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업 유턴' 추진…기업 "큰 해외시장 포기못해"
높은 인건비·노조도 걸림돌…"친기업 정책 절실"

"글쎄요, 수천억원 들여 해외에 공장을 지은 기업이 한국으로 돌아올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돌아오면 인건비도 오르고 노조 문제도 있는데, 누가 오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해외에 나가 있던 기업들을 국내로 다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제조업의 본국 회귀)’ 촉진에 나선다는 소식에도 해외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은 국내 제조업 기반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한 리쇼어링 정책의 취지에는 공감을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은 기업 유턴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각종 규제와 높은 법인세, 인건비 등의 진입 장벽부터 낮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외신에 따르면 GM이 지난해 리쇼어링을 통해 미국에 만든 일자리는 1만2988개에 달한다. 사진은 픽업트럭을 생산하는 미시간주 플린트 제너럴 모터스(GM) 공장의 조업 모습.

◇‘세계의 공장’ 사라지나…코로나 충격에 美 중심으로 ‘리쇼어링’ 확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세계 각국이 리쇼어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원재료 조달과 부품 생산이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는 국제분업의 취약성이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중국산 전자부품 ‘와이어링 하네스’ 수급 문제로 국내 자동차 공장이 멈춰선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금도 중국에서 부품을 공급받지 못한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에 각국에서 그동안 소재·부품·장비를 생산을 담당해온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과 지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수년 전부터 제조업 리쇼어링을 유도하는 정책을 펼쳤다. 코로나19로 경기 침체에 빠진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도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중심주의가 강화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리쇼어링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공장을 자국으로 되돌리면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 창출 및 소비 진작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경기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리쇼어링 활성화를 위해 수도권 공장 입지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취임 3주년 특별 연설에서 "한국 기업의 유턴, 해외의 첨단산업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내 복귀 기업을 대상으로 토지·공장 매입비와 설비 투자금액, 고용보조금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유턴하면 거대시장 근접 이점 사라져…고임금·노조도 부담"

그러나 기업들은 여전히 ‘유턴 정책’에 회의적이다. 해외 시장을 포기하는 비용이 국내 유턴으로 얻는 혜택보다 적을 것이란 분석 때문이다.

국내 한 제조기업 관계자는 "해외에 공장을 짓기 위해 최소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을 투자했는데, 다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엔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며 "해외 시장에서 누릴 수 있는 법인세 인하 등 각종 세제 혜택은 물론, 시장 접근성이 가져다주는 물류비 절감 효과 등도 크기 때문에 돌아올 인센티브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2018년 해외 진출 15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96%가 "유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들이 유턴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로는 ‘해외시장 확대’가 77%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고임금 부담(16.7%)’ ‘노동시장 경직성(4.2%)’이 뒤를 이었다.

정부가 수년 전부터 해외공장의 국내 유턴을 추진해왔는데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이유다. 자국으로 돌아오면 거대한 내수 시장이 기다리고 있는 미국과 달리,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작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큰 시장을 개척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어지간한 규제 완화와 지원책으로도 유턴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해외 시장 개척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높은 인건비도 걸림돌이다. 베트남,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는 인건비와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기료가 한국의 반값이다. 현재 정부 유턴기업 지원책은 높은 인건비를 상쇄하기엔 부족한 실정이다. 여기에 강성 노조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는 사회 분위기도 기업이 국내 유턴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기업 유턴 성공하려면 규제 대폭 완화해야"

현재 최저임금 상승, 주 52시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조에 더해 현 정부의 반(反)기업 정서가 국내 기업에 부담을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계는 해외 진출한 일부 기업이라도 한국으로 되돌리려면 지금보다 파격적인 규제 완화와 기업 친화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리쇼어링에 성공하려면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하는 노동시장 경직성, 지배구조 관련 규제, 수도권 공장 입주 규제 등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유턴 기업의 자격 요건이 엄격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한국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은 "유턴기업 지원대상 선정요건이 까다롭고 현실성이 떨어져 기업의 국내 유턴 속도가 더딘 상황"이라고 밝혔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2014~2018년 한국의 연평균 유턴 기업 수는 10.4개사로, 미국(482개사)의 40분의1 수준에 그쳤다.

그러면서 "선정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규제개선, 법인세 인하, 연구개발(R&D) 지원 등의 유인책과 함께 기업환경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시장 개척을 목표로 나간 기업들은 돌아올 이유가 없지만 높은 인건비나 생산비용, 기술·개발하기 어려운 환경, 노동 경직성 등을 피해 떠난 기업들은 정부가 충분한 유인책을 제공한다면 유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정부에서 인건비 등의 비용을 보전해주면 결국 세금을 끌어다 써야 하기 때문에 국가 전체적으로 생산비용이 올라가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무조건 유턴을 종용하기보다 기업·업종별로 비용편익을 면밀히 분석한 뒤 유턴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