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발(發) 저유가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각국이 수소에너지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이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하면서 코로나 사태 때 일시 중단했던 수소 프로젝트들이 최근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수소는 연소 후에도 공해물질을 배출하지 않아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를 대체할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이탈리아에서는 수소에너지로 파스타 공장을 가동하는 실험이 한창이다. 이탈리아 스파게티 면 제조업체인 오로지알로는 작년부터 나폴리 인근 면 제조공장에서 만든 면을 살균·건조하는 작업에 수소를 활용하고 있다. 천연가스에 수소를 섞은 혼합물이 보일러에 열을 공급해 생산 중인 면을 건조하고 살균하는 방식이다. 천연가스만 사용할 때보다 수소를 5% 혼합했을 때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 실험은 이탈리아 가스회사 스남(SNAM)이 추진 중인 수소 프로젝트 중 하나다. 스남은 2050년까지 유럽을 기후중립 대륙으로 만들겠다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계획에 발맞춰 친환경 대체 에너지원으로 수소를 선택했다. 다만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하면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스남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통해 수소를 생산하는 '그린수소' 개발에 주력하기로 했다.
스남은 향후 수소 연구·개발에 20억유로(약 2조7300억원)를 투입하고, 장기적으로 회사가 밀라노 일대에 구축해놓은 4만㎞ 길이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활용해 수소에너지 보급을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덴마크의 경우 선박과 트럭, 항공기, 철강·중공업에 적합한 친환경 수소연료를 개발하기 위해 6개 기업이 이달 1일 손잡았다. 세계 최대 선사인 덴마크 AP몰러-머스크, 세계 최대 풍력발전 기업 오스테드, 항공사 SAS, 물류회사 DSV, 해운사 DFDS, 코펜하겐공항 등은 2023년까지 풍력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대형 수전해(물 전기분해) 장치와 3GW(기가와트) 규모의 해상 풍력발전소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린수소 프로젝트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헨릭 폴센 오스테드 최고경영자(CEO)는 "연료전지를 기반으로 한 전동화 기술은 자동차에는 적합하지만, 철강이나 시멘트 등 중공업에는 활용하기 어렵다"며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중공업과 항공까지 확장 가능한 청정 연료가 필요한데, 그린수소가 그 열쇠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럽과 호주를 중심으로 기후변화 대응 압력을 받고 있는 에너지 기업들이 탈(脫)탄소 전략의 일환으로 수소에너지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석유회사 로얄더치쉘도 네덜란드에서 풍력에너지로 추출한 수소를 중공업에 활용하기 위해 10GW 규모의 해상풍력발전 시설을 짓기로 했다. 호주는 하수처리장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를 수소와 흑연으로 바꾸는 사업을 지난달 개시했다. 하수 처리 기술을 사용해 연간 100톤 규모의 상업용 수소를 생산하게 된다.
우리나라 정부도 지난 2일 수소 강국인 호주와 수소에너지 연구와 투자 협력을 강화한다고 발표하면서 코로나 사태로 주춤했던 '수소 경제 활성화 전략'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최근 현대차(005380)와 GS칼텍스가 서울에 첫 수소충전소를 개소하는 등 수도권 수소 인프라 확충을 위한 첫발을 뗐다. 두산퓨얼셀은 오는 6월 상업 생산을 목표로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건설했다. 효성(004800)은 산업용 가스 전문 기업 린데그룹과 협력해 울산에 대규모 액화수소 공장을 건립하기로 했다. 2022년까지 총 3000억원을 투자해 연산 1만3000t 규모의 공장을 신설한다. 이는 수소차 10만대에 사용 가능한 물량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소경제 구축은 이제 걸음마 단계이며, 수소가 국가 에너지 믹스의 일부로 자리매김하려면 여러 기술·제도적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는 석유화학 공정의 부산물에서 수소를 확보하거나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2가지 방식으로 수소를 생산하는데, 두 방법 모두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점 때문에 친환경적이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다. 수소 자체는 친환경 에너지원이지만, 석유화학과 천연가스를 기반으로 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해물질이 배출되는 것이다.
여기에 천연가스 기반 수소 생산 비용이 미국의 2~3배 수준으로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난제다. 한국은 천연가스를 대부분 수입하는데, 천연가스를 액화천연가스(LNG) 형태로 압축한 뒤 운송하는 비용까지 추가되기 때문에 수소를 만들기 위한 원료 자체가 비싸다는 게 문제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아직 수소를 저가에 친환경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미흡하다"며 "수소경제의 취지는 좋지만 무조건적인 장밋빛 전망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