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국제경제·재정학회 공동 학술대회 개최
김우철 시립대 교수 "재정적자 못 줄이면 신인도 영향"

송의영 서강대 교수 "내수로 정책 전환하되 개방 유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우리나라의 재정적자가 올해 100조원을 넘어서게 됐다.

경제학계에서 당장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례없는 감염병 사태로 전 세계적으로 적극적인 재정이 강조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증세나 세출삭감과 같은 중장기적 대책 없이는 재정건전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3일 한국경제학회, 한국국제경제학회, 한국재정학회는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코로나 이후 한국경제 이슈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공동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제 발표자로는 김세직·안재빈 서울대 교수, 송의영 서강대 교수,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최근 코로나 위기 대응으로 늘어나고 있는 정부 재정지출 규모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번 3차 추경을 포함하더라도 재정투입 규모 자체는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비해 국제적으로 과도한 수준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최근 3년간 국가채무 비율 상승 속도가 10%포인트(P) 상승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재정여력은 크게 감소했다"고 했다.

3일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가 한국경제·국제경제·재정학회가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공동 개최한 '코로나 이후 한국경제 이슈와 전망'라는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35조3000억원 규모의 3차 추경안을 발표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편성한 28조4000억원보다 6조9000억원이 많은 역대 최대 규모다. 정부의 총수입 대비 총지출을 보여주는 '통합재정수지'는 76조4000억원 적자를, 한 국가의 실질적 재정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112조2000억원 규모 적자를 나타낼 전망이다. 모두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사상 최대 규모다.
김 교수는 코로나 위기 극복 과정에서 늘어나고 있는 국가채무 비율(2020년 예산안 기준 43.5%)을 반영해 중장기적인 재정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내년 예산 지출 올해 대비 9% 이상 증가 ▲세입 증가율 3% 이하 ▲경상성장률 4% 이하 중 한 가지 이상 현실화했을 경우 2021년말에는 국가채무 비율이 5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했다. 그는 "코로나 위기 대응과정에서 확대된 재정적자를 줄이지 못하면, 한국의 국가채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수준까지 계속 늘어나 대외신인도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28년 국가채무 비율 80% 도달이 현실화할 경우 ‘재정 위기’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고령화의 빠른 진전 속에 충분한 세입 확충이 없다면 일본처럼 슈퍼채무국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일본은 엔을 보유한 기축통화국으로 높은 채무 비율을 유지할 수 있지만 한국은 국가신인도 급락과 더불어 높은 채무 비율을 감당하지 못하고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거시경제의 장기균형 성장률, 국가채무 비율을 가정하고 재정적자 규모를 관리해나가야 할 것"이라며 "증세, 세출삭감을 통해 추가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세율을 늘릴 때는 단순히 소득이 많다고 과세 비율을 높이기보다 높은 초과이윤에 대해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공급자체가 고정된 토지자산의 임대소득, 특정 개발사업 인·허가권을 취득해 얻는 수익 등을 사례로 제시했다.

대외적으로는 코로나 책임론을 두고 다시 불거지는 미중 무역갈등에 대응할 수 있는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역갈등과 글로벌 공급사슬 불확실성’이라는 주제로 한 발표에서 무역 확대는 더 이상 성장 원동력이 될 수 없고, 내수 중심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처럼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동시에 개방 체제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인사하는 모습.

송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좌절을 인종적 민족주의로 변환해 집권에 성공했다"며 "코로나 이후 미국 사회 위기를 또 다시 정체성 문제로 환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미중 간 긴장감 고조로 인한 위기는 작년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관세 전쟁 수준을 넘어 글로벌 공급 사슬 자체가 친미(親美), 친중(親中)으로 분리돼 비효율성과 혼란이 확대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중소기업의 글로벌밸류체인(GVC) 재편에 원활히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동시에 미국을 제외한 유럽연합(EU) 등을 중심으로 한 신(新)다자주의 체제 설립에 동참하는 이중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며 "리쇼어링(생산시설의 본국 이전), 니어쇼어링(인접국가로 이전), 리오프쇼어링(해외로 재이전)을 혼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코로나가 오히려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등 고질적인 이중구조를 타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왔다. 코로나가 탈(脫) 세계화, 비대면 서비스 활성화를 비롯해 미국의 지배성을 약화시키면서 우리나라도 주권이나 민주주의를 조금 더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것이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거시금융에서 지적해온 자본자유화, 독립적 통화정책, 환율 자율성 등 이른바 세계화의 트릴레마(trilemma·삼중고)가 해소될 것"이라며 "한국도 이러한 변화를 틈 타 그간 뒤쳐져온 서비스업 등 부문에서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디지털화로 고질적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