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영국도 한국에 반(反)중국 전선에 동참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영국은 한국을 포함한 10개 민주주의 국가에 각국의 5G(5세대) 이동통신망에서 중국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를 배제하자고 제안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을 필두로 미국의 주요 동맹·우방국들이 반중(反中) 연합 전선을 본격화하는 것이다.

중국은 중국대로 한국에 미국 편에 서지 말라는 메시지를 계속 내놓고 있다. 양측의 편가르기 경쟁이 더 거세지면 한국이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으로선 곤란한 상황이다.

지난달 29일 영국 더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5G망 구축에서 화웨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G7(주요 7국, 미국·독일·영국·이탈리아·일본·캐나다·프랑스)과 한국, 호주, 인도가 민주주의 10국 연합체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른바 'D10(D는 민주주의를 뜻하는 영어 democracy의 약자)'이다. 더 타임스는 "D10이 화웨이를 대체할 통신장비 기술 기업을 함께 육성하는 게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구상 중 하나"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 22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화웨이는 현재 세계 5G 시장의 선두주자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제재에도 지난해 세계 5G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 1위(26%, IHS마킷)를 유지했다. 스위스 에릭슨, 핀란드 노키아, 한국 삼성전자가 그 다음 순이다. 한국에선 LG유플러스가 화웨이 5G 장비를 사용하는 것을 비롯해 약 100개 기업이 화웨이와 거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만 해도 존슨 총리는 미국의 반대에도 화웨이를 영국 5G 구축 사업에 일부 참여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영국 텔레그래프는 존슨 총리가 2023년까지 영국 5G망에서 화웨이를 단계적으로 제외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존슨 총리가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을 두고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존슨 총리는 3월 27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후 한때 중환자실에 입원까지 했다가 회복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국 측은 영국 정부가 화웨이를 정조준해 반중 연합체를 만들 것이란 보도에 즉각 반발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영국은 5G 사업에서 화웨이를 빼라는 미국의 압박에 굴복했다"며 "중국에 대항해 D10 클럽을 만들겠다는 것은 구닥다리 냉전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특히 이 매체는 한국, 독일, 영국을 콕 집어 "D10 중 상당수 국가의 통신사가 화웨이와 깊은 협력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화웨이를 배척하면 국제 무대에서 이들 국가의 경쟁력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지난달 28일 홍콩의 반중 세력을 겨냥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을 제정하기로 한 후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연대가 확대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도 사실상 반중 전선 동참을 압박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12월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열릴 예정이던 G7 정상회의를 가을로 연기한다고 발표하며 한국·호주·인도·러시아를 G7 정상회의에 초청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G7이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적절히 대표한다고 생각치 않는다"고 했다. 미국은 올해 G7 정상회의 의장국으로, 회원국 외 다른 나라를 초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4국 초청이 "중국 관련 미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중국 정부는 한국을 압박하는 미국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달 28일 밤 주한 미군이 경북 성주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 내 노후 미사일을 기습 교체하자, 중국 외교부는 주한 미군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다시 강조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다음 날 정례 브리핑 중 "중·한은 사드 문제에 대해 단계적으로 처리하기로 명확히 합의했으며, 한국이 이를 엄격히 지키길 바란다"고 했다. 또 미국을 향해서는 "미국은 중국의 이익을 훼손하지 말고 중·한 관계를 방해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자오 대변인의 이 발언이 한국 정부에 '미국에 끌려다니지 말라'는 경고를 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중국은 2017년 주한 미군 사드 배치 후 한국에 경제 보복 조치를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