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 재택근무 정착
롯데 '주 1회 재택근무' 필수…NHN "수요일은 밖에서 일하세요"
페이스북 "5~10년 내 직원 50% 원격근무"

서울 강남구로 출퇴근하는 송도 거주자 임모(32)씨는 지난 3월 재택근무 경험을 잊지 못한다. 임씨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침마다 출근하느라 부산 떠는 것이 얼마나 에너지 낭비였는지 깨달았다"면서 "집에서 일하니 효율적이었고, 평상시보다 훨씬 많은 업무를 소화했다. 팀장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을 때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임씨는 최근 임직원 미팅 때 재택근무를 정기화하자고 제안했고, 사장이 수용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일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사무실 중심의 일터에서 벗어나 재택근무와 외근을 병행하는 새 근무방식을 실험 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도입한 재택근무가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된 영향이다. 사무실 밖에서 일해도 업무에 차질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업들도 재택근무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근무환경을 바꿔나가고 있다.

미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재택근무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기업 환경의 뉴 노멀(새로운 기준)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재택근무 중인 NHN 직원

◇SK, 한 달간 1주일만 출근…롯데 ‘주 1회 재택근무’ 도입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8일부터 일부 부서를 대상으로 ‘1주 출근+3주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1주일 동안 사무실 근무를 하면 3주간 재택근무를 하는 방식이다. 근무장소는 집이 아니어도 된다. 온라인으로 업무만 진행할 수 있다면 카페, 공유사무실 등 야외에서 일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4주간 새 근무방식의 성과를 점검한 뒤 근무 혁신 방안에 반영할 계획이다. 앞서 SK가스, SK케미칼도 지난달 말부터 2주간 ‘자유근무’ 방식을 도입했다. 직원의 희망에 따라 사무실로 출근해도 되고 집에서 일해도 된다. SK그룹은 오는 8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주재하는 ‘이천포럼’에서 재택근무 실험 결과를 공유한다. 이 결과를 기반으로 SK그룹은 자유근무를 계열사 전반으로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롯데지주는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재택근무제를 정식으로 도입했다. 롯데지주 직원들은 25일부터 주 5일 중 하루는 의무적으로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주 1회 재택근무에 동참, 화상회의를 통해 사업장을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 회장은 지난 19일 임원회의에서 "근무 환경 변화에 따라 일하는 방식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며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 변화를 촉구한 바 있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우리 사회에 확산된 재택근무를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장기 트렌드로 보고,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롯데지주도 SK와 마찬가지로 재택근무의 효율성을 분석한 뒤 다른 계열사로 확대를 검토할 예정이다.

이밖에 NHN이 매주 수요일마다 사무실 밖 원하는 장소에서 일할 수 있는 ‘수요 오피스’ 제도를 이달 13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NHN은 '수요 오피스'에 참여하는 직원 1300여명의 업무 효율, 생산성 효과를 점검한 뒤 전 계열사 확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NHN 관계자는 "급변하는 IT 환경에서 NHN에 가장 잘 맞는 근무 방식이 무엇인지 찾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언뜻 재택근무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철강기업 동국제강(460860)도 월 1회이긴 하지만 재택근무 체제에 합류했다. 동국제강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제를 일시 도입했다가 업무 효율과 직원들의 만족도 등을 감안해 이번에 정례화했다고 설명했다.

◇보수적인 일본 기업도 "주 2~3회만 출근"

재택근무 확산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해외에서는 IT 기업이 재택근무 중심 근무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5~10년 내 전 직원의 50% 이상이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거주하는 지역에서 원격(재택)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고숙련 직원, 업무 평가에서 높은 평점을 받은 직원 등이 대상이다. 트위터도 무기한 재택근무를 허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한 일본에서도 재택근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일본 전자업체 히타치제작소는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도 재택근무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했다. 직원의 약 70%는 일주일에 2~3회만 회사로 출근하고 나머지 절반은 집이나 카페 등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방식이다.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가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보다 유연한 근무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출퇴근 시간, 불필요한 회의 등을 줄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 CEO는 더버지와의 인터뷰에서 "실제 많은 직원들이 집에서 일하면서 능률이 올랐다고 했다"고 말했다.

주요 외신은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이 재택근무에 앞장서면서 재택근무가 앞으로 근무방식의 ‘뉴 노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같은 근무혁신은 대면·현장 근무의 필요성이 적고, 원격 근무를 가능하게 하는 스마트워크 시스템을 갖춘 IT 기업을 제외한 분야에서는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시트로엥과 푸조를 만드는 프랑스 자동차 제조업체 PSA는 올 여름부터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한다. 그러나 생산라인을 지켜야 하는 직원들은 출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