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S' 도입 대비해 부동산 자산 줄이기 나선 보험사들
신한생명도 사옥 매각으로 현금 확보하고 재임차할 듯

신한생명이 서울 중구 장교동에 있는 신사옥 '신한 L 타워'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신사옥에 입주한 지 4년 만이다. 2022년 도입 예정인 신(新)지급여력제도(K-ICS)에 대비해 자본 확충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생명은 올해 초부터 '신한 L 타워'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법무법인을 통해 매각 관련 법률검토를 진행했고, 잠재적매수자들과 매각 조건을 놓고 협의도 진행한 상태다. 신한생명 관계자는 "신지급여력제도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사옥 매각을 검토 중인 것은 맞다"라고 말했다.

신한생명이 사옥으로 쓰고 있는 서울 중구 ‘신한 L 타워’.

'신한 L 타워'는 신한생명이 2014년 매입한 건물이다. 원래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가 소유하고 있던 건물을 신한생명이 신사옥으로 쓰기 위해 2200억원 정도에 매입했다. 신한생명은 2016년 2월 이 건물에 입주하면서 1990년 창립 이후 처음으로 신사옥을 마련하게 됐다.

하지만 신(新)지급여력제도 도입을 앞두고 부동산이 짐이 되면서 신사옥 입주 4년 만에 매각에 나서게 됐다. 정부는 보험사가 고객에게 보험금을 제대로 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적정 수준 이상의 자본을 쌓도록 규제하고 있다. 2022년부터는 기존보다 강화된 규제 기준이 적용되는데 그 중 하나가 신(新)지급여력제도다. 원가로 평가하던 자산·부채 가치를 시가로 평가하도록 해 더 많은 자본을 쌓도록 하는 제도다.

특히 신(新)지급여력제도는 보험사가 보유한 부동산 자산에서 손실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기존보다 더 많은 준비금을 적립하도록 하고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부동산 자산의 가격 변동폭을 6~9%로 보고 준비금을 적립하도록 했는데, 앞으로는 25%까지 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1000억원이면 지금은 60억~90억원의 준비금을 쌓으면 되는데 앞으로는 250억원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문에 최근 몇 년 간 보험업계는 부동산을 부지런히 팔고 있다. 현대해상(001450)이 올해 2월 강남 사옥을 팔기로 했고, 메리츠화재도 작년에 여의도 사옥을 팔았다. 삼성생명(032830)삼성화재(000810)도 보유 부동산을 계속해서 줄여나가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신한 L 타워에는 신한생명뿐 아니라 오렌지라이프 일부 부서도 입주해 있어서 사실상 통합 사옥 역할을 하는데 매각에 나서는 건 다소 놀랍다"라고 말했다.

신한생명은 '신한 L 타워'를 팔더라도 재임차해 당분간 사옥으로 쓸 계획이다. 재임차하는 조건을 달면 매각 가격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신한 L 타워' 매각가격은 25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신한생명이 처음 샀을 때보다 300억원 정도 매각 이익을 남기는 셈이다.

다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변수다. 신한생명은 이달 중에 투자설명서를 발송하는 등 매각 작업을 구체화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사태의 영향으로 매각 작업도 잠시 중단했다. 신한생명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금융기관 유동성 경색 등 시장 변동성이 커져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