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사상 최초 '온라인 삼성고시' 시행
다른 대기업은 일단 오프라인으로… "삼성고시 결과 보고 논의"
"시험감독 부담 줄이려 서류 탈락 많이 시킨다" 취준생들 '걱정'

"삼성직무적성검사(GSAT) 키트 아직도 못 받으신 분 계실까요?"
"GSAT 보다가 서버가 끊기면 어쩌죠? 다들 어디서 응시할 계획이세요?"

최근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취업준비생들의 질문 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삼성고시’로 불리는 신입 채용 필기시험 ‘삼성직무적성검사(GSAT)’를 사상 처음 온라인으로 치르기 때문이다.

삼성은 기존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 등 전국 시험장에서 같은 날 대규모 GSAT 시험을 치러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지속되자 취업준비생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온라인 GSAT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서버 오류를 막기 위해 이달 30·31일 이틀간 4차례로 나눠 진행하고, 먼저 시험 본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문제를 알려줄 수 없도록 회차별 문항은 각각 다르게 출제한다.

지난해 하반기 삼성직무적성검사를 마친 응시자들이 고사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삼성이 비대면(언택트) 방식의 삼성고시 계획을 발표한 반면 SK, 포스코, 롯데그룹 등은 오프라인으로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다.

한 대기업 인사팀 직원은 "부정행위 가능성, 공정성 문제 때문에 기존의 시험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면서 "하지만 삼성의 온라인 시험 결과에 따라 우리도 도입을 검토할 수는 있다"고 했다.

◇ 대기업들 "온라인 시험, 부정 행위·문제 유출 걱정… 비용도 생각보다 많이 들어"

온라인 GSAT은 기존 오프라인 인·적성 시험에 비해 시험 준비 과정이 복잡하다. GSAT 응시자는 스마트폰으로 모니터링 시스템에 접속해 자신과 PC 모니터를 촬영해야 한다. 삼성은 이를 위해 응시자 유의사항, 휴대전화 거치대, 개인정보보호용 커버 등을 담은 ‘응시자 키트’를 미리 택배로 배송했다. 삼성은 이달 26일 예비소집을 통해 시스템을 점검할 계획이다.

삼성은 사후 검증 절차도 철저하게 진행하기로 했다. 온라인 시험이 끝난 뒤 응시자의 문제 풀이 과정을 녹화본으로 재확인하고, 면접 때 온라인 시험과 관련된 약식 시험도 진행한다. 부정행위를 하다 발각된 응시자는 향후 5년간 지원 자격을 박탈한다.

온라인 시험이라고 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보는 이도 많은데, 꼭 그렇지도 않을 것이란 게 대기업 인사팀 직원들의 설명이다. 응시자 키트를 일일이 배송해야 하고 시험 전 시스템 점검이나 사후 검증 등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정행위를 원천 차단하기 어렵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은 감독관 1명이 9~10명의 응시자를 감독할 계획인데, 사실 부정 행위를 완벽하게 차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도 "부정행위를 막으려면 강력한 보안솔루션이 필요한데 당장 준비가 어려워서 오프라인 시험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인·적성 문제 유출도 숙제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오프라인에서 시험을 보게 되면 시험지를 기업이 걷어가 응시생들이 복원하기 쉽지 않지만, 온라인은 출제된 문제가 고스란히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며 "다음 해 문제 중복을 피해 시험을 내야 해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DB

◇ 테스트베드 된 ‘온라인 삼성고시’… 다른 기업들도 주목

온라인 시험에 대한 부담 때문에 다른 대기업들은 일단 오프라인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 SK그룹 5개사는 오는 24일 세종대와 서경대에서 SK종합역량검사(SKCT)를 치른다.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해 모든 응시자의 발열 체크를 한 뒤 좌석 간 거리를 각각 2m씩 띄운 채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응시자 모두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포스코도 지난주 서울, 광양, 포항에서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인·적성 검사 ‘PAT’를 진행했다.

하지만 삼성 온라인 GSAT가 성공적으로 치러지면 대기업들도 언택트 채용 전형 도입을 검토할 전망이다. 온라인 구인·구직업체 사람인이 기업 372개사를 대상으로 온라인 채용 전형 도입 여부를 조사한 결과, 기업의 31.2%가 "온라인 채용 전형을 진행 중이거나 도입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현장 시험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축소하고,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게 채용방식을 혁신하자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이번에 온라인 GSAT를 실시해보고 결과가 좋으면 향후 채용방식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김준 총괄사장이 지난 4월 8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내 신입사원 화상 면접 현장을 방문해 채용 상황을 점검하고 구성원들에게 '비상한 방법으로 위기 극복'을 주문하고 있다.

올해 초 수시채용 과정에서 화상 면접을 실시했던 SK이노베이션도 향후 온라인 시험 도입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이전에도 해외 사업장 직원을 채용할 때 화상 면접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며 "이번 온라인 채용 과정에서 응시생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의 경우 당시 온라인 면접을 치른 응시생들 사이에서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화상으로 면접을 볼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는 반응이 나왔다.

◇ 취준생 "불서류 걱정… 부정행위 발생할 수도" vs "채용 일정 그대로라 다행"

취준생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언택트(비대면) 채용 과정에 반응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온라인 GSAT에 대해 구직자 59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2.5%가 온라인 시험에 찬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감염 우려를 방지할 수 있어서" "채용 일정이 미뤄지지 않아서" 등의 이유에서였다.

응답자의 37.5%는 온라인 시험에 반대했다. "대리시험 및 부정행위 발생 가능성" "관리감독 미흡" 등을 이유로 꼽았다. 인터넷 접속오류 등 변수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취업포털 사이트 및 단체대화방 캡처

‘서류 광탈’도 취준생들이 우려하는 것 중 하나다. 취준생들과 대기업 직원들 사이에서는 "그간 삼성이 서류에서 최종 선발인원의 10~12배수를 선정해왔는데 이번에는 4~5배수만 뽑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관리 감독이 쉽지 않은 온라인 전형 지원자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첫 번째 채용 관문인 ‘서류 전형’을 일부러 더 깐깐하게 봤다는 것이다. 서류 전형이 어려웠다는 이유로 ‘불서류’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지난해부터 삼성전자 취업을 준비 중인 김모(26)씨는 "취준생들 사이에선 삼성은 서류전형에 관대한 기업이라는 평가가 많았다"면서 "하지만 올해는 확실히 서류합격자가 적었고, 언택트 채용이 일상화되면 당연히 스펙이 좋은 사람이 유리할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