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소득불균형 5분위배율, 과거와 비교 못한다"
조사 개편 후 5분위배율 일제히 0.6배~0.7배P 하락
전문가 "시계열 단절 선언은 통계 기본 원칙 어긴 것"

통계청이 21일 ‘2020년 1분기 가계동향’을 발표하며 통계 시계열(관측값을 시간 순으로 늘어놓은 것) 단절을 선언해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가계동향 조사의 정확성 등을 강화하기 위해 2019년부터 시범사업을 통해 가계동향조사 표본을 확대하고, 다목적표본이 아닌 가계동향조사를 위한 전용표본으로 바꾸는 식의 통계 개편을 추진했다. 2017년부터 소득부문과 지출부문으로 분리됐던 가계동향조사를 하나로 통합한 것도 주요 개편방향이었다. 이날 발표된 가계동향 조사 결과는 개편된 조사방식의 첫 결과치였다.

통계청은 과거 가계동향 조사와 시계열 비교를 위해 2019년 데이터를 기존 방식에 따른 결과치 A데이터와 통합 방식에 따른 B데이터로 나눠서 공개했다. 정부는 지난 2018년 가계동향 개편 방향을 발표하고 지난해 시범 조사를 실시했는데, B데이터는 이 때 도출된 결과치다. 시계열 단절을 막기 위해 두 가지 방식을 모두 공개한 것이다. A·B데이터는 2019년을 매개로 그 이전과 이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통계청은 소득, 지출 등은 두 데이터를 이용해 시계열 비교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강신욱 통계청장이 2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0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발표에 앞서 머리를 만지고 있다.

◇소득분배, 과거와 비교 못한다…또 ‘시계열 단절’ 선언한 통계청

그러나 통계청은 소득불균형 수준을 측정하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에 대해서는 "과거 수치와 비교할 수 없다"면서 시계열 단절을 선언했다. "올 1분기 5분위 배율은 5.41배로 2019년 B데이터상 5분위 배율 5.18배에 비해 0.24배P(포인트) 높아졌다"는 비교만 가능하지, 과거 수치와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정구현 통계청 가계수지동향 과장은 "2020년부터 바뀐 조사방식은 표본의 고소득층 포착률을 높이기 위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1000만원 이상 고소득 가구 비율 높이는 등 표본체계를 바꿨기 때문에 과거 조사에 비해 가구소득이 높게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면서 "1분위와 5분위 격차를 나타내는 5분위 배율의 경우 과거 수치와 직접적인 비교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아예 ‘시계열 단절’을 선언하기도 했다. 기재부는 이날 1분기 가계동향 분석을 위한 보도참고자료에서 "통계청은 공식·대표 분배통계인 가계금융복지조사(가금복)의 보조통계인 가계동향조사의 정확도 제고를 위해 표본설계·조사방법을 개편했고, 이에 따라 불가피하게 2019년 이전과 이후의 시계열이 단절됐다"고 밝혔다.

2019년 분리조사(A)·통합조사(B)와 비교된 올해 가구당 소득5분위별 소득점유율 및 경계값 추이.

◇전문가들 "시계열 단절은 통계 속성에 어긋나…대안 제시했어야"

전문가들은 정부의 시계열 단절 선언이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연속성이 중요한 통계의 기본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조사 방식이 바뀌어 시계열 단절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면 새 방식으로 조사를 하면서 동시에 과거 방식의 조사를 한시적으로 병행하거나, 2019년 이전 수치와 비교가 가능하도록 이전 수치를 통합 방식으로 역산(逆算)해 제시하는 등 시계열 단절을 막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계청이) 소득과 지출을 분리한 결과를 발표했던 지난해 결과를 두고 다시 소득과 지출을 통합한 통합 결과를 발표했다면, 올해도 통합식이 아닌 분리식으로 조사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수치를 같이 제시해 지난 시계열과 비교가 가능하도록 만들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컨대 국가 GDP 계산을 할 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품목별로 업데이트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시계열을 살려가기 위해서 옛날 GDP를 다시 다 계산을 해본다"면서 "규정이 바뀌었다고 (시계열 단절을 선언하는 식으로) 그렇게는 안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소득분배를 알 수 있는 5분위 소득배율과 같이) 비교가 의미가 있는 지표이면 2018년 이전 지표를 재계산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가계동향 조사 방식 개편이 2018년 이후 급상승한 소득 5분위 배율을 0.6배P 가량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통계청이 제시한 2019년 B데이터에 따르면, 2019년 5분위배율은 1분기 5.18배, 2분기 4.58배, 3분기 4.66배, 4분기 4.64배로 나타났다. 반면 A데이터는 1분기 5.80배, 2분기 5.30배, 3분기 5.37배, 4분기 5.26배다. A데이터와 B데이터 간 격차는 1분기 0.62배P, 2분기 0.72배P, 3분기 0.71배P, 4분기 0.62배P 다. 소득불균형이 완화된 듯한 ‘착시’가 발생한 것이다.

이같은 추세가 이어졌다고 가정한다면 2019년 조사(A데이터) 방식에 따른 올 1분기 5분위 배율은 6.03배~6.13배 사이로 추정된다. 개편 전 방식으로 5분위 배율을 추산했다면 올해 1분기 소득불균형이 통계 작성 후 최악 수준으로 나타날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분기별 소득 5분위 배율. 2019년은 기존 분리방식(A)에 더해 통합방식(B)으로 계산한 두 수치가 모두 공개됐다

◇통계의 마법? 개편 후 대폭 낮아진 소득불균형 지표

이 때문에 통계청 조사가 결과적으로 소득불균형 수치를 낮추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강신욱 통계청장은 "기존 조사방식대로 나왔던 소득 5분위 배열은 기존 시계열 흐름대로 해석하는게 맞다. 2019년에 두가지 방식의 수치가 제시됐다고 해서 더 낮은 수치(B)가 맞다고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통합조사에 대한 시계열은 2019년 이후부터 흐름을 비교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과거 방식으로 조사했다면 5분위 배율이 0.6배P 올라갔다고 볼 수 있냐’는 질문에도 "그렇게 예단할 수 없다"며 "기존 조사방식에 따라 표본체계를 구성할때 지금 어떤 상태일지 가상해서 계산하기 어렵다"고 했다.

강신욱 청장이 부임한 2018년 8월 이후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의 시계열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서는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36.4%)이 2007년 이후 12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당시에도 강 청장은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설문 문항이 바뀌었기 때문에 올해 조사 결과를 전년도와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가 통계 기준을 자의적으로 계속 바꾸면서 스스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고 비판했다. 지난 7일에도 통계청은 ‘2019년 연간 지출 가계동향조사’에서 지출 조사 표본을 7200가구로 늘렸기 때문에 과거와 직접 비교는 한계가 있다며 시계열 단절을 선언해 논란이 됐다.

이 때문에 통계청이 가계동향 통계 조사 방식을 개편하게 된 의도에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가계동향 논란은 지난 2018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저임금 16.4% 인상 효과가 반영되기 시작한 2018년 1분기 가계동향 조사에서 소득불균형도를 보여주는 5분위 배율이 사상 최고치인 5.95배로 나오자, 당시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조사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통계개편을 추진했다. 이에 2020년 통계부터 통계표본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통계를 개편하기로 했다. 지난해는 기존 방식대로 통계를 발표하되, 2020년 개편을 위한 병행조사를 실시하는 시기였다.

지난해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당시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었던 강 청장이 ‘60세 이상 가구가 신규 표본에 많이 들어가 1분기 소득이 악화된 것’이라는 자료를 작성했고, 이후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을 더 강화하겠다는 결론을 냈다"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