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츠 투자 국내 유일 헬스케어펀드 라이트펀드 김윤빈 대표
"KT⋅게이츠재단 차세대 방역시스템 개발사업 중개 우리가 했어요"
"'비영리사업=기업의 일방적 기부' 시대 끝나… 상생해야 지속 가능"

김윤빈 라이트펀드 대표는 최근 서울대학교 연구공원 국제백신연구소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라이트펀드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지적, 기술적 자원을 활용해 세계 공중보건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R&D 프로젝트를 발굴,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는 ‘K바이오’에 주목했습니다. 한 나라(한국)에서, 그것도 크지 않은 국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정복을 위해 치료제·백신·진단키트 연구개발(R&D)에 이렇게나 많은 업체·연구소들이 뛰어들어 연구활동을 진행하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재단 역시 개발도상국 뿐 아니라 세계 공중보건 증진을 위해 한국의 우수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하겠습니다."

김윤빈 글로벌헬스기술연구기금 라이트펀드(Research Investment for Global Health Technology Fund) 대표는 최근 서울대학교 연구공원 국제백신연구소에 있는 라이트펀드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라이트펀드는 한국 보건복지부와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국내 생명과학기업이 공동출자해 지난해 7월 설립했다. 게이츠 재단이 투자한 국내 유일의 헬스케어펀드다. 총 500억원의 기금 가운데 우리 정부가 250억원, 게이츠 재단이 125억원 등을 댔다. 게이츠 이사장은 라이트 펀드를 올해 2배 이상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이자 게이츠재단 이사장인 빌 게이츠는 지난달 10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이 코로나19를 잘 관리해서 세계 모범이 되고 있다. 한국 대응을 보고 배울 것"이라며 "라이트펀드가 국제백신연구소, 세계백신면역연합, 감염병혁신연합과 함께 글로벌 보건과 코로나 사태 극복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대표는 "한국은 백신·진단·바이오의약품 등 개발 및 생산에 대한 강점을 글로벌에서 인정받아 왔고, 코로나19를 통해 K방역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면서 "라이트펀드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지적, 기술적 자원을 활용해 세계 공중보건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R&D 프로젝트를 발굴,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에서 K바이오가 부각된 것을 계기로 K바이오 지원을 통해 국제 보건 증진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김 대표는 라이트펀드를 "한국에 설립된 글로벌 민관협력 연구기금"이라고 설명했다. "공중 보건 개선에 있어서 필요한 플레이어가 모두 모였다는 점에서 최초의 시도이자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정부, 생명과학기업, 글로벌공익재단인 국제자금지원단체가 참여해 글로벌 헬스를 증진하는 대의와 함께 각자의 목적을 이룰 수도 있다는 것도 강점이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라이트펀드가 공적개발원조(ODA)와 R&D를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고 자평했다. "연구개발을 통해 ODA를 하는 지원 플랫폼은 이전까지 국내에서는 없었다"는 것이다.

"R&D는 개발에 성공하면 전체 개도국에 다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라이트펀드는 한국의 기술로 수혜국을 크게 확대할 수 있는 ODA플랫폼입니다."

라이트펀드는 매년 공모를 통해 한국의 우수한 R&D 과제를 발굴해 2022년까지 500억원을 지원한다.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발생하는 신종·풍토성 감염병 대응에 필요한 백신, 치료제, 진단기기 등의 개발 프로젝트 등을 발굴·선정해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라이트펀드는 지난해 1차과제로 5개 프로젝트에 모두 100억원에 가까운 연구비를 지원했다. 5개 연구프로젝트에는 ▲단회 투약 말라리아 신약 후보물질의 경제적이고 안전한 공정 기술 개발 프로젝트(SK바이오텍) ▲저개발국 5세 미만에게 효과적인 주사제형의 신 접합 콜레라백신 개발 프로젝트(유바이오로직스·국제백신연구소·하버드의대) ▲저개발국의 필수백신 접종율을 높일 수 있는 6가 백신 공정 개발 프로젝트(LG화학) 등이 있다.

김 대표는 "실질적으로 연구 프로젝트에 투자를 시작한 것이 1년이 안 됐다"면서도 "5개 지원 프로젝트 중 4개 정도 향후 3~4년 내에 상용화되면 개도국 보건 증진에 좀 더 빨리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엔 코로나19 관련 프로젝트 공모에도 나섰다. 김 대표는 "감염병은 유행이 지나버리면 기술 개발 의지가 꺾일 수 밖에 없다"면서 "업체들이 수익성이 적은 감염병에 대한 연구를 할 때, 라이트펀드는 (연구의 실패 가능성으로 인한) 투자 위험을 재정적 지원을 통해 분산할 수 있게 해 연구가 지속되게 한다"고 말했다.

실제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끝나면 치료제·백신 개발 노력이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시장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세계 첫 코로나19 치료제로 떠오르고 있는 렘데시비르는 길리어드사이언스가 지난 2015년부터 에볼라바이러스 치료제로 개발해왔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지 못하다 이번 코로나19 확산으로 긴급 사용승인을 지난 1일 받았다.

김 대표는 "제약업계에 바라는 것은 단 하나"라며 "성공적으로 약이 개발되면 개도국 같이 우리 목적 사업과 맞닿는 곳에서는 약가(藥價) 책정 등을 할 때 고려해달라는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KT가 게이츠재단과 손잡고 차세대 감염병 방역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한데도 라이트펀드의 역할이 컸다. KT는 재단 투자를 받아 3년간 120억원 규모의 ‘감염병 대비를 위한 차세대 방역 연구’를 진행한다. 김 대표는 "KT와 게이츠재단의 파트너십이 생성된 계기가 지난해 4월 라이트펀드가 주최한 ICT포럼에서 시작됐다"면서 "당시 KT는 라이트펀드 주최 ICT포럼에서 ICT 기반 감염병 확산 방지활동을 발표했는데, 포럼에 참석한 재단측에서 관심을 보였고 이후 라이트펀드가 두 기관 파트너십 생성에 매개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물론 라이트펀드 운영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있다. 김 대표는 "처음에 프로젝트를 도우려고 개별 업체들에 접촉을 하면 의구심부터 갖는 분들도 있다"면서 "아직까지 기업과 함께 하는 비영리지원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비영리 사업이 기업의 일방적인 기부나 제로수익을 의미하는 시대는 지났다. 상생하는 방식이 아니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라이트펀드는 해당 기술에 대한 소유권을 갖지 않으며, 기업의 수익시장에서의 활동에 제한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공중보건 시장에서의 사업 기회를 제시하거나, 기업의 니즈에 부합하는 공중보건 활용 가능성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감염병 관련 연구개발을 독려한다. 국내 기업들이 열린 마음으로 대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