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민주당 '무조건 법안'들
이병훈 "대학생 취업 전 학자금 무조건 무이자"
박주민 "집주인 동의 없이 무기한 전세 연장"
이수진 "1개월 이상 알바도 무조건 퇴직금"

21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더불어민주당에서 '무조건' 지원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 출신인 이병훈(초선⋅광주 동남구을)의원은 지난 9일 학자금 대출 이자를 취업 전까지 무이자로 하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병훈 이수진 박주민 의원

이 법안은 현행 대학생까지인 학자금 대출 대상을 대학원생으로 확대하고 휴학기간은 물론이고 졸업 후 취업 전까지 대출 이자를 전면 면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법안은 이 의원이 예비후보 때 냈던 공약이다. 이 의원은 당시 "높은 등록금이 학자금 대출로 이어지고 대학을 마친 후 사회에 나서면 취업여부와 관계없이 대출 이자를 갚기 시작해야 한다"며 "취업 준비 기간 이자를 감면시켜 미취업 청년들이 사회에 진입하도록 하겠다"며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그런데 이 법안을 두고 경제계는 물론 학계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기존의 국가장학금 제도를 고려하지 않은 중복 수혜 논란과 자칫 잘못하면 대학 등록금 인상 등의 부작용으로 학생들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천대 옥우석 무역학과 교수는 "현행 국가장학금 제도 등 교육 재정 정책 전반을 고려하지 않고 학자금 무이자 대출을 언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옥 교수는 "한국과 조건이 다르지만 미국의 경우 학자금 금리를 낮추자 사립 대학들이 등록금을 대거 인상하면서 학생들이 오히려 피해를 봤다"고 했다.

이 법안은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지난 2016년 발의한 것과 똑같은 내용이다. 이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당시 예산이나 재원 조달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국회에서 다뤄지지 않고 폐기됐다.

재선의 박주민(서울은평갑) 의원은 현행 ‘2년’ 단위인 주택 전월세 계약을 세입자가 희망할 경우 집주인 의사와 상관없이 무기한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지난 9일 발의했다. 박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서울살이 30년 동안 16번의 이사를 한 가장의 목소리에서 '집'이 공간이 아니라 재테크 수단이 되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렇게 밝혔다.

박 의원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세입자가 월세 3기(期)분을 연체하지 않는 이상 집주인은 세입자의 재계약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재계약을 할 때 월세 또는 전세금을 5% 초과해서 올리지 못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발의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서울 송파구 아파트 일대 사진

이 법안 역시 부동산 업계와 정치권의 비판이 쏟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세입자에게 극도로 유리한 정책을 쓰게 되면, 집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어지고, 이로 인해 매수 수요자들이 전세로 몰리면서 전세금은 오르고, 이 전세금이 집값을 밀어올리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도 세입자가 있으면 실수요자에게는 집을 팔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 집을 '빈집'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며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전혀 모르고 만든 정책"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공급부족 등으로 전셋값이 들썩이는 시점에 이런 법안을 내는 것은 오히려 전셋값 상승에 불을 지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4일에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 부위원장 출신인 이수진(비례대표) 의원이 1달 이상~1년 미만 근속 근로자에게 퇴직급여를 보장하는 내용의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 발의했다. 이 법안은 현행 '소정근로시간(주당 평균 15시간)' 규정에 상관없이 근로기간이 1개월이 넘는 근로자에 의무적으로 퇴직금을 주는 내용이 골자다.

근무 시간이 짧거나, 일한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도 소액의 퇴직금을 다 챙겨주자는 건데 이 법안 역시 경제계에서 비판을 받았다. 코로나 경제 위기 상황에서 1개월 이상 단기알바(아르바이트) 퇴직금을 챙겨 주다가는 배달·홀서빙·판매 등 단기 고용이 많은 소매 자영업자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지적이다.

국회 개원과 동시에 급진적 입법안들이 쏟아지자 민주당 내에서도 '과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없던 제도를 만들어 내려다보니 과도한 정책이 제안되고, 또 대중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의도 등이 맞물리면서 시장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법안들이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는 단순히 민주당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국회 전반에서 보여지는 현상"이라며 "어차피 바로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일단 무리하다 싶을 정도의 법안을 만들어놓고 수정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근로자의 날 130주년을 맞은 1일 오후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이 전태일 다리 위에서 모든 해고 금지와 총고용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