직간접세 증세 등 기본소득목적세를 만들어 전액 기본소득 재원으로 쓴다면 국민이 반대할 리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증세 논의가 공론화 될 지 미지수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적 저항이 거센 증세 논의를 다루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증세 논의 자체가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지금은 코로나19의 경제 위기 극복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