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적용될 최저임금이 11일 노·사·공 27명의 최저임금위원회 전체 위원이 참석하는 1차 전원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논의에 들어간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상과 동결을 둘러싼 노·사 대립이 어느 때보다 첨예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립 입장인 공익위원의 선택이 중요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 일정은 작년과 비교해 상당히 늦은 편이다. 코로나로 인해 여러 사람이 모이는 회의 개최가 어려웠던데다, 근로자 위원 9명이 작년 최저임금 인상폭(2.87%, 240원)에 반발해 전원 사퇴해 재위촉 절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작년엔 5월말쯤부터 최저임금 심의를 시작했다.

지난해 7월1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렸다.

최저임금위 근로자 위원은 양대노총이 추천한다. 한국노총이 5명, 민주노총이 4명의 추천권을 가지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위 근로자 위원은 위원 사퇴와 보직 변경에 따라 새 위원이 필요했는데, 최근 각자 내부 논의를 통해 위원 6명이 새로 위촉됐다. 민주노총은 윤택근 부위원장·김연홍 기획실장·김영훈 공공연맹 조직처장을 추천했고, 한국노총은 이동호 사무총장·정민정 마트산업노조 사무처장·함미영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장 등을 근로자 위원에 앉혔다. 공익위원(9명)과 사용자 위원(9명)의 구성은 작년과 같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년 3월말 최저임금위에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하고, 최저임금위는 90일 이내에 다음 연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 이후 이의제기와 재심의 등을 거쳐 8월5일 고용부 장관이 최종 고시하면 전 사업장에 다음 연도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지난 3월 31일 고용부의 심의 요청에 따라 최저임금위는 올해 6월31일까지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 앞으로 20일쯤밖에 시간이 남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매년 최저임금은 노·사 대립으로 제때에 결정된 일이 드물다. 한쪽 주장에 반발해 다른 한쪽이 회의에서 빠지고, 회의 속개를 반복하면서 일정이 전체적으로 늘어졌던 것이다. 실제 최저임금위가 법정시한 안에 최저임금을 결정한 것은 1988년이후 8차례 뿐이다. 작년에는 최저임금법 개정과 관련한 공익위원 전원 사퇴로 일정이 늦어졌고, 최저임금 삭감을 주장한 사용자 측과 1만원 이상을 주장한 근로자 측 대립으로 7월 중순쯤에나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노·사 모두 ‘코로나’를 핵심 쟁점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노·사 시각은 정반대다. 사용자 측은 코로나로 경제가 위축된 것을 감안해 ‘최소한’ 동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근로자 측은 코로나로 최저임금 근로자들이 큰 피해를 입은 만큼 작년보다 높은 수준의 인상을 내세운다. 임금을 올려야만 경기도 진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27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6차 전원회의. 사용자 위원 9명 전원이 불참했다. 이날은 최저임금 결정의 법정시한이었다.

사용자 측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는 최근 최저임금 근로자를 고용 중인 중소기업 6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지난 8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88.1%가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해 "올해와 같거나 낮아야 한다"고 답했다. 코로나로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그만큼 줄었다는 것이다.

또 사용자 측은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인상되면 기업 절반 이상이 신규 채용을 줄이고(44%), 감원(14.8%)에 나설 것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를 토대로 동결 주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최저임금은 1988년 도입 이후 지금까지 동결되거나 삭감된 일이 없다. 가장 낮았던 인상률은 세계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10년도 2.6%다. IMF 외환위기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1999년 2.7%이 두번째자. 작년 인상률은 역대 3번째로 낮은 수치다.

근로자 측은 당연히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임기내 최저임금 1만원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 어쨌든 작년보다는 인상률이 더 높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노총은 근본적인 내수 활성화를 위해 국민소득을 높여주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대표적인 방안으로는 최저임금 인상을 들고 있다. 또 경총과 중기중앙회의 최저임금 설문조사 발표 직후엔 "저임금 노동자를 희생시키는 최저임금 동결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을 어렵게 하고 소비를 위축시켜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며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임금 격차와 불평등은 더 확대되고, 사회양극화는 심해진다"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전날 최저임금 워크숍을 가진 민주노총도 입장은 같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재벌이 보유한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해 재원을 만들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힘든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은 물론이고, 고용보장 방안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근로자 위원은 11일 최저임금위 1차 전원회의 직전에 만나 의견을 조율할 예정이다.

올해 최저임금 8590원은 작년 최저임금 표결에서 공익위원의 표심에 따라 결정됐다. 올해 역시 공익위원이 최저임금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노·사 대립이 격화할수록 인상폭을 결정하는 ‘캐스팅보트’는 결국 공익위원이 쥐게 된다. 노·사·공 표결로 정해지는 최저임금은 노·사가 제시한 금액에 각자 쥐고 있는 9개의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고, 나머지 공익위원 9표의 향배에 따라 갈린다.

이 때문에 공익위원이 어느 쪽 제시액에 더 공감하느냐가 관건이다. 작년 최저임금 심의 당시 공익위원들은 실물경제 위기와 문 정부 들어 두 차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16.4%, 10.9%)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 사용자 측이 제시한 인상액(2.87%)에 손을 들어줬다.

다만 지금까지의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살펴보면 공익위원의 결정에 정부 입김이 일부 작용한 경향도 있었다. 최근 정부·여당은 코로나로 인한 소득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이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흘러나온 것과 전혀 다른 흐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국무회의에서 "현재 코로나 위기에서 불평등이 현실의 문제가 되고 있다"며 "위기를 불평등을 줄이는 기회로 삼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공익위원의 내년도 최저임금 표심은 사용자 측보다 근로자 측 의견에 쏠릴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같은 정부·여당의 생각은 ‘전국민 고용보험’과 관련이 더 커 최저임금 인상과 얼마나 연결될지는 최저임금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돼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