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선진국보다 10년 뒤처진 국내 빅데이터 산업
'데이터 3법'으로 물꼬 트나 했더니 시행령에 발목
공정거래법 등 다른 법과의 충돌 문제도 여전히 '깜깜'
시행령 손보는 중이지만… "기대보다 소극적" 우려도

2013년 미국에서는 대형마트 '타깃'이 부모도 몰랐던 여고생의 임신을 예측해 임산부용 할인 쿠폰을 지급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마트는 당시 여고생의 로션 구매량이 부쩍 늘어난 정보 등을 파악해 이같은 프로모션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생활 침해 등 새로운 기술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시장은 새롭게 떠오르는 마케팅 기법에 주목했고 이는 빅데이터 산업의 부흥으로 이어졌다.

미국에선 7년 전에도 가능한 빅데이터 마케팅이 이제서야 국내에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올해 초 가명정보(특정 개인을 못 알아보게 처리한 개인정보) 활용 방안을 담은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다. 하지만 데이터 3법 시행(8월 5일)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모호한 법령 때문에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빅데이터 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가장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가 데이터 3법과 다른 법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충돌 문제다. 앞선 미국 마트 사례와 같은 상품 추천 서비스를 할 경우 국내에서는 다른 상품을 차별한다는 이유로 공정거래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법무법인 율촌의 신산업 지적재산권(IP) 팀장인 임형주 변호사는 "데이터 3법에 따라 가명정보를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다른 규제에 발목 잡힐 우려가 커서 망설이는 기업들이 많다"며 "정부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통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제시를 해줘야 하는데 여전히 모호함 투성이다"고 말했다.

개인정보의 가명처리와 관련해 기업의 법적 책임선이 불분명한 것도 눈치만 보게 만드는 이유다. 예를 들어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은 가명정보를 활용하는 기업에 대해 ‘안정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기업들은 이 ‘조치’라는 게 어느 정도의 수준을 요구하는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가명정보가 유출 돼 다른 정보와 결합, 식별가능한 개인정보로 재처리되는 문제가 발생하면 사업자는 사전에 얼마만큼의 안전 정치를 해놔야 형사적, 행정적 불이익을 안 당하느냐는 것이다.

시행령은 그러면서 가명정보에 대해 ‘개인정보와 같은 안정성 확보 조치’를 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든 가명정보를 민감정보나 개인정보와 같은 수준으로 관리하라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며 "가명정보의 활용을 터주고 빅데이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다는 데이터 3법의 취지가 퇴색 돼 버렸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2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데이터 3법 시행령 개정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정부는 현재 각계 전문가들과 업계 목소리를 반영해 시행령 개정안을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 말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가 함께 데이터 3법 시행령 개정안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때도 법 해석상 불확실성이 크고 처벌만 강화한 측면이 있어서 빅데이터 활용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다만 행안부 내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다듬었다며 보여준 수정안이 기대에 비해 바뀐게 별로 없었다"며 "아직 최종안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겠지만 보다 업계 현실에 맞게 전향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시행령 수정안 작업은 늦어도 오는 7월 중으로 마무리 짓고 법제처 심사에 부쳐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형주 변호사는 "빅데이터 산업의 본격적인 육성을 위해서는 법 개정만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관련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며 "소비자 이익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면 과감하게 종전의 규제를 혁파하고 이를 허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과거 시각에서 만들어진 법률과 충돌이 있다면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마련해주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