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후원금 유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공익법인(시민단체)이 받는 기부금 사용 내역에 대한 외부감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정의연 후원금 회계관련 의혹에 대한 집회 모습.

22일 국세청과 세법 전문가 등에 따르면 지난해 보유자산이 100억원 이상에 해당돼 외부감사를 받은 곳은 전체 등록 시민단체(9663곳)의 5.6%였다. 지난해 개정된 상속·증여세법 시행령이 적용되기 전까지는 자산 규모가 100억원 이상인 시민단체만 외부 회계감사를 의무적으로 받았다.

올해부터 상속·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연간 총수입 50억원 이상 또는 연간 기부금 20억원 이상을 받는 시민단체도 외부 회계감사를 의무적으로 받게 됐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시민단체들이 외부 감사를 비껴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른바 ‘규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총희 전 청년회계사회 대표는 "자산이나 기부금 규모가 큰 시민단체들은 정기 외부 감사 대상이 되지만, 작은 시민단체들은 예외"라면서 "시민단체 기부금 사용에 대한 불신을 뿌리 뽑기 위해서라도 규모가 작은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감독과 관리를 강화해 규제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약 22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정의연 역시 지난해까지 외부감사 의무 대상이 아니었다. 올해부터 바뀐 시행령을 적용해도 정의연이 외부감사 의무 대상이 되기는 여전히 어려울 전망이다. 정의연이 법이 정한 외부감사 대상이 되려면 올해 20억원 이상의 기부금을 받아야 하는데, 사회적 비난 여론이 거센 가운데 지난해 받은 기부금(약9억원) 대비 2배가 넘는 후원을 받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기부금을 유용한 시민단체들이 외부감사를 받지 않기 위해 법인을 여러 개로 쪼개 기부금 수령처를 분산, 법망을 피해가는 편법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법무법인 디딤돌의 박지훈 변호사는 "기부금이나 자산이 많은 공익법인의 경우 ‘법인 쪼개기’ 등을 통해 법률이 규정한 외부감사 의무 대상을 피해가는 편법도 가능하다"면서 "시민단체들이 편법없이 투명하게 기부금 집행을 할수 있도록 외부 감사를 강화할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시민단체로 외부감사 대상을 확대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주장도 많다. 소규모 시민단체들의 경우 보유자금이 넉넉치 않아 500만~600만원의 외부 회계감사 비용을 부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름있는 유명한 시민단체들은 문제가 없겠지만, 1년에 1000만원도 안되는 기부금을 받아 정말 어렵게 운영하는 영세 시민단체들의 경우 외부감사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규모가 작아 외부감사를 받지 않는 시민단체만 탓할게 아니라 정부가 나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은 "자산과 연간 기부금 규모가 작은 소규모 시민단체들은 주무부처를 통해 관리와 감독을 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정의기억연대 사무실의 모습.

한편 기획재정부는 공익법인의 자금 운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감사인 지정제도’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감사인 지정제도는 자산 1000억원 이상 또는 총자산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인 공익법인만 적용 대상이다.

여기에 기재부는 새로운 선별 기준으로 ‘기부액’을 추가해 감사인 지정제도가 적용되는 공익법인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익법인의 감사인 지정제도는 공익법인이 외부 회계 감사인을 자율 선임하면 이후 기획재정부 장관의 위임을 받은 기관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로, 오는 2022년 시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